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부터 번영을 가져다주는 새로운 움직임은 항상 기존의 형식을 깨는 젊은이들로 부터 시작되었다. 농업 역시 마찬가지다. 도시에서 온 젊은 농업인들은 수많은 소규모 생활 농업 프로젝트를 시도하였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치유농업이다. 치유농업은 보건복지와 농업을 함께 하려는 새로운 시각에서 시작되었다.
1900년 대, 농장은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는 곳이였다. 하녀와 하인들이 쟁이질, 풀베기, 착유등의 농작업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농장에서 농장으로 작업장을 이동하였다. 하지만 1900년대부터 1950년 사이에 노동력은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가장 큰 이유는 산업혁명이였다. 하녀와 하인들은 도시로 나가 일하게 되었고, 농장은 가족위주의 농업으로 변화해갔다.
1980년대에 들어오면서 주된 농업만 가지고는 농가의 수익을 유지하기가 힘들어졌고 농업인들은 새로운 방법을 찾게 되었다. 그들은 농업이 더욱 폭넓은 목적을 찾고 있었고 근래에 우리는 전인적 사고를 가지고 행동하는 농부들이 증가한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이제 농업인들은 농업적 생산물을 생산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역할, 예를들어 자연경관을 관리한다던가, 치유농장을 운영한다든가,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치유서비스를 제공하는 등의 전인적 행동을 하게 되었다.
20세기에 들어서 정신건강의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의 수가 증가하였다. 인구의 증가와 함께 산업화, 일탈적 행동에 대한 관용의 감소 등으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기관에서 머무르는 환자들은 대부분 영구적인 침대생활을 해야만 했다. 당시에 노동은 사회로 향하는 재통합의 방법으로 여겨지지 않았으나, 이러한 생각은 1950년부터 1960년대에 정신의학 및 지적장애인 모두를 변화시켰다. 사회 내에서 노동은 질병에서 회복하기 위한 중간단계로 활용되었다. 예를 들어 유럽에서는 환자가 생산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즐거움으로 정원에서 작업하는 것으로 노동시장에서 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활용은 중요한 회복단계가 되었고, 궁극적으로 정원이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그들에게 독립적인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정원에서 발전된 치유농장은 지역 및 소비자를 위한 음식을 생산하는 물리적인 장소라는 개념에서 사회적 가치에 대한 개념을 제공하는 곳으로 변화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 무렵 네덜란드에서는 "미래의 지역사회는 농업인과 지역주민 활동의 반영 뿐 아니라 모든 네덜란드인의 요구와 활동이 반영될 것입니다." 라는 말이 전원생활에 대한 중요 안건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이렇게 치유농장의 농업인들은 인간적인 면과 지속가능한 농업의 실천과 관련된 경험들을 축적해 오고 있다.
최초의 치유농장은 1975년에 네덜란드에서 설립되었다. 당시에는 치유농장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이 치유농장의 기반은 좀 달랐는데, 이 치유농장은 인지학에 의존하고 있었고 그들은 전통적 농업의 대안을 원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치유농장에 기반하고 있었다. 이러한 첫 번째 사례를 통해 그들은 농업과 보건복지 분야 모두에서 자리를 얻기 위해 싸워야만 했다. 그들은 당시의 소규모 치유농장에서 수용하기 어려운 자금과 법률의 구조내에서 그들의 방법을 찾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이윽고 네덜란두는 규모가 작은 가족농장을 중심으로 1990년대부터 국가의 지원을 받아 치유농장의 수가 급격히 증가하였다. 농장주는 이용자와 다양한 보험계약 체결로 치유농장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농장주는 치유서비스의 품질 관리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또한 이를 지원하기 위한 노력으로 지역적, 전국적인 지원조직이 형성되었다.
네덜런드의 성장에 따라 벨기에, 독일, 영국등에서 치유농장이 생겨나고 발전하기 시작했다. 치유농업의 발전은 각 국가별 문화의 차이와 보건, 사회, 교육서비스의 구조에 따라 각각 다르게 나타난다.
이탈리아의 경우 치유농업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으며, 대부분 지역 수준의 의료기관, 교육기관, 법적기관과의 연계를 통해 발전되었으나, 그 태생은 특정 농장을 중심으로 해당 분야를 개척하는 형태로 발전하였다. 농업분야에서 치유농업에 대한 관심은 증대되고 있으며, 주로 다원적 농업, 신복지농업, 사회적 재생산의 관점에서 발달해왔다.
독일은 1850년대부터 활발하게 이루어진 원예치료를 중심으로 '농업적 군락(agricultural colonies)'라는 명칭의 정신적인 장애를 지닌 사람들에 대한 치료로서의 농업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1980년대 이후에는 원예치료의 르네상스시대라고 불리우며, 다양한 형태의 원예치료가 이루어 지고 있다.
영국에서의 치유농업은 아직 초기 수준이나 점차적으로 치유농업에 대한 관심이 확대되고 있는 상황으로 치유농업은 건강 의료, 사회, 농장, 보호관찰 서비스 등의 일환으로 실시되고 있으며 그 수도 확대되고 있다. 치유농장의 수는 240여개 정도 있으나 활동은 아직 초기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영국에서는 국가치유농업계획을 수립하여 치유농업에 대한 개념 정립 및 서비스 대상을 설정하고 있으며, 치유농업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 선조들은 자연을 중시하고 채소를 가꾸거나 꽃을 키우면서 위안을 찾았다는 기록을 찾을 수 있다. 고려시대 명문장가였던 이규보 선생인 강화도에서 오이,가지,순무,파,아욱,박의 여섯 가지 채소를 텃밭에 키우면서 그 활동을 시로 표현했다고 하고 조선시대 양대 성리학자인 퇴계 이황선생과 율곡 이이 선생도 자연 속에 꽃과 채소를 가꾸면서 심신의 건강을 유지하며 학문에 전념하였다고 전해진다.
또한 조선후기의 실학자로 오랜 유배기간을 보낸 다산 정약용 선생의 목민심서에는 농경생활이 심신의 안정과 정신적 보존에 도움을 준다는 여러 문헌들을 찾을 수 있으며 인간생활에 꼭 필요한 것을 구하기 쉽고, 방풍이 잘되고, 정신적 치유효과를 주는 산수의 조건을 중시했다는 기록을 찾을 수 있다.
1900년대부터 국가의 도움이나 지역내의 통합을 통해 꾸준하게 발전해온 다른 나라와는 다르게 우리나라의 치유농업은 아직 걸음마 단계에 지나지 않다. 우리나라의 치유농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중앙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 6일 '치유농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안'등 농업분야의 주요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법 제정에 따라 앞으로 치유농업 관련 시설 건립과 연구개발 추진, 치유농업사 등 전문인력 양성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가장 중요한 점은 치유농업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라고 생각한다. 농업 농촌의 자원을 치유자원으로 삼아 안전하고 유익하게 활용될 수 있도록 하는 맞춤형 프로그램과 기반 구축이 필요하며 이를 위한 연구 개발보급과 사업화, 전문가 양성등을 지원하는 확실한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해야만 한다. 농가 입장에서는 치유농장이 수익과 연결되는 것이 중요하며 참여농가가 걸림돌이 될수 있는 농지법 문제등 제도완화를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 중장기적으로 농민들과 치유농업사, 원예치료사, 사회복지사등과 같은 치유농업의 발전을 이바지 할 수 있는 전문가들과 함께 협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치유농업에 관심이 증대되고 있는 지금 치유농업과 관련된 교육을 통해 관심 있는 농업경영체 스스로가 전문가로서 성장하게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제시한 방안들이 하루아침에 이루어 지지는 않는다. 모든일에 순서가 있듯 중요도와 실현가능성의 검토를 통한 우선순위를 정하여 치유농업에 대한 지원이 이루어진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나라도 세계 속 치유농업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 할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