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간세설] 친구야, 나는 골프를 접었다

천민자본주의의 상징, 시간이 아까워


친구야, 나는 골프를 접었다

 

브리티쉬오픈 대회를 하는 골프의 발상지 스코틀랜드의 세인트 앤드류스(St. Andrews)에서 골프를 쳤지. '스카보로의 추억(Scarborough Fair)'을 들으며 환상적인 잉글랜드 동부 해안으로 차를 몰아 영화 드라큐라를 찍은 위트비(Witby)에서는 하루에 108홀도 쳐봤다니까.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꼬마 아들 녀석이 카트를 끌며 캐디를 하고 깎아지른 해안단구 위에 걸린 한여름의 백야현상 덕분에 새벽 4시부터 밤 10시까지 고라니처럼 뛰면서 18홀 6바퀴를 돈 것은 확실해. 김밥과 육포와 생수가 동나긴 했지만 주야장천 종일 게임 비용은 우리 돈  2만 원이면 충분했지.

그 때 난 로빈훗의 고장 노팅험(Nottingham)에 살았어. 여름날 동네 골프장은 더욱 재미있었지. 앞에 아무도 없는 한산한 필드에서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황제 골프야. 치마를 입은 칠순 할머니가 공을 친 후 꼬부랑 허리에 골프채 지팡이 삼아 산 너머 딸네 집 가듯 홀로 언덕을 넘고, 비키니 차림의 팔등신 금발 미녀가 맨발에 선글라스를 끼고 일광욕 겸해 드라이브샷을 치고 나가면 헤롱헤롱 남정네들은 아랫도리가 풀려 공이 형편없이 숲속으로 날아가버렸다니까. 그래도 좋다고 낄낄거렸으니......


난 반바지 차림에 공을 두 개씩이나 치고 다녔지. 한 조에 한 명도 좋고 두 명도 좋고 다섯 명까지 나가도 돼. 그것도 아침 9시 전에 들어가면 돈 받는 관리인이 없어 공짜였어. 어이없이 오비가 나서 야생화 덤불 속에 빠지는 날엔 공 찾으면서 산딸기를 실컷 따먹고 놀아도 돼.

그 골프채 이삿짐 속에 챙겨 우리나라로 왔지. 처음으로 친구따라 어느 골프장에 갔더니 그 부류에 끼지 못하면 사람 축에도 들지 못하는 것처럼 천민자본주의의 거드럭거림이 농약 먹은 까칠한 잔디 위로 천박하게 굴러다니더군. 게임을 시작하려는데 내가 모자를 안 썼으니 못나간다고 하더라. 개똥같은 격식 때문에 클럽하우스에 가서 모자 하나 샀지. 제일 짧은 코스의 그린 위에 올라 퍼팅을 하려는데 뒤따르는 팀이 공을 친다고 나무 밑으로 피신하라네. 젠장 이렇게 떠밀려 다니는 골치 아픈 골프가 어딨어.


배에 기름 낀 사람들이 그늘집 마다 눌러앉아 뭘 그리도 먹는지. 이래 가지고 무슨 운동이 되고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아지겠어. 사업상 나와서 면식이나 익히고 져주는 내기골프에 로비나 하는 거지. 끝나고 나서 벌거벗고 목욕하면서 서로 뻔뻔스런 사이가 되고 저녁에는 대부분 한 잔 크게 때리는 모양이더군. 월급쟁이들도 자기 돈 내고 골프친다고 하는데 나도 월급쟁이지만 웃기는 이야기더라. 잘은 모르지만 비용을 책임지는 스폰서라는 게 있고 골프 가방 속에 뭐가 왔다갔다 한다는 얘기 예전에 많이 들었쟎아. 


그날 밤 집으로 돌아와 맹세했다. 두번 다시 우리나라에서는 골프를 치지 않겠다고. 섬에 가서 늙은 어부를 도와 땔나무 장작이나 패는게 낫지. 앞으로 누구든 나보고 골프치자는 소리 하지마. 알았지?

  

 - 이봉수 논설주간


이봉수 기자
작성 2018.08.19 15:26 수정 2018.08.25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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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