[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천하대장군
안녕하세요. 최우주입니다. 새로움을 좇느라 잠시 놓쳐온 우리 사유의 뿌리를 다시 꺼내어 오늘의 언어로 마주해 보는 시간입니다. 빠른 해답 대신 오래 곱씹을 숨결을 건네며 지나온 시간 속에서 오늘을 살아갈 지혜를 찾고자 합니다. 자, 함께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오늘은 장승 또는 벅수라고 불리는 마을의 수호신으로 사람들에게 재앙을 막아주고 든든함을 주었던 천하대장군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예전엔 험상궂게 치켜뜬 눈, 과장된 이빨, 투박하게 새겨진 얼굴을 지닌 천하대장군이 마을 어귀에 하나씩 서있었다. 오래전 우리 조상들이 마을의 안녕을 위해 세워둔 ‘경계의 존재’였다. 인간과 자연, 삶과 죽음, 안과 밖의 경계에서 보이지 않는 재앙을 막아주는 수문장이었던 셈이다. 천하대장군은 대개 ‘지하여장군’과 한 쌍으로 세워졌다. 남성과 여성, 하늘과 땅, 양과 음의 조화를 이루려는 민간 신앙의 질서가 그 안에 담겨 있다.
이 장승들은 마을 입구나 길목, 사찰 어귀에 세워져 잡귀를 쫓고 액운을 막는 역할을 했다. 동시에 길을 알려주는 이정표이자 공동체의 상징이기도 했다. 오늘날의 표지판과 CCTV, 경계석의 역할을 모두 품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기계와 달랐던 것은, 거기에 사람들의 믿음과 정서가 함께 깃들어 있었다는 점이다.
장승의 얼굴은 거칠고 투박하다. 그 투박함 속에서 한국적인 미감이 드러난다. 완벽하게 다듬어진 아름다움보다, 자연의 결을 그대로 품으려는 태도 말이다. 장승은 익살과 해학을 통해 인간의 삶을 품었다. 그래서 천하대장군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무섭기보다 친근하다. 마치 “걱정 마라, 내가 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라고 웃으며 말하는 동네 어른 같다.
특히 ‘천하대장군’이라는 이름은 흥미롭다. 세상을 다스리는 위대한 장군이라는 뜻이지만, 실제 모습은 화려한 갑옷도 권위도 없다. 흙먼지 날리는 시골 어귀에서 비를 맞고 눈을 맞으며 묵묵히 서 있을 뿐이다. 여기에는 우리 민족 특유의 정신이 숨어 있다. 진짜 강함은 과시하지 않는다는 것. 가장 큰 힘은 가장 낮은 자리에서 공동체를 지키는 데 있다는 것이다.
장승은 해마다 새로 깎아 세우기도 했다. 나무는 결국 썩고 갈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상들은 그것을 실패라 여기지 않았다. 낡으면 다시 세우고, 사라지면 다시 깎았다. 공동체의 안녕은 영원한 완성이 아니라 끊임없는 돌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장승은 나무로 만든 철학이었다.
오늘의 이야기가 그대에게 다다랐다면 지혜의 숲을 거니는 사유의 시간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저는 최우주 기자였습니다.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