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기자: 최우주 [기자에게 문의하기] /
민달팽이
어둑한 한낮,
하늘이 새고 있다
나는 억척을 부리며 셀프 빨래방에 간다
빨래 보따리 손에 들고
물웅덩이를 살피며 자박자박 걷는데
깡마른 민달팽이 한 마리
봇짐도 우산도 없이 한길에 나와
얼굴을 묻고 납작 엎드려 있다
바람도 새들도 길고양이도 숨죽여
그 작은 민달팽이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작고 가난한 민달팽이가
집채보다 큰 우리 모두의 집
신음하는 지구별의 울음을 달래며
온 존재로 품고 있다
지구별의 눈물이 웅덩이마다 고이고
부끄러운 나의 발걸음 푹푹 잠기는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존재와 존재가 만나는 것
가슴으로 듣는 것
사랑 때문에 아파하는 것
토닥여주는 것이라는 것을
나는 머리로만 알고 있었다

[류정아]
2025년 『문예바다』 등단.
한글서예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