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용 칼럼] 디카시론의 본질적 허상

날시 개념과 재현의 오류

1. 들어가기: 디카시, 새로운 시인가

21세기 디지털 미디어 환경 속에서 기존 문학 형식의 변화는 필연적이다. 특히 스마트폰과 디지털카메라의 보급은 감각과 인식, 표현 양식에까지 변화를 가져왔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등장한 디카시(Dica-poem)는 창시자와 옹호론자들의 주장처럼, 영상 기호와 문자 기호의 결합(이상옥은 2025년 『디카시와 철학』에서는 사진 기호와 문자 기호의 결합으로 기술함.)이라는 이름으로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시’라는 수사를 등에 업고 부상하였다. 디카시 창시자로 알려진 이상옥은 그의 저서 『앙코르 디카시』(2010)에서, 디카시란, “날시(raw poem)를 디지털카메라로 포착하고, 그 침묵하는 언어를 시인이 듣고 문자로 재현함으로써 완성되는 시”라고 정의한다.


이 정의는 디카시의 본질을 설명하는 가장 핵심적인 주장으로 평가할 수 있다. 문학적 시각에서 이를 분석하면, 시의 언어, 형상, 창작의 주체성에 대한 다수의 이론적 모순을 드러낸다. 이 글은 이상옥의 디카시, 특히 ‘날시’ 개념과 ‘문자 재현’이라는 표현이 지닌 개념적 오류를 분석한다. 이것이 시라는 갈래에 대한 오해를 일으킬 수밖에 없다는 점을 비판적 시각으로 조명하고자 한다.

 

2. 날시와 극순간 감동의 포착이라는 환상

이상옥은 디카시의 출발점으로 ‘날시(raw poem)’를 제시한다. 그는 날시를 자연이나 사물, 사건에 깃든 극순간적 감동의 형상이라 한다. 이것이 디지털카메라로 포착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시각은 시의 형상이 외부 현실에 이미 존재한다는 실재론적 전제이다. 이는 시의 형상화가 시인의 내면에서 언어를 통해 구성해 나가는 창조적 행위임을 간과한 견해이다. 시의 형상은 외부 세계에 객관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시인이 언어적 조형을 통해 창출해내는 이미지이자 감각의 재구성물이다. ‘날시’라는 개념은 시인의 인식이나 사유 과정을 생략한 채, 시적 형상이 현실 속에 즉자적으로 존재한다는 환상을 전제한다. 시의 창작 행위를 감각적 포착에의 반응으로 축소한다.

 

3. 사진은 침묵하는 언어인가: 감각의 신비화와 언어의 환원

‘날시’를 포착한 사진을 이상옥은 ‘침묵하는 언어’라 부른다. 시인은 그 침묵을 ‘듣고’ 문자로 옮겨야 한다고 말한다. 이 주장은 매우 시적인 표현성을 띠고 있다. 실제로는 창작 과정을 신비화하고, 언어의 기능을 감각적 반응의 수단으로 환원시키는 문제를 안고 있다.

 

나는 자연이나 사물, 사건에 깃들인 시의 형상(극순간적 감동의 형상)을 날시(raw poem)이라고 명명한 것이다. 그렇다면 디카시는 날시의 포착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즉, 날시(raw poem)를 디지털카메라로 찍는 것이 시 창작의 단초다. 디지털카메라로 포착한 날시는 여전히 침묵하는 언어인데, 시인이 그 침묵의 언어를 듣고 옮겨 놓으면 디카시는 완결되는 것이다. 그래서 디카시는 날시를 디지털카메라로 찍어 문자로 재현한 시라고 정의한 것이다.

- 이상옥, 『앙코르 디카시』, 19쪽.


사진은 그 자체만으로는 언어가 아니다. 시각적 기호이다. 언어처럼 분절된 의미 구조나 시간적 논리를 내포하지 않는다. 이러한 기호적 차이를 무시하고 사진을 ‘침묵하는 언어’로 간주한다. 그리고 시인은 그것을 문자로 ‘재현’하면 된다는 논리이다. 이는 시 창작을 단지 직관에 의한 해석과 전달의 과정으로 축소한 것이다.

 

물론, 롤랑 바르트는 현상학적으로 사진의 과거 시간성과 침묵성을 중요하게 다루었다. 이는 ‘언어 불가능성’의 관점이다. 디카시론은 이 ‘언어 불가능성’을 철저히 외면한다. 사진에 문자로 설명을 덧붙여 ‘언어 가능성’을 추구한다. 그러면서 일부 옹호론자는 롤랑 바르트의 주장인 듯 내세운다.

 

더 나아가, ‘재현’이라는 단어의 사용에도 문제가 있다. 사진을 문자로 ‘재현’한다는 것은 결국에는 사진에 대한 감각적 설명 혹은 해석을 의미할 뿐이다. 시는 단순한 재현이 아닌, 언어의 다성성, 다층성, 다중성 등의 밀도와 내밀함, 함축과 전환, 상징의 구조화, 감정의 거리두기 등을 포함한 복합적 작업이다. 

 

따라서 디카시가 사진을 문자로 ‘재현’하는 것이 곧 시의 완성이라는 주장은 깃털만큼 가볍다. 이는 시를 사진의 보조물 혹은 해설문으로 격하하는 개념적 오류이다. 롤랑 바르트가 우려한 지점을 디카시론은 이용한다. 롤랑 바르트의 사진 이론의 개념을 본래의 의미와 달리 해석하고, 권위를 이용한 것이다.

 

4. 순간 언술과 시의 혼동

디카시 창시자 이상옥과 협회 소속 일부는 ‘극순간의 감동’과 그것에 대한 ‘순간적 언술’을 특징으로 내세운다. 이 조합은 시라는 갈래의 본질과 충돌한다. 시는 단지 감정을 전달하는 매체가 아니다. 언어를 통해 세계를 낯설게 하고, 형상화와 전경화를 통해 새로운 인식을 생성한다. 나아가 독자의 감각을 변형하는 언어 예술이다.
 

디카시가 사진 한 컷과 ‘언술’로 완성된다는 주장에 주목해 본다. 그 언술은 시적 언어의 조형성과 구조화와는 거리가 멀다. 즉물적 감정 표출이나 단순 묘사로 귀결할 위험성이 높다. 결국, 디카시는 시라는 이름을 빌렸지만, 시적 언어의 심층적 작용을 외면한 채, 감각의 기록과 반응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이는 디카에세이일 뿐이다.

 

5. 향후 보완 방향

디카시는 단순히 시와 사진의 결합이 아니다. 스마트폰이라는 촬영·편집·배포가 통합된 미디어 환경의 산물이다. 따라서 텍스트의 창작 논의는 매체 기술의 작동 방식과 결부해야 한다. 독자의 해석 행위는 텍스트의 일부로 기능한다. 사진과 언어의 병치에서 생기는 의미의 공백을 메우는 것은 독자의 인지적 개입이다. 디카시의 본질은 자유로운 창작물이다. 고정 혹은 고착된 창작물이 아니다. 이미지와 언어, 독자의 상호 작용으로 생성하는 흐름적 텍스트로 재규정할 필요가 있다.

 

6. 나가기: 기호의 환상과 언어의 실천으로

이상옥의 디카시론은 디지털 매체 시대의 감각적 창작 욕망을 포착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날시의 포착’과 ‘문자 재현’이라는 개념은 시 창작의 본질을 오해한 결과이다. 시를 외부 현실의 반영물로 환원시키는 실재론적 환상에 머문다. 이러한 입장은 디카시를 기술적 반응의 기록물로 축소시킴으로써 문학의 언어적 자율성과 창작의 실천성을 약화시킨다.

 

기호학적 관점(소쉬르, 바르트 관점)에서 보면, 사진과 언어는 서로 다른 기호 체계이다. 사진은 지시적(iconic) 기호로서 ‘무엇을 닮음’에 근거하지만, 언어는 자의적(arbitrary) 기호로서 기표와 기의의 관계가 끝없이 유동한다. 사진을 ‘침묵하는 언어’로 동일시하는 순간, 이 기호적 차이는 휘발한다. 디카시는 결국 사진의 설명적 보조물로 전락한다. 시는 재현의 언어와는 거리가 멀다. 언어는 언제나 현실을 변형하고, 재구조화한다. 나아가 새로운 의미망을 구축한다.

 

해체주의의 시각에서도 ‘날시’는 불가능한 순수성의 환상이다.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 1930~2004)가 말한 ‘차연(différance)의 원리’에 따르면, “날것의 시”는 결코 직접적으로 포착되지 않는다. 모든 경험은 언어의 지연과 흔적 속에서 구성된다. 따라서 시는 외부 현실을 받아 적는 행위가 아니다. 기표의 흔들림을 탐색하는 것이다. 그 빈틈을 조직하는 창작의 실천이다. ‘포착’이 아닌 ‘구성’, ‘재현’이 아닌 ‘전복’이야말로 현대 시학의 핵심이다.

 

실천적 차원에서 보면, 디카시가 문학으로서 지속적인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확장해 나갈 필요가 있다. 기호 실험 강화 측면에서, 사진과 언어가 중첩하는 순간에 발생하는 기호의 간극을 드러내고, 그 틈에서 생성하는 다중성, 다층적 의미를 탐색해야 한다.

언어의 비판적 자의식 측면에서, 디카시 언어가 단순히 감각을 포착하는 도구가 아니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언어의 구조적 가능성을 실험해야 한다. 

 

미디어 환경의 성찰 측면에서, 디카시는 디지털 이미지와 문자라는 매체적 층위를 의식적으로 탐구해야 한다. 감각과 기술, 언어의 관계를 수평과 지평의 시각, 즉 비평적 시각을 드러내야 한다.

 

진정한 의미의 디카시는 사진을 재현하는 시이기를 거부함이 마땅하다. 사진과 언어가 교차하며 발생하는 기호적 긴장과 차이를 창조적으로 조직하는 시이어야 한다. ‘날시’라는 개념이 부여한 순수성과 실재론의 허상을 벗어던지고, 언어의 시간 속에서, 언어의 실천을 통해 디지털 시대의 시학을 재구성할 때, 디카시는 비로소 문학으로서의 심층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날시’라는 개념이 시의 형상이 외부 현실에 즉자적으로 존재한다는 실재론적 환상에 기반하고 있음을 분석했다. 사진을 ‘침묵하는 언어’로 간주하고 이를 문자로 재현할 수 있다는 주장은 기호 체계의 차이를 삭제한다. 그 결과 시를 언어적 구성물이 아닌 감각의 기록으로 축소한다. 이는 디카시를 시가 아닌 설명적 이미지 보조물로 전락시키는 개념적 오류이다.

 

 

[신기용]

문학 박사

도서출판 이바구, 계간 『문예창작』 발행인

경남정보대학교 특임교수

저서:평론집 10권, 이론서 4권, 연구서 3권, 시집 6권

동시집 2권, 산문집 2권, 동화책 1권, 시조집 1권 등

이메일 shin1004a@hanmail.net

 

작성 2026.06.03 11:28 수정 2026.06.03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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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