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이, 별거 아닙니다."
칭찬을 받으면 우리는 반사적으로 손사래부터 친다. 성과를 인정받는 자리에서도 "운이 좋았을 뿐"이라며 황급히 자신을 깎아내린다. 그렇게 해야 미덕인 줄 알았다. 겸손은 곧 나를 낮추는 것이라고 배워왔으니까.
과연 그럴까. 많은 사람이 겸손을 자기 비하와 혼동한다. 자신의 능력과 성취를 제대로 드러내는 건 교만으로 치부되곤 한다. 하지만 진정한 겸손은 자신을 과장하지도 지나치게 낮추지도 않는 균형 감각이다. 과소평가와 과대평가 사이, 그 중간 어딘가에 진짜 겸손이 있다.
현대 심리학에 따르면, 겸손은 자기 가치를 낮춰 보는 태도가 아니라 자신의 강점과 약점, 한계를 비교적 정확하게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태도에 가깝다. 겸손한 사람은 장점을 부풀리지도 약점을 숨기지도 않는다. 결국 겸손은 자기 비하가 아니라 객관적인 자기 인식, 즉 메타인지의 문제다.
병원에서도 그렇다. 반려동물이 병원을 찾는 이유는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비슷한 증상, 익숙한 패턴. 많이 다뤄본 케이스일수록 '아, 그거구나' 하고 다 안다고 여기기 쉽다. 그런데 겉으로는 전과 똑같아 보여도 원인이 전혀 다를 때가 있다. 안다고 자만하는 순간 놓친다. 그래서 매번 처음 보듯 면밀히 들여다본다. 자만은 오진으로 이어지고 그 대가는 말 못 하는 생명이 치른다.
지나친 낮춤은 대가를 치른다. 자신의 성과를 드러내는 게 죄송한 일이 되는 문화에서는 정작 능력 있는 사람이 기회를 놓친다. 퍼스널 브랜딩 시대, 자신을 정확히 알리는 것도 역량이다. 나를 한없이 낮춘다고 해서 능력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그게 상대를 높이는 것도 아니다.
글을 쓰고 강연을 하다 보면 종종 칭찬을 듣는다. 글이 좋았다, 강연이 인상 깊었다. 예전의 나는 반사적으로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별거 아니에요" “제가 뭘요.” 그게 겸손인 줄 알았다. 지금은 다르게 답한다.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렇게 받으면 칭찬한 사람도 머쓱하지 않고 내 성과의 가치도 깎이지 않는다. 무작정 낮춘다고 겸손이 아니다. 감사로 받는 것, 그게 더 정직한 겸손이다.
그렇다면 겸손의 본질은 무엇일까. 류시화 작가는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에서 이렇게 말한다. "자만은 '나는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다.'이다. 그리고 겸손은 '나는 다른 존재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이다." 겸손은 나를 깎아내리는 게 아니라 나와 세상의 관계를 정확히 아는 일이라는 거다.
겸손은 성장의 전제이기도 하다. 자신이 다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질문이 멈추고, 질문이 멈추는 순간 배움도 멈춘다.
나 역시 책을 읽을수록, 배울수록 더 겸손해진다. 아는 게 느는 속도보다 모르는 게 보이는 속도가 더 빠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배우고 싶어진다. 겸손은 배움의 결과이면서 동시에 다음 배움을 끌어오는 엔진인 셈이다.
겸손은 자기 비하도 아니고 자기 과시도 아닌 그 중간 어딘가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알고,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 그게 진짜 겸손이다.
오늘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나는 지금 나를 낮추고 있는가, 아니면 나를 정확히 보고 있는가.
[박근필]
그로쓰 퍼실리테이터
읽고 쓰고 말하는 삶으로 당신의 성장을 돕습니다
박근필성장연구소장, 수의사,
칼럼니스트, 커리어 스토리텔러
저서; <마흔 더 늦기 전에 생각의 틀을 리셋하라>
독저팅, 필북, 필레터, 필라이프 코칭 운영
부산 시청 특강 외 다수 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