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상 칼럼] 바다

이태상

바다

 

 

영원과 무한과 절대를 상징하는 

신의 자비로운 품에 

뛰어든 인생이련만

어이 이다지도 고달플까

 

애수에 찬 갈매기의 꿈은 

정녕 출렁이는 파도 속에

있으리라

 

인간의 마음아

바다가 되어라

 

내 마음 

바다가 되어라

 

태양의 정열과 

창공의 희망을 지닌 

바다의 마음이 무척 부럽다

 

순진무구한 동심과

진정한 모성애 간직한 

바다의 품이 

마냥 그립다

 

비록 한 방울의 물이로되

흘러흘러

바다로 간다. 

 

The Sea

 

 

Thou symbolizing eternity

Infinity and the absolute

Art God.

 

How agonizing a spectacle 

Is life in blindness 

Tumbled into Thy callous cart

To be such a dreamy sod!

 

A dreamland of the gull

Of sorrow and loneliness full

Where would it be?

Beyond mortal reach would it be?

 

May humanity be 

A sea of compassion!

 

My heart itself be

A sea of communion!

 

I envy Thy heart

Containing passions of the sun

And fantasies of the sky.

 

I long for Thy bosom

Nursing childlike enthusiasm

And all-embracing mother nature.

 

Although a drop of water,

It trickles into the sea.

 

 

 

 코스모스

 

 

소년은 코스모스가 좋았다.

이유도 없이 그냥 좋았다. 

 

소녀의 순정을 뜻하는 

꽃인 줄 알게 되면서

청년은 코스모스를 

사랑하게 되었다. 

 

철이 들면서 나그네는

코스미안의 길에 올랐다.

카오스 같은 세상에서

코스모스 같은 우주를 찾아

 

그리움에 결코

지치지 않는 노인은 

무심히 뒤를 돌아보고

빙그레 한 번 웃으리라

걸어온 발자국마다

무수히 피어난 

코스모스를 발견하고

 

무지개를 좇는 

파랑새의 애절한 꿈은 

정녕 폭풍우 휘몰아치는 

먹장구름 너머 있으리라.

 

무지개를 올라탄 

파랑새가 된 코스미안은 

더할 수 없이 황홀하리라

 

사랑의 무지개배 타고서 

어기여차 뱃놀이하면서

 

하늘하늘 하늘에서 춤추는 

코스모스바다 위로 날면서

 

코스모스 칸타타 

노래 부르리라

 

모든 건 더할 수 없이

다 아름답다고

다 좋다고

다 경이롭다고

믿을 수 없도록

 

Cosmos

 

 

When I was a boy

I liked the cosmos, 

Cozy and coy

Without rhyme or reason to toss.

 

Later on as a young man,

I fell in love with the cosmos,

Conscious of the significance 

Of this flower for me sure,

The symbol of a girl’s love pure, 

 

As I cut my wisdom teeth,

Traveling the world far and near

In my pursuit of cosmos 

In a chaotic world.

 

Upon looking back one day,

Forever longing, forever young,

Never aging, never exhausted

By yearning for cosmos, 

I’d found unawares numerous cosmos

That had blossomed all along the road

That I had journeyed. 

 

A dreamland of the bluebird, 

Looking for a rainbow, 

Where could it be?

 

Over and beyond the stormy clouds,

Lo and behold, there it is,

The wild blue yonder

Where you can sail and soar 

In the sea and sky of Cosmos

Arainbow, chanting 

Cosmos Cantata:

 

All’s beautiful!

All’s well!

All’s wonderful!

Beyond belief! 

 

아, 우린 모두 하나같이 이런 코스모스바다에서 출렁이고 춤추는 사랑의 피와 땀과 눈물방울들이어라. 우린 모두 하나같이 이런 하늘하늘 하늘에 뜨는 무지개가 되기 위한 물방울들이어라. 아, 우린 모두 하나같이 코스모스바다로 돌아갈거나!

 

 

 “때로는 좀 귀머거리가 될 필요가 있다고 시어머님께서 내게 일러주셨다.”

 

이는 몇 년 전 타계한 미국 연방 대법원 판사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1933-2020)가 생전에 한 말이다. 뉴욕타임스 전면에 사진과 함께 “남한에서는 코비드19의 위험이 하나 더 있다. 곧 악플러들이다.”라는 기사 제목으로 김지선(29) 씨를 비롯한 코비드 양성 판정받은 코로나 환자들이 겪는 악플 피해에 대해 최상헌 기자가 쓴 부산발 기사가 대서특필되었다. 그러지 않아도 최근에 한국사회에서 악플에 희생된 연예인들, 노무현 전 대통령과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포함한 정치인들의 잇단 자살, 그리고 거의 만사를 제쳐 놓고 전 현직 법무부 장관의 가족 신상털기에 급급, 골몰해온 너무도 ‘도토리 키재기’ 식의 ‘마녀사냥’ 이 판치고 있는 세태에 위에 인용한 ‘귀머거리’ 조언을 우리 모두 귀담아들어야 하지 않을까. 이는 외부의 세상 소리보다 네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라는 뜻이리라. ‘네 가슴 (뛰는) 소리를 들어(1988)’란 스웨덴의 팝 듀오 록시트가 부른 노래도 있지 않은가. 그리고 우리말에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 하지 않나.

 

앞서 깨달은 선각자 칼릴 지브란(1883-1931)이 그의 ‘예언자(1923)’에서 ‘죄와 벌’과 ‘법’에 대해 하는 말도 우리 경청해 보리라.

 

“죄와 벌이란 어떻죠?”한 판사가 물어보자

알무스타파 대답한다.

 

다른 사람에게 하는 짓

바로 자신에게 하는 짓.

 

죄와 벌을 안다는 것이

바로 사람 되는 것이리.

 

사람에겐 신성(神性)과

수성(獸性) 둘 다 있어

어떤 성자나 의인이라도

우리 모두의 사람됨보다

조금도 더 나을 것 없고 

세상의 어떤 죄인이라도 

우리 모두의 사람됨보다

조금도 못 하지 않으리니.

 

나뭇잎 그 어느 하나도

나무가 모르게 저 혼자

단풍 들고 떨어지거나

죄를 짓는 어떤 죄인도 

우리 모두의 잘못 없이

어떤 죄도 짓지 못하리.

 

우린 모두 함께 행진하는 

길이요 또한 길손들이리

지상에서 천상으로 가는.

 

길 가다 어느 누가 넘어지면 

뒤따라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발부리에 걸리는 돌 있다고

조심하라 알려 주는 것이리.

그리고 그가 넘어지는 것은

앞서 넘어지지 않고 빨리 간

사람들이 뒤에 오는 사람들

넘어지지 않도록 그 돌들을

치워 놓지 않은 걸 탓함이리.

 

목숨을 빼앗기는 사람도 

재산을 도둑맞는 사람도 

죽음과 도난당하는 일에

의인도 죄인의 죄지음에

아무 책임이 없지 않으리.

죄인이야말로 피해자로서

죄 없는 사람들을 대신해

죄짓고 벌 받는 것이리오.

 

진실로는 정의와 불의를

선과 악을 누가 구별할 수 

없는 것이 해와 달 아래 

낮과 밤이, 마치 흰 실과 

검은 실 함께 짜여지는

옷감과 같은 것이리오.

검은 실이 끊어져 버리면

옷감 베를 짜는 사람은

옷감 전체를 잘 살피고 

베틀까지 챙겨 보리오.

 

그 누가 부정한 아내를 

정죄 처벌하겠다 하면 

그 여인의 남편 마음과

영혼도 저울에 달아보리.

 

가해자를 처벌하기 전

피해자의 책임도 물어

악의 나무 도끼로 찍기

전에 그 뿌리를 살피리.

선과 악 결실과 불결실

그 뿌리가 한데 어울려

땅속 깊이 박혀 있음을 

그대는 알 수 있으리오. 

 

정의롭다는 판사님들

몸으로는 죄가 없으나

마음으로 죄짓는 자를 

어떻게 판결하시리오. 

겉으로는 살인을 해도

속으로는 살인 당하는

사람에게 어떤 판결

내릴 수가 있으리오. 

행동으론 사람들을

속이고 압박하여도

자기 자신들이 심한

고통을 겪는 자들을

어떻게 정죄하시리오.

 

잘못 저지른 것보다

더 크게 뉘우치는 자

어떻게 처벌하시리오.

법을 집행한다는 것

그 정의가 참회하는 

후회를 이끌어 내는

것이라면 말이라오. 

 

죄가 없는 사람에게 

뉘우침 갖게 못 하듯

죄가 있는 자에게서

죄책감을 없애줄 수

없는 일이 아니리오. 

 

사람은 그 누구라도

밤에 잠자리에 누워

스스로를 돌아보리. 

 

정의를 안다고 하는

그대들이 날이 밝은

환한 빛에 모든 걸

살펴보지도 않고서

어찌 알 수 있으리.

 

하늘과 땅 사이에

사원의 주춧돌이

건물 기초 다지는

초석보다 가볍고 

맨 밑바닥에 깔린 

돌보다 더 높거나

덜 중요하지 않은

것과 같은 것이리. 

 

“법이란 어떤 거죠?”

한 법관이 물어보자

알무스타파 대답한다.

 

사람들 법 만들기 좋아하나?

그 법 깨는 걸 더 좋아하오.

애들이 모래성을 쌓았다가

그 모래성을 무너뜨리듯이.

 

애들이 모래성 쌓는 동안 

더 많은 파도 밀려오고

애들이 모래성 허물 때면 

바다가 함께 웃어주지요.

 

삶이 바다 같지 않다고 

사람이 만드는 법이란

모래성과 다르다며

삶은 바윗돌과 같아

마치 끌로 바위 쪼듯

법으로 삶 다스리라

말하는 사람 있다면

팔과 다리 온전해서

즐겁게 춤추는 사람 

저처럼 병신이 되기 

바라는 절름발이나

자유롭게 뛰어노는

사슴 보고 길 잃은 

떠돌이라 흉보는 

멍에 멘 소와 같고

 

껍질 벗고 젊어진 뱀에게

벌거벗고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며 흉만 보려 드는 

허물 벗지 못하고 겉늙은

뱀과 같다 할 수 있으리오.

 

잔칫집에 일찍 찾아와서

실컷 먹고 마신 다음에

비틀걸음으로 떠나면서

잔치 손님 다 난장패라고 

술주정하는 술주정꾼이리.

 

이런 사람 햇빛을 받되

해를 등지고 사는 사람

그림자만 보는 사람에겐

법이란 제 그림자일 뿐

저 밝고 찬란한 태양도

그늘이나 지게 해주는 

제 그림자 좇는 것이리. 

 

땅에 지는 그림자가 어찌

밝은 해바라기의 웃음을 

지워버릴 수가 있으리오. 

 

바람을 타고 여행하는 자

그대에게 어떤 바람개비

그대가 갈 길 가리키리오.

 

인간이 만든 어떤 법률이

그대를 속박할 수 있으리

있지도 않은 감옥 문에다

그대의 멍에 벗어놓으면 

 

인간이 만든 어떤 법률을

그대가 두려워해야 하리

있지도 않은 쇠사슬 걸려

넘어지듯 춤출 수 있다면

 

누가 그대를 법의 심판

받게 할 수가 있으리오.

찢어 벗어버린 그대 옷

아무도 가지 않는 길에 

버려 놔두지 않는다면

 

오르파리스성(城) 사람들이여

북소리 숨죽일 수 있고

악기 숨 늦출 수 있어도

저 하늘에 나는 종달새 

지저귀지 말라 못하리오.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

이메일 :1230ts@gmail.com

 

작성 2026.07.04 10:27 수정 2026.07.04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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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