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명희의 맛있는 개똥철학] 존엄사

전명희

인간은 태어나는 것은 선택하지 못하지만, 죽음은 선택할 수 있어야 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의학은 죽음을 늦추는 기술을 눈부시게 발전시켰지만, 정작 ‘잘 죽는 법’은 우리 사회의 금기가 되어버렸다. 잘 죽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하는 것이 지금 우리 모두에게 내려진 숙제다. 부질없는 생명 연장으로 인간의 존엄이 무시되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는 질문 앞에서 우리는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다.

 

죽음에는 여러 모습이 있다. 자연의 흐름을 받아들이는 자연사, 스스로 먹고 마시는 일을 중단하며 삶을 마무리하려는 단식사, 극심한 고통 속에서 죽음을 선택하는 안락사 등이 있지만 각각의 방식은 윤리와 법, 종교와 철학이 첨예하게 만나는 영역이며, 어느 하나를 단순한 찬반의 논리로 재단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 모든 논의의 중심에는 단 하나의 가치가 있어야 한다. 바로 인간의 존엄이다. 우리는 죽음을 너무 오랫동안 패배로만 여겨왔다. 그래서 의학은 죽음을 이겨야 할 대상으로 삼았고, 사회는 죽음을 끝까지 미루는 것을 선으로 받아들였다. 

 

생물학적 생명의 연장과 인간다운 삶의 지속은 반드시 같은 의미가 아니다. 단지 심장만 뛰는 시간을 삶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이제는 사회 전체가 성숙하게 질문해야 한다. 오늘날의 죽음은 병원의 손익계산서와 맞물려 기계와 각종 장치 속으로 들어간다. 가족은 임종을 준비하기보다 서류를 준비하고, 환자는 마지막 인사를 나누기보다 의료기기 사이에서 시간을 보낸다. 죽음은 삶에서 가장 인간적인 순간이어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가장 비인간적인 절차가 되어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동양의 수행 전통은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오래된 기록에는 자신의 임종을 미리 알고 제자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눈 수행자들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또한 티베트 불교에서는 오랜 수행 끝에 육신마저 빛으로 환원된다는 '무지개몸' 전승이 전해져 내려온다. 이러한 전통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든, 상징적 가르침으로 이해하든 그 핵심은 분명하다.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의식적으로 준비해야 할 삶의 완성이라는 점이다.

 

이제 우리 사회는 인간의 마지막 권리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라는 문제를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연명의료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더욱 존중하여 죽음을 미리 준비하는 문화와 제도를 정착시켜야 한다. 동시에 안락사와 조력죽음 같은 민감한 문제 역시 인간의 존엄이라는 관점에서 깊이 있는 사회적 합의를 이어가야 한다. 중요한 것은 특정 제도를 서둘러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선택을 하든 인간의 존엄이 가장 앞에 서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우리는 잘사는 법만 배워서는 안 된다. 잘 죽는 법도 배워야 한다. 삶의 마지막이 존엄할 때, 삶의 전 과정도 더욱 존엄해진다.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삶을 포기하는 일이 아니라, 삶을 끝까지 사랑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죽음은 생명의 끝이 아니라, 존엄의 마지막 시험이다.”

 

 

[전명희]

서울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다 그만두고

‘밖철학연구소’를 설립해 연구에 몰두했지만

철학 없는 철학이 진정한 철학임을 깨달아

자유로운 떠돌이 여행자가 된 무소유이스트

이메일 jmh1016@yahoo.com

 

작성 2026.07.10 11:37 수정 2026.07.10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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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