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어느 나라를 가든 광장이 있다. 특히 로마나 스페인, 러시아. 프랑스, 브라질 광장은 유명하다. 광장이 많은 이들 나라는 광장 문화를 즐기는 민족들이다. 왜 그들은 수많은 광장을 만들고 서로 다른 광장 문화를 즐길까. 그것은 역사적 맥이었다. 광장은 문화와 역사의 상징적인 것으로 꾸며져 있다. 대체 광장의 문화와 역사란 무엇인가?
광장하면 연상되는 것들이 많다. 폭력의 광장. 처형의 광장, 선동의 광장, 여론의 광장, 기념하고 축하하는 광장, 독재에 항거하는 혁명의 광장, 이렇듯 강자가 약자를 우롱하는 장소이며 약자가 강자에 항거하는 저항의 장소였다. 광장은 냉철한 법보다 인간의 감성에 호소하고 충동하고 선동하는 무법 성을 가진다. 때론 국가까지 국민 담합과 공공의 질서를 바로잡기 위하여 호소와 애원의 장을 만들기도 한다. 그만큼 광장의 효과는 광장 문화라는 특별한 이미지를 가진다. 그렇게 광장은 수없는 역사적 사건을 발생시켰고 수많은 변화를 일으켰고 심판하고 용서하였다.
그래서 광장 문화가 발달한 나라들은 공장의 문화를 만들어 즐기지만, 실속은 광장에 나서는 것을 두려워한다. 사실이 그렇다. 광장에 나가는 것은 두렵고 무서운 일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걸핏하면 광장에 나가서 연출하는 행동을 즐긴다. 광장의 역사를 똑똑히 봐야 한다. 광장을 즐기는 사람들은 광장에서 사라진다. 대체 광장은 무엇이기에 인간의 감성을 호소하는 무대가 되었을까.
1. 광장은 심판대이다.
전체주의 국가나 경찰국가에선 죄인을 심판하는 심판대였다. 모스코바 광장은 숙청의 심판대였고 파리 광장은 프랑스 혁명의 심판대이며 로마광장은 황제가 군림하는 심판대였다. 스페인 광장은 부정과 부패를 처결하고 정의와 평화와 자유를 갈구하는 사람들의 외침의 광장이었다. 그렇게 광장은 부정한 힘에 저항하여 진정한 자유와 평화와 인권을 찾아준 심판대였다. 광장은 그런 취지로 역사적 사명을 선도해 왔는데 어느 날부터 광장은 독재에 항거하고 자유 민주주의를 구속하는 힘에 항쟁하는 외침의 장소로 되어버렸다. 광장의 외침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광장에서 소원을 이루는 일보다 광장에서 비극을 맞는 불행한 역사적 사실을 많이 보아왔던 것이다.
그래서 광장에 나서는 것은 신중하고 절제된 행동이어야 한다. 눈먼 대중이 엉뚱한 돌팔매질로 나를 개구리처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2. 광장은 외침의 장소이다.
억울함을 당하거나 사회적인 약자들은 법에 호소하기보다는 광장에 호소한다. 어디 하나 내 편이 되어주는 자나 일이 없을 때 광장에 나서서 외친다. 광장의 효과를 보려는 아우성이다. 광장에 나서서 나의 억울함과 약자의 고충과 구속된 자유를 해결해 달라고 허공 속에 외친다. 메아린 무엇이 되어 돌아올까?
광장에서 서서 아우성치는 군중의 목소릴 들어본다. 대체 그들이 떠드는 소리가 뭔가, 무엇을 말하려고 호소하는가. 가만히 듣고 보면 자기들 주장을 합리화시켜 이익을 보려는 지극히 이기적이고 배타적이며 진영의 논리의 외침이다. 우매한 대중의 선량한 취향을 충동하여 주장하는 목적 속에 휩쓸리게 하여 그 물결의 힘을 과시하는 경향을 볼 수 있다.
그 외침으로 이익을 보거나 손해를 보는 일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진정한 광장의 의미는 힘없는 대중이 억울함을 호소하여 구원의 손길을 얻고자 하는 것이며 구속받는 자들이 자유를 외치는 아우성이며 부패와 부정으로 피해 보는 사회적 약자들이 동정을 유발하고 공존의 질서를 누리자는 외침이고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의 진정한 아우성이다. 이렇게 외침은 잘못된 질서를 바로잡고 비틀어진 가치관을 바로 세우며 세상을 혼탁 시키는 제도와 무리들의 잘못을 바로잡아 달라는 외침은 광장의 힘으로 이루어 달라는 것인데 그 외침은 허공을 울리는 바람으로 사라질 뿐이다. 문제는 악법도 법이라고 외치는 진영의 함성이 되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3. 광장은 깃발이다.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다. 그러나 잘못된 법의 적용으로 피해를 보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정법이 악법에 이용당하는 무력한 상황도 있다. 법의 악용으로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광장에 나서서 깃발을 높이 든다. 깃발은 정의이며 질서이고 지혜로운 법이라는 상징성을 갖는다. 흔히 깃발은 인간의 약점을 선동하고 자극하는 충동적인 요소로 쓰이지만 진정한 깃발은 정의이고 준엄한 법이다. 사회적 경제적 약자들이 깃발을 높이 들고 억울함을 호소하고 구원이 힘을 얻고자 외치는 광장의 목소리는 오히려 부메랑이 되어 곤욕에 빠뜨리는 일이 종종 있다.
대중은 그렇게 현명하지 않다. 그들의 목소릴 듣고 약자의 편에서 억울함을 해소해 주는 현명한 정의가 되지 못한다. 오히려 그것을 이용하는 우매한 대중의 편견은 역풍으로 맞는 일이 자주 벌어지는 것이 깃발 든 자의 최후이다. 깃발은 바람 부는 날엔 변색의 낯짝을 보인다. 그래서 청명하고 바람 없고 고요한 날에 들어야 하는 것이다.
4. 광장은 재미난 이야기를 창출하는 무대이다.
광장에서 한 사람의 이야기가 대중의 이야기로 확대되고 대중의 이야기가 사사로운 이야기로 사라지기도 한다. 광장에 나서면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길 듣는다. 별의별 사람들이 말 같지 않은 이야길 가지고 재밌다고 떠들어 댄다. 사람들은 기준도 판단도 없이 그 이야기 속에 휩쓸려 재미난 표정을 짓는다. 화자는 자기 자신이 정당한가, 바른 사고 관을 가졌는가를 모르고 그냥 자기 기준과 판단으로 이사회의 잘못된 가치관을 지적하고 비판하면 동조를 청한다.
가끔 사람들 중엔 엇나간 주장과 편견을 외면하면서 바른 가치관과 합리적인 사고와 비판으로 공존의 미를 지향하여 건강한 사회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옳고 그름을 떠나서 화자들은 자기 자신과 이익 집단의 나약하고 궁색한 진영 논리로 힘을 과시하면서 자기편을 만들려고 한다. 그러나 독자들은 그렇게 우매하지 않다. 돌아서서 편향의 화자를 광장의 무대에서 추방하려고 한다.
우리 사회는 어느 날부터인지는 모르나 공공의 이익이나 합리적 공동체 의식은 깨지고 편 가르기 진영 논리로 발전하여 광장의 힘을 과시하려고 한다. 진부의 확인도 없이 정부의 판단도 없이 불편한 대상을 경계하며 진영의 와류를 만들어 흥분한다. 그것은 마치 폭풍에 밀려가는 비바람과 같은 것이다. 무엇을 가름하는 진영이며 무엇을 위한 울분인가? 목적도 지향도 비판도 없는 시류에 편승하여 가는 무리들은 뭘까. 나도 모르게 내가 왜 이런 시류 속에 휩싸여 가게 되었는지 광장에 나온 사람들에게 물어본다.
우리의 짧은 역사 속에 광장은 민주주의 수호처였다. 태극기와 촛불을 든 사람들은 편향과 사상이 달라서가 아니고 그냥 울림이 이끄는 어떤 정의의 힘에 끌려 파도처럼 요동쳤다. 방황의 끝은 어디며 어떤 결과인가. 광장에 선 사람들은 그냥 일상을 보지 않는다. 무엇이 선량한 그들을 무서운 악마로 변하게 하는가, 그들은 마치 잡아먹을 듯 적대의 양상을 보인다. 무엇을 위한 아우성이며 원한인가. 진정 나를 위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공동의 목적도 아닌 어떤 편향의 이끌림이 돌발하는 우매한 마력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5. 광장은 연출자 없는 무대이며 수도장이며 사원이다.
옳고 그름이 아닌 정의도 상식도 없는 주장과 정책이 내게 불이익을 준다면 서슴지 않고 정의를 불의로 만들어 손해를 끼치는 사악한 무리로 간주하여 저항한다. 그리고 어느새 인륜을 떠난 적으로 만들어 편향으로 대립한다. 그 험한 표정은 논리도 토론조차도 할 수 없는 양상으로 대립하는 허무한 소모전이며 발악이다. 싸움은 대상을 만들어 상반된 주장을 드러내어 적대 행위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싸움거리조차 없는 진영이 논리는 우리를 지치게 하고 승산 없는 전투로 피곤하다.
광장에 서면 마치 영웅처럼 날뛰는 무리들이 있다. 광장은 그들에겐 개인기를 연출하는 무대와 활거장이 아니고 한 예술 작품을 배역한 배우들이 풀어가는 이야기다. 보통의 우리는 정쟁에 휩쓸려 상처입고 몸부림치며 비명을 지르는 이성 잃은 광자가 되어버린다. 제발 하고 싶은 이야긴 광장의 힘으로 나누지 말고 조용한 무대 밖에서 펼쳐라. 사랑이 넘치는 찻집에서 너와 나로 조용히 만나 이야기 하듯이 말이다.
-적어도 광장에 서려면 겸허하고 정련된 마음으로 서라. 광장의 깃발은 싫다. 울분의 아우성도 싫다. 조용한 속삭임만 있을 뿐이다. 세상과 나눌 따뜻한 식량을 갖고 서라. 사랑받기 전에 사랑해 봤는가, 사랑을 주지 않고 사랑받길 원한다면 사랑은 멀리 간다. 사랑에 인색한 자, 사랑 없이 사랑을 기대하는 오만 한 자는 사랑의 배신자다. 사랑을 거래하지 말고 무조건 사랑하라. 그리고 사랑받고 싶으면 광장에 서지 마라.
[김용필]
KBS 교육방송극작가
한국소설가협회 감사
한국문인협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마포 지부 회장
문공부 우수도서선정(화엄경)
한국소설작가상(대하소설-연해주 전5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