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쁘게 흘러가는 세상, 사람들은 앞만 보고 달린다. 너나 할 것 없이 다 그렇게 살아간다. 유유자적 살아가는 사람은 사회에서 도태된 사람이거나 돈이 많아서 돈 쓰는 재미에 빠진 사람이거나 무소유를 인생의 기치로 삼고 살아가는 자연인이거나 종교라는 성스러운 직업을 가진 성직자들뿐일 것이다.
삶이란 애초부터 죽도록 일해야 살아갈 수 있게 짜여진 자연스러운 현상인지 모른다. 그러니 우리 같은 중생은 삶이라는 보이지 않은 족쇄에 묶여 한평생 일만 하다 죽어야 하는 존재다. 오죽했으면 성경에도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도 했을까.
아일랜드 영화 ‘더 필드’를 보고 나니 속이 꽉 체한 듯 답답함이 밀려온다. 도대체 삶이 뭐길래 이토록 인간을 시험에 빠지게 하는지 영화를 보는 내내 이마 양미간에 주름을 만들게 했다. 그러나 이 지리멸렬한 삶의 서사는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역사의 흔적이며 삶의 궤적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어쩌면 생존 진화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슬프고 지독하게 아프고 가슴 저린다. 주인공 ‘불’ 노인의 땅에 대한 집착과 절규는 우리 조상들이 땅을 목숨같이 여겼던 절규와 같아서 더 슬펐다.
내 밭이다.
내 자식이야.
내가 키웠어, 내가 먹이고 돌봤다.
맨손으로 돌을 파내고 살아있는 걸로 만든 거다.
그걸 빼앗아 가겠다고?
하나님 앞에서도 난 못 내준다.
1930년대 아일랜드 서부의 거친 바람이 부는 해안 마을. 그곳에는 평생 돌밭을 일구며 살아온 한 남자가 있다. 사람들은 그를 ‘불 맥케이브’라고 부른다. 이름처럼 그는 완고하고 거칠며, 자신의 땅에 대한 집착이 누구보다 강한 인물이다. 그가 평생 피와 땀으로 일궈온 밭은 원래 자신의 소유가 아니었다. 그는 오랜 세월 지주에게 땅을 빌려 경작하며 돌을 골라내고, 척박한 흙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그에게 그 밭은 단순한 토지가 아니다. 자신의 인생 그 자체이며, 존재의 뿌리다.
그 땅의 주인은 세상을 떠나고 미망인이 그 땅의 주인이 되었다. 미망인은 ‘불’에게 소작료를 받지만 ‘불’에게 매우 불친절하고 경계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밭이 경매에 나오게 된다. ‘불’은 당연히 자신이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인물이 나타난다. 미국에서 돌아온 부유한 사업가가 땅을 사들여 관광 개발을 추진하려는 것이다. 그것은 시대의 변화일지 모르지만, ‘불’에게는 삶 전체를 빼앗기는 일이었다.
그는 점점 분노와 집착에 사로잡힌다. 가족과 이웃의 만류도 듣지 않은 채, 자신의 땅을 지키기 위해 폭력과 광기로 치닫는다. 아들마저 자신을 따르는 도구로 삼고 그런 아들은 아버지의 집념 속에서 괴로워한다. ‘불’의 땅에 대한 광기에 마을은 점점 불안과 긴장에 휩싸여 간다. 결국 인간의 욕망과 자존심, 그리고 땅에 대한 맹목적인 애착은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이어진다. ‘불’은 그 땅을 사려고 미국에서 온 ‘피터’에게 당장 돌아가라고 하자 이를 거절한다. ‘불’은 결국 아들에게 피터를 죽을 만큼 패주라고 명령하다. ‘불’은 피터에게 말한다.
‘이게 법이다’
결국 피터는 죽게 된다. 아들은 사랑하는 여인과 지긋지긋한 아버지 곁을 떠나 새로운 삶을 살아가려고 도망친다. 그러나 이미 광기에 사로잡힌 ‘불’은 소를 몰고 절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아들은 그런 ‘불’을 막아서지만 달리는 소에게 받쳐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고 만다. ‘불’은 모든 걸 잃고 바다에서 절규한다.
영화는 우리에게 묻는다. 도대체 소유란 무엇이며 땅이란 무엇인가. 땅이 인간을 소유하는가. 아니면 인간이 땅을 소유하는가. 인간은 무엇으로 존재하는가. 농업시대의 인간에게 땅은 목숨이다. 땅은 생존이며 노동이며 자존심이며 삶이다. 그게 어디 먼 옛날의 이야기인가. 바로 우리 어머니 아버지 할아버지 할머니 이야기다. ‘불’에게 땅은 시간이고 기억이며 한 생애이다. 이 생애를 지키기 위해 광기로 무장 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슬프고 아픈 서사 앞에 먹먹해진다.
주인공 ‘불’은 우리 농촌에서도 볼 수 있는 인물이다. 고집스럽게 땅을 일구며 한평생 살아온 노인들이 ‘불’이다. 이 노인들에게 그깟 땅이 뭐라고 사람까지 죽이는 광기에 휩싸이냐고 질타할 수 없다. ‘불’같은 노인들에게 땅은 인생의 전부이고 가족의 전부이며 삶의 전부다. 전 생애를 그 안에 묻어온 흔적이기에 남의 땅이지만 내 땅처럼 온 정성을 다해 가꾸고 살피고 사랑하는 것이다. 그 절박함이 광기로 표출되며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불’을 연기한 리처드 해리스의 모습이 오랫동안 가슴에 남는다. ‘불’은 폭력적이고 완고하지만, 동시에 처절하게 슬픈 인물이다. 그는 악인이기 이전에, 시대에서 밀려나는 우리 모두의 얼굴이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영화가 자연을 담아내는 방식이다. 거친 초원과 돌투성이 언덕, 음산한 바람과 회색 하늘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아일랜드의 풍경은 인간의 감정을 대신 말한다. 이 땅은 아름답지만 동시에 잔혹하다. 인간에게 먹을 것을 내어주지만, 집착하는 자를 끝내 파멸로 몰아넣는다.
‘불’의 집착은 위험하고 파괴적이지만, 동시에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진 본능이기도 하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밭’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것은 실제 땅일 수도 있고, 가족일 수도 있으며, 신념이나 기억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인간은 종종 그것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파괴한다. 아, 참 먹먹한 영화다.
[최민]
까칠하지만 따뜻한 휴머니스트로
영화를 통해 청춘을 위로받으면서
칼럼니스트와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대학에서는 경제학을 공부하고
플로리스트로 꽃의 경제를 실현하다가
밥벌이로 말단 공무원이 되었다.
이메일 : minchoe293@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