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 유난히 바뀌지 않는 것. 바로 성에 대한 인식이다.
선진국이라 불리며 세계에 맞춰 빠르게 변화하고 있음에도 여성을 성적 놀잇감으로 보는 인식은 여전하다.
1970~80년대 성매매와 현재 디지털 성범죄의 구조는 얼마나 바뀌었는가. 제자리걸음이다. 돈을 벌게 해주겠다고 유인하는 수법은 예전과 같고 ‘N번방’ 운영자들은 미성년자까지 성노예로 부리며 성매매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잔인함을 더 하였다.
26만 명. 여성과 미성년자들을 성 착취한 영상을 제작하고 유포한 ‘n번방’을 이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의 숫자다.
n번방 사건이 불거지자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반론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소수의 남성’이 저지른 행위를 가지고 모든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여성을 대상으로 벌어진 범죄가 알려지고, 사회적 관심이 쏠릴 때마다 되풀이되는 소리다.
검찰청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성폭력은 총 32,858명으로 남성 31,737 여성 972명이다. 범죄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성 매수 등)은 총 671명으로 남성 512명, 여성 156명이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음란물 등)은 총 909명으로 남성 863명, 여성 34명이다.
통계수치로 보았을 때도 여성이 남성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기 충분하다.
더불어 디지털 성범죄인 경우엔 벌금형 혹은 가해자가 초범이라는 이유로 기소유예 등 불기소된 경우가 많은 것이 문제이다.
민갑룡 경찰청장에 따르면 “성 착취 영상 제작자, 관련 영상을 유포하거나 단순 소지한 자는 ‘6만’ 명”,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는 ‘26만 630명’이 N번방과 유사한 56개의 성 착취 방 참여 인원을 단순 합산한 수치라고 밝혔다.
아이디 한 개로 여러 명이 같이 썼을 가능성을 고려한다면, 인원은 더욱 늘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조주빈도 겉모습은 평범한 20대 청년이었다. 이래도 ‘소수의 남성’의 행위일 뿐이라 주장 할 수 있는가?
범죄는 범죄로 잊힌다. 수많은 여성을 향한 범죄가 되풀이되어도 성 착취 구조는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사법부의 솜방망이 처벌로 이제는 그 몸집이 26만 명으로 불어난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 왜 일반화해?” “세상에 모든 남자가 그런 건 아니잖아” 라며 방관하는 자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들이 그렇게 선 그으려 할 때 ‘텔레그램 탈퇴’라는 키워드가 소름 돋게도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
잠재적 가해자라는 취급이 싫다면 그것에 대한 불만이 아닌 ‘잠재적 가해자’라는 소리를 더 듣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향해 나아가는 데 힘을 기여하는 것이다.
한 사람 더 나선다고 여성을 향한 성범죄가 사라질까 하는 의문이 들지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손을 놓으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모든 것은 연대함으로 이루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