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점점 돋아 오르는 4월의 꼬리가 저 많치 보이는 듯합니다.
밤새 비가 지난 후 햇살의 투명함 때문일까? 길가의 한그루 개복숭아나무 가지의 붉은빛이 더욱 눈에 듭니다. 멀잖아 누구 들여다보아주는 사람 없어도 저 홀로 붉게 흐드러져 부끄러워하겠지요.
남양 가는 길 南陽途中
복숭아길 강남 땅 고향엔 돌아가지 못하는데 桃梗江南歸計差
두견새는 슬피 울고 나무엔 꽃이 피네 杜鵑啼血樹生花
농부는 긴 보습으로 누런 도랑을 갈고 있고 農夫黃獰長滑耕
처녀들은 하얀 팔 뻗어 뽕을 따는 구나 桑女靑條皓腕斜
-유몽인(柳夢寅.1559~1623) 1603년, 기전(畿甸)지방 남양을 암행할 때 남긴 시(詩) 한 구절.
400여년 전, 유몽인은 왕명으로 암행어사가 되어 경기서남부 시화호지역을 살피게 됩니다. 봄은 무르익어 꽃은 피는데 백성들의 ‘보릿고개’ 막바지에 더욱 시름 깊었겠지요. 농부들은 그 시름 잊으려고 부지런히 일을 합니다. 그런 정감을 애써 살핀 애민의 감정이 너무 곱습니다.
<노랑부리신문>의 살핌이 먼 훗날 이와 같지 않으련가? 진정 시화호를 살펴 가꾸는 ‘시화호사람’들의 아름다움 무궁하여 그 길이 끊임없기를 축원합니다. 지금은 ‘간석지’라고 하지만, 위의 시인이 활동하던 시기에는 ‘해택(海澤)’이라 기록하였더군요. 이 또한 우리의 바다를, 시화호를 가꾸었던 조상들이 개펄을 어떻게 인식하였고, 어떤 가치관을 통해 지켜왔는지 그 정신을 읽어야 하겟습니다. 이는 오늘을 살아 영원함을 추구하는 ‘시화호사람’들의 진정함이라고 말하려 함이 아닐까요?
‘시화호 사람’들의 아름다움이 먼 훗날에 박수 받을 수 있도록 유장하기를 기원하면서 <노랑부리뉴스> 발간을 축하하여 그 바램의 굄돌 하나를 놓습니다.
‘시화호 사람’들이여 늘 여여강건 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