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하루] 물의 문

전승선


물의 문

- 어머니

  

날카로운 눈빛의 기억이 오늘따라 아파 오는 건 겨울밤이 고요에 휩싸였기 때문입니다. 동쪽하늘이 붉게 물들 때까지 읽어 내리시던 낭랑한 글이 책 속을 뛰쳐나와 방 안으로 돌아다닐 때면 어린 머릿속은 먼 나라의 낯선 이름들이 나를 유혹하기도 했습니다. 미소 한 번 제대로 보내주지 않았던 야속한 시절의 채찍은 나를 키워준 사랑임을 이제야 알게 된 것은 세월이 흐른 탓도 있습니다. 싸늘히 내뱉은 한숨이 식어갈 때 부질없이 떠나보낸 안부가 그리워 밤새 소리 내어 읽으시던 책장이 자꾸만 낡아집니다. 그저 자식이란 붙잡을 수 없는 겨울바람만 같아 속절없이 눈물이 흘러내리고 밤늦도록 홀로 먹을 가는 일이 오랜 버릇이 되어 버린 것은 그리움은 말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어머니. 마침내 불혹의 문에 당도했습니다. 지나간 세월만큼이나 빈 들판을 걸어와 신발은 헤지고 발목은 진흙에 빠졌습니다. 발밑에 붙은 흙 묻은 삶도 슬금슬금 풀어지고 여기까지 따라온 희망도 지친 두 발을 털고 있습니다. 하얀 맨발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처음처럼 예쁘고 곱던 맨발을 가지런히 모아 저녁 불 밝히시고 계시는 눈물 위에 놓아 드리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이 돌아오는 식탁에 따스한 램프의 불이 켜지면 가난한 내 이름 석 자 걸어두고 바람처럼 가벼워진 애증의 지난날들을 하얀 여백으로 남겨 놓겠습니다. 사람과 사람사이에도 맑고 깨끗한 물소리가 들릴 때 숨 막히는 사랑이 내게도 있었음을 고백하겠습니다.

 







이해산 기자
작성 2020.07.10 11:19 수정 2020.07.10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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