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두의 여인
나는 그녀를 찾아서 꼭 10일째 리스본 거리를 헤매고 다녔다. 리스본 항구 벨렘 탑 아래 카페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대학 졸업 후 난 스페인으로 유학을 오고 그녀는 해양을 공부하려 포르투갈로 떠났다. 그리고 20년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었다. 그런데 그녀가 포르투갈에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오랜 기억 밖의 나를 알아볼지도 모르는데 미련스럽게 그녀를 찾아 리스본의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리스본은 1755년에 일어난 9.1 대지진으로 지형이 뒤틀리고 무너진 채 기울어 있는 삐딱한 도시였다. 폐허가 된 절망의 도시를 재건하자는 폼발 재무장관의 호소는 과히 눈물겨웠다. 그는 파리의 모델을 들고나와 기울어진 도시 건물을 철거하지 않고 파괴된 지형대로 기운 건물을 현 상태로 다시 복구하는 사업을 전개하였다. 저비용으로 고효율의 성과를 거두었다.
리스본의 7개 삐딱한 언덕 중에 코메시우스 광장의 삐딱 건물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어떻게 저런 기울어진 건물에 사람이 살고 있을까 의문인데도 불편 없이 잘살고 있었다.
리스본이 벨렘은 관광객이 많이 모이는 곳이었다. 테주(타구스)강과 바다가 만나는 포구를 바라보며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500년 전에 아프리카를 돌아 인도로 가는 항로를 연 바스코 다가마가 출항을 하였고 마젤란이 세계 일주를 떠난 부두였다. 멀리 대서양으로 가는 항로가 끝없는 지평선으로 아늑하게 펼쳐져 있었다.
포르투갈이 해양제국을 이룬 데는 15세기 엔리케 왕자의 대양 진출의 위대한 꿈이 만든 결과였다.
‘국부를 창출하고 풍요로운 행복을 꿈꾸는 자 바다로 가라.’
절망에서 길을 찾다. 준비와 지식 없이 욕망에만 들뜬 어리석은 지도자는 나라와 민족을 도탄에 빠뜨리지만 미래를 지향하는 현명한 사고와 지성을 갖춘 지도자는 강한 나라와 행복한 백성을 만든다는 것을 포르투갈에서 볼 수 있었다. 엔리케 왕자는 먼 지평선을 바라보며 대양으로의 길을 모색하며 강한 해군으로 식민지를 개척하고 상선을 운항할 항해사를 길러 무역으로 부국을 창출하였다. 작은 포르투갈이 유럽의 어느 나라 보다 잘사는 것은 바다를 개척했기 때문이다. 그는 포르투갈 국민들에게 바다로 눈을 뜨게 하였다.
포르투갈의 아비스 왕조의 주왕(마누엘) 1세는 이슬람의 무어족을 내쫓고 지브럴탈 해역 건너 북아프리카 모로코까지 정복하여 세우타를 통치하면서 대양의 길을 열었고 엔리케 왕자는 아버지의 꿈을 이루어 해양제국을 만들었다.
엔리케 왕자는 어릴 때 아버지로부터‘대양을 정복하는 자 세계를 정복한다.’는 교훈을 얻어 포르투갈의 최남단 사글라스에 해양사관학교를 세워 선원과 항해사를 양성하였다. 이곳 출신의 항해사들이 신대륙 식민지를 개척하여 포르투갈을 부강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 바다를 바라보며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어디선가 절절하게 파두의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검은 돛배였다. 노래를 부르는 파디스타는 젊은 카페 주인이었다. 그녀는 포르투갈 전통 악기 콘트라베이스를 켜며 파두(fado)를 부르며 낮선 동양인에게 미소를 지었다.
“검은 돛배, 곡이 참 슬프네요.”
“이건 리스본 파두인데 코임부라 파두보다 대중적인 슬픈 사연을 갖고 있어요.”
“포르투갈 여인들의 슬픈 운명을 표현한 노래라면서요?”
“전쟁에 시달리고 식민지 개척으로 죽어간 민중의 한을 노래 한거죠.”
원래 파두는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의 라고스 항구에서 불린 흑인의 노래였다. 노예선을 타고 갔던 남편이 돌아오길 기다렸으나 결코 돌아오지 않자 부인들이 바다에 뛰어들어 집단 자살을 했다는 내용의 슬픈 노래인데 언제부터인가 포르투갈의 코임부라 여인들이 이 노래를 즐겨 불렀다. 카페 주인은 맥주를 내왔다.
“어디서 오셨나요?”
“한국에서 왔습니다.”
“리스본엔 어떻게 오셨나요?”
“사실은 떠나버린 옛 여인을 찾아왔습니다.”
“떠난 여인을 왜 찾아요. 포르투갈에선 떠난 여인은 절대 찾지 않는답니다.”
“그런 속담이 있나요?”
“네, 파두의 뜻이 그래요. 그것이 운명인걸요. 그래서 슬픈 노래입니다.”
“파두의 사연을 들려주세요.”
그녀는 술을 마시면서 파두의 검은 돛배에 얽힌 스토리를 이야기해 주었다.
검은 돛 귀국선
어느 날 멀리 식민지 개척단으로 떠난 군인과 선원이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리스본 항구에 수많은 부인과 여인들이 귀국선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사벨이란 여인도 전쟁에서 돌아온다는 남편 프랑클린을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은 7년 전에 브라질 식민지 개척 정복군 장교로 떠났다.
그때였다. 구슬픈 파두 음악의 노랫소리가 은은하게 해변에 울려 퍼졌다. 바다로 간 남편을 기다리는 여인의 마음을 그리는 파두였다. 파두가 은은히 울려 퍼지는 항구에서 부인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저 멀리 지평선에서 배가 들어오고 있었다.‘배가 온다. 귀국선이 온다.’수십 대의 범선이 닻을 높이 올리고 점점 가깝게 미끄러져 오자 부인들은 더 큰 함성을 질렀다.
이사벨라는 남편이 타고 올 배를 향하여 손을 흔들었다. 포르투갈은 식민지 개척으로 많은 젊은 남자를 징용하여 정복군과 개척단으로 보냈다. 그런데 이번에 오는 배는 7년 만에 돌아오는 귀국선이었다. 이사벨은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그때였다. 한 여인이 그녀 앞으로 지나면서 말했다.
“당신의 남편은 돌아오지 않아요.”
이사벨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부두에서 까만 옷을 입고 파두를 노래하던 여가수였다.
“뭐라고요? 내 남편이 안온다고요?”
“그래요, 당신 남편 뿐 아니라 모든 남편은 돌아오지 않아요.”
여인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당신 미쳤어요? 왜 그런 소릴 해요. 귀국선이 들어오고 있잖아요.”
“그런데 당신의 남편은 안 와요.”
“미친 여자가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두고 봐요. 당신의 남편은 안 와요.”
이 말을 듣고 있던 다른 여자들이 그녀에게 욕설은 퍼부었다. ‘
“미친년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당신은 미친년이야.....”
여인은 매를 맞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때 검은 돛을 단 배가 항구로 들어오고 있었다.
“저 검은 돛을 단 배는 뭐냐고?”
“글쎄, 검은 돛이네. 왜. 검은 돛이야”
점점 가까이 다가서는 검은 돛배에 부인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렇게 좋아 날뛰던 밝은 표정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외쳤다.
“저 배들은 죽은 시체와 영혼을 싣고 오는 배랍니다.”
“뭐라고요. 영혼을 싣고 오는 배라고요?”
“전쟁에서 죽은 군인과 바다에서 죽은 선원들의 유령이 탄 배랍니다.”
“그럴 순 없어, 그건 아니야.”
그러나 항구는 어느새 울음바다가 되어버렸다. 사실이었다. 항구에 정박한 검은 돛배는 영혼을 싣고 온 배였다. 이사벨은 한순간에 무너지는 슬픔에 젖고 말았다. 검은 돛배에서 유골을 하역하고 있었다.
다음날 이사벨은 슬픔에 젖어 바다로 나갔다. 그때였다. 바닷가 목로카페에서 술을 마시는 초췌한 한 선원을 발견하였다. 그녀는 혼자 술을 마시는 사나이 옆으로 다가섰다.
“제게 한잔 주실래요.”
“앉으세요. 부인도 남편을 잃었나요.”
“네, 그런데 왜, 혼자 술을 마시나요?”
“답답하고 쓸쓸해서요. 아내가 나를 버리고 떠났어요. 갈 곳이 없습니다.”
“어쩔 수 없잖아요. 약속한 날에 안 오면 떠나는 것 아닌가요.”
“맞아요. 3년 만에 오기로 했는데 7년 만에 돌아왔거든요.”
“약속한 날에 안 오면 떠나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요. 군인이었나요?”
“마도로스 항해사였습니다.”
그는 바로 검은 돛배를 운전하고 돌아온 선장이었다.
“저도 남편을 잃고 쓸쓸해서 부두에 나왔답니다.”
“이름이 뭐예요?”
“저 이름은 이사벨입니다.”
“전 아프리카에서 브라질까지 노예선을 운행한 항해사 몽주앙이라고 해요”
두 사람은 다시 이야길 계속하였다. 집을 떠날 때 하얀 집이었는데 돌아와 보니 빨강 색칠을 한 채 비어 있었다. 아내가 재혼을 했다는 표시였다. 포르투갈 남편들은 해외 식민지 개척을 가거나 선원으로 바다에 나갈 땐 부인에게 7벌의 속옷을 사주고 간다는 것이다. 7년 안에 돌아온다는 뜻인데 7년이 지나면 떠나도 된다는 뜻이었다.
“속옷을 몇 벌이나 사줬어요.”
“안 사줬어요.”
“몽주앙 선장님, 제게 속옷을 사주시겠어요.”
그녀가 제안하였다.
“그 뜻은..... 네, 그럼요. 사드릴게요.”
속옷을 사준다는 것은 동거를 의미하는 것이다.
“평생 입을 속옷을 사줘요.”
“고맙습니다. 몽주앙 선장님.”
“외로운 사람끼리 만나 행복하게 살아요.”
두 사람은 결혼을 하였다. 그런데 이사벨은 본 남편이 살아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은 몽주앙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찾아온다 해도 결혼을 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잠시 두 사람은 어색한 표정으로 전 아내와 남편을 그리고 있었다.
“남편을 사랑했나요?”
“네, 너무나 사랑했어요. 선장님은 아내를 원망하지 않습니까?”
“사랑했지만 약속한 시간에 안 오면 헤어지는 것은 사회적인 약속인걸요.”
“우리 과거는 모두 잊어버려요. 그리고 오직 우리들의 미래를 설계해요”
그는 아내가 빨갛게 칠한 집을 노랗게 칠하고 새로운 신혼생활을 하면서 해변에 레스토랑과 카페를 차렸다. 몽주앙은 아침 일찍 카페 문을 연고 청소를 한 후 해변을 거닐었다. 희망과 슬픔이 교차하고 있었다. 바다는 누구나 모든 것을 다 포용하고 많은 것을 공급하지만 쉽고 편하게 접근하지 못할 두려움도 안긴다.
“미안해 캐서린, 나도 당신처럼 새 인생을 찾았어요.”
그가 바다를 향하여 작별을 고했다. 어느 날 리스본 벨렘의 레스토랑 카페에서 검은 옷을 입은 집시 가수가 손님들이 음악에 맞추어 노래 부르면서 춤을 추었다. 밤은 깊어 손님들이 거의 사라질 때까지 파두의‘검은 돛배’를 불렀다.
검은 돛배(Barco negro)
아침에 추한 얼굴을 하고 있으면 모두들 무서워해요
난 해변에 쓰러져 있다가 눈을 떴죠
당신의 눈은 나에게 말하고 있었어요
내 마음속에 한 줄기 태양이 비춰왔어요
당신의 눈은 나에게 말하고 있었어요
그 순간 내 마음속에 한 줄기 태양이 비춰왔어요
그리고 바위와 십자가를 보았죠
당신이 탄 검은 돛배는 밝은 불빛 속에서 너울거리고
당신의 지친 두 팔로 나에게 손짓하는 것을 보았어요
바닷가 노파들은 당신이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죠
미친 여자들이야! 미친 여자들이야!
난 나의 사랑을 알고 있어요
당신이 떠나버린 것이 아니란 것을
사람들은 당신이 언제나
나와 함께 있다고 말하죠
난 나의 사랑을 알고 있어요
당신이 떠나버린 것이 아니란 것을
사람들은 당신이 언제나
나와 함께 있다고 말하죠
유리구슬을 강변에 뿌리는 것 같은 바람 속에
꺼질 듯한 불빛 속에서 노래하는 물 위에
달빛은 따사롭고 나뭇잎처럼 흔들리는 배
내 마음엔 언제나 당신이 함께 있어요
달빛은 따사롭고 나뭇잎처럼 흔들리는 배
내 마음엔 언제나 당신이 함께 있어요.
“참 노래를 잘 부르십니다. 한 곡 더 부탁할까요?”
이사벨이 제안하였다.
“네, 좋아요.”
여인이 고갤 끄덕였다. 그녀는 열정적인 호소력으로 ‘검은 바다’를 노래하였다. 그때 이사벨이 그녀 앞으로 다가섰다.
“아, 당신은.....”
부두에서 남편이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예언한 여인이었다.
“남편이 돌아 왔군요.”
그녀가 이사벨을 알아보았다.
“아닙니다.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어요.”
“그래요, 그때 내가 그런 말을 한 것, 미안해요. 그럼 재혼을 했나요?”
“네, 브라질에서 돌아온 선장님을 만나 재혼을 했답니다.”
“브라질에서 온 선장님과 재혼을 했군요. 행운의 신이 도왔군요. 축하해요.”
“노래가 너무 슬퍼요.”
“브라질로 간 제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 노래를 부른답니다. 남편은 흑인 노예선 선장이었거든요.”
“그런 아픔이 있었군요. 미안해요.”
그때 몽주앙은 아내와 여가수의 이야길 듣고 있었다. 남편이 그녀들 앞으로 다가서서 검은 돛배를 부른 여가수를 바라보며 비명을 질렀다.
“캐서린, 당신은 캐서린.....?”
두 사람의 눈이 부딪쳤다. 아내였다. 그러나 그녀는 담담하게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렇게 기다리던 남편이 돌아와서 다른 여인과 결혼해서 사는 것이었다. 캐서린은 가슴에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제하느냐고 입술을 깨물었다. 죽었다고 생각한 남편이 눈앞에서 새 부인과 사랑에 빠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캐서린은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자릴 떴다. 몽주앙은 돌아서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사벨은 남편과 그녀를 번갈아 보았다. 아내가 파두를 부르며 리스본 거리를 떠도는 가수라는 것을 알았다. 엇갈린 운명이었다. 다음날 그녀가 벨렘 카페로 나왔다.
“
정말 당신이 몽주앙이예요?”
그녀가 물었다.
“맞아요. 노예무역선 선장 몽주앙 맞습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부인이 정말 예쁘더군요.”
“캐서린,......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내 이야길 좀 들어봐요.”
“아닙니다. 다음 스케줄이 있어서 전 가봐야 해요. 전 7년 동안 기다렸다가 재혼을 했답니다. 다시는 만나는 일이 없었으면 해요.”
거짓말이었다. 그녀는 혼자였다. 참으로 얄궂은 운명이었다. 아내 이사벨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그녀를 만났나요?”
“네, 그런데 그녀도 결혼을 했대요.”
남편 없이 살아가는 수많은 미망인에 비해 그나마 남편을 둔 여인들은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대부분의 포르투갈의 여인들은 남편과 이별하고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숙명처럼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이사벨은 거리의 파두 가수 캐서린을 찾아갔다.
“저를 보자는 이유가 뭡니까?”
“미안해요, 캐서린 부인, 당신의 남편 몽주앙을 돌려드리겠습니다.”
이사벨은 조용히 말했다.
“왜요, 그 사람을 사랑하잖아요. 사랑하는 남자를 왜 버려요?”
“캐서린, 당신의 남자인걸요.”
“이사벨 부인, 아닙니다. 나는 그를 버리고 떠났어요. 몽주앙은 당신의 남편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캐서린은 돌아갔다. 그 후 캐서린은 다시는 리스본에 나타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녀가 새 남편을 만나 떠났다는 말도 있고 아프리카로 갔다는 말도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부른 파두 검은 돛배는 언제나 거리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찾는 그녀는 fado의 여인이 되어버렸다.
[김용필]
KBS 교육방송극작가
한국소설가협회 감사
한국문인협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마포 지부 회장
문공부 우수도서선정(화엄경)
한국소설작가상(대하소설-연해주 전5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