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하리 초공간예술 작가가 단체전 《오후 4시의 쉼》에서 신작 〈머무는 온기〉를 발표하며, 반복과 축적을 통해 존재와 시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작품세계를 선보였다. 이번 작품은 한지끈이라는 한국적 재료를 바탕으로 물질과 비물질, 기억과 공간의 관계를 사유하게 하는 작업으로, 동시대미술 속에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조형 언어를 보여준다.
작품의 화면을 가득 채운 수많은 한지끈은 하나의 재료를 넘어 시간의 흔적을 기록하는 매개체가 된다. 같은 행위를 반복하며 한 올 한 올 이어 붙이는 과정은 단순한 제작 방식이 아니라 삶이 축적되는 시간을 화면에 새기는 수행적 행위이다. 이러한 반복은 화면에 리듬과 밀도를 형성하고, 보이지 않는 시간의 흐름을 눈앞에 드러내는 조형적 언어로 완성된다.
작품 속 붉은색과 검은색은 강렬한 대비를 이루면서도 서로를 배제하지 않는다. 붉은색은 생명의 에너지와 관계의 온기를 상징하고, 검은색은 존재를 지탱하는 중심과 균형을 의미한다. 그 사이를 메우는 흰색 한지끈의 층위는 수많은 기억과 경험이 켜켜이 쌓인 시간의 지층을 연상시키며, 서로 다른 요소들은 긴장과 조화를 이루면서 하나의 공간을 형성한다.
김하리 작가가 추구하는 초공간예술은 물리적인 공간을 묘사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과 기억, 관계와 시간까지 하나의 공간으로 인식하며, 존재가 지나간 자리마다 축적되는 흔적을 조형적으로 표현한다. 공간은 비어 있는 장소가 아니라 인간의 삶과 시간이 머무는 장이며, 작품은 그 보이지 않는 층위를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하나의 철학적 사유가 된다.
작품 제목 〈머무는 온기〉는 사람이 떠난 뒤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 감정과 기억의 잔향을 의미한다. 우리는 서로를 스쳐 지나가지만 그 만남은 흔적을 남기고, 그 흔적은 다시 또 다른 관계와 시간을 만들어 낸다. 작가는 이러한 존재의 연결성을 한지끈의 반복과 축적을 통해 형상화하며, 삶은 단절이 아니라 끊임없이 이어지는 관계의 과정임을 이야기한다.
김하리의 작업은 전통 재료를 현대적으로 사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통해 새로운 공간 개념을 제안한다. 반복은 노동이 아니라 사유이며, 축적은 형식이 아니라 존재를 이해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그의 작품은 동시대미술이 제기하는 물질성과 시간성에 대한 질문과도 맞닿아 있다. 이러한 예술적 탐구는 초공간예술이라는 독자적인 개념을 중심으로 더욱 확장되고 있다.
이번 《오후 4시의 쉼》전에서 선보인 〈머무는 온기〉는 눈에 보이는 형태를 넘어 시간과 기억, 관계와 존재를 성찰하게 하는 작품이다. 반복 속에서 만들어진 화면은 관람자에게 잠시 멈춰 자신의 삶과 기억을 돌아보게 하며, 예술이 공간을 넘어 인간 존재의 본질을 사유하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SDU갤러리(서울 강서구 공항대로 424)에서 7.13. ~ 7.18까지 전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