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하루] 민달팽이

류정아

 

민달팽이

 

 

어둑한 한낮,

하늘이 새고 있다

 

나는 억척을 부리며 셀프 빨래방에 간다

빨래 보따리 손에 들고

물웅덩이를 살피며 자박자박 걷는데

 

깡마른 민달팽이 한 마리

봇짐도 우산도 없이 한길에 나와 

얼굴을 묻고 납작 엎드려 있다

 

바람도 새들도 길고양이도 숨죽여 

그 작은 민달팽이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작고 가난한 민달팽이가 

집채보다 큰 우리 모두의 집 

신음하는 지구별의 울음을 달래며 

온 존재로 품고 있다

 

지구별의 눈물이 웅덩이마다 고이고

부끄러운 나의 발걸음 푹푹 잠기는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존재와 존재가 만나는 것 

가슴으로 듣는 것

사랑 때문에 아파하는 것

토닥여주는 것이라는 것을

 

나는 머리로만 알고 있었다

 

 

[류정아]

2025년 『문예바다』 등단. 

한글서예작가. 

 

작성 2026.05.27 09:47 수정 2026.05.27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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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