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하면 되고 내가 하면 안되는 책
A출판사에 한자(漢字)책 저자로 유명한 B선생님이 계셨다. 집필한 서적만 25종 이상으로 필자가 생각하기에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한자책을 집필하고 판매한 분이 아닐까 생각된다. 정확한 데이터는 없지만 필자의 추측이 어느 정도 맞을 것이다.
B선생님과의 오랜 인연으로 필자가 창업한 출판사에서 선생님의 원고를 받는 영광을 얻을 수 있었다. 당시 필자의 지인이었던 P군의 말에 따르면 B선생님에게 원고를 받기 위해서 유명한 몇몇 출판사에서 백지계약서를 드리고 원고가 나오면 원하는 조건으로 계약서를 작성해서 보내주기만 하면 된다고 했단다.
필자는 A출판사에 10년간 근무를 했었고 B선생님에게 7년간 인세 지급을 결재하는 자리에 있었기에 B선생님이 받는 인세 금액을 알고 있었다.
필자는 B선생님의 책이 최소 5,000부에서 많게는 10,000부 정도는 판매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B선생님의 까다로운 몇 가지 조건을 모두 수용하고서야 계약서를 작성할 수 있었다.
B선생님은 계약한 날짜에 탈고를 하셨고 원고의 편집, 디자인, 제작 등등 모든 공정들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특이할 점은 본문의 페이지가 너무 많아서 본문의 종이를 100g에서 80g으로 변경했었다.
결론적으로 책의 판매는 잘 되지 않았다. 4년 동안 1,000부도 판매하지 못했다.
그때 필자는 배웠다.
아무리 유명한 작가분이라고 해도 출판사의 브랜드파워와 마케팅 능력이 따라 주지 않으면 힘들다는 사실을 말이다. 필자의 출판사는 A출판사처럼 출판사 브랜드파워도 없고 마케팅을 펼칠 자금도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이 일이 있고 나서 필자는 새로운 작가를 섭외할 때 작가의 지명도를 많이 보지 않게 되었다. 독자들이 필요한 책이 무엇일까에 더 고민을 하게 되었다. 독자들이 원하는 내용의 책을 쓸 수 있는 작가를 발굴해서 책을 만드는 일이 필자에게는 더 나은 승부수가 된다는 것을 출판사를 경영하면서 알게 되었다.
자료제공 : 투데이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