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장승의 대가 이혜영 목공 장인

남편 따라 사천에서 장승 만들기 시작 계기

대한민국 대표 브랜드 만들고파

 

이혜영 목공장인

 

(사천=한국드론뉴스닷컴) 정천권 기자 = 시골 마을을 들어서거나 사찰을 방문할 때 입구에 어김없이 양쪽으로 서서 인상을 쓰고 방문객을 훑어보는(?) 약간 험상궂은 인상의 나무로 만든 인물, 장승을 만날 때 조금은 근엄해 보이고 함부로 근접할 수 없는 접경지역에 온 느낌이다.

 

우리에게는 수호신의 개념으로 장승은 어느 듯 익숙한 마을의 지킴이로 여겨져 왔다.

 

이런 환상을 지워 버린 당사자는 항상 웃고 있는 장승을 만든 하회탈과 같은 기분 좋은 장승의 선구자 단실 이혜영 선생(45)이다.

 

장승이라 표현하면 너무도 많은 단어들이 겹친다.

 

장성, 장생, 장승 등 지역마다 표현하는 용어나 방식은 다르게 전해져 왔지만 중요한 것은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의 역할은 물론이고 종교적인 이미지와 마을의 경계를 표시하는 방식 등으로 이용되면서 우리의 삶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토속 신앙의 이미지로도 각인되면서 현대의 이미지와 멀어지고 있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이미지와는 달리 장승이 사라지는 현실을 차마 볼 수 없어 반기를 든 인물이 바로 이혜영 선생이다.

 

굳이 반기를 든 이미지 보다는 수많은 인물 중에서도 안동의 하회탈처럼 활짝 웃는 장승을 생각한 것이다.   

 

장승이 마을을 지키든 사찰을 지키든, 나의 보디가드가 되 든 웃는 장승은 왜 안 될까 하는 시도에서 출발했고 단지 시도를 한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마치 신이 인간을 심판대에만 올리는 인물로만 부각되듯 장승 또한 인간의 출입과 액(질병이나 고통 등)을 막는 인물로만 인식한 생각의 한계가 아닐까.

 

신도 장승도 모두 우리 인간사가 잘 흘러가고 서로 사랑하기를 원한다는 시각을 놓쳤을까.

 

이혜영 선생은 바로 이러한 틈새를 놓치지 않았다. 웃는 피에로의 인상과도 같은 장승을 만들었다.

 

사실 지금까지의 장승 이미지는 너무 험상궂은 인상에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의 개념보다는 마을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주눅 들게 만드는 이미지에 가까웠다고 보는 시각도 존재했다.

 

이혜영 선생에게는 선입견이 필요치 않았다.

 

남편을 따라 사천에 내려오면서 장승을 만들게 된 계기가 됐다.

 

BAT코리아에 근무하던 남편을 따라 사천에 정착했고 이곳에서 학창시절 못다 했던 문인화 공부와 서예 등을 배우러 다녔고 서예협회에서 활동하다 당시 사무국장의 공방에 놀러갔다가 전시된 장승을 보고 시작하게 된 게 오늘날 장승전문가 이혜영을 만나게 된 것이다.

 

이혜영씨가 작품을 만드는 장면이다. 섬세함을 위해 장갑도 끼지 않고 작업을 한다.

충남 당진의 조그마한 시골마을에서 자란 이혜영 선생은 학원도 없는 곳, 제대로 배울만한 여건도 안 되는 지역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닌 범생이다.

 

그런데도 어릴 적부터 꿈은 화가였단다. 멋있어 보였을까?

 

흔한 미술학원 하나 없는 시골에서 자란데다 중·고 시절 시내에 있는 할머니 품에서 자라면서 학원의 문턱도 못 갔던 그녀는 고작 학교 미술반에서 그림을 그린 게 그림 공부의 전부이다시피 할 정도의 여건이었다.

 

또 할머니 집에서 다니던 고교시절 학원 다니는 친구들의 틈새에 끼어서 어깨너머로(붙어치기라는 용어를 썼다) 미술 공부를 했고 심지어는 고등학교때 반 친구들의 미술 작품을 거의 다 그려 주었다고 한다.

 

그만큼 그림을 그리고 싶었고 좋아했던 이혜영 선생은 자신이 그려준 그림으로 다른 친구들은 다 입상을 하는데 반해 정작 자신의 그림은 입상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여기서 그녀는 작은 인생을 벌써 깨달은 듯하다. 자신의 그림은 잘 해야 한다는 욕심이 앞섰고 친구들의 그림을 그릴 때는 편안한 마음으로 그렸기 때문에 깊이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대학을 진학하고 취업을 일찍이 하면서 서울의 외숙모 댁에서 1년여를 지내는 등 할머니와 외숙모 댁에서 지낸 젊은 시절의 이혜영 선생은 눈치에 익숙하고 세상살이에 빠른 사람, 즉 다른 사람의 눈높이와 세상의 눈높이를 빨리 배웠을까.

 

그녀의 작품들은 세상의 눈높이와 관심을 잘 알고 있고 또 새로운 장승의 세계를 읽고 있다.

 

험상궂은 장승보다는 활짝 웃는 장승. 손님을 반겨주는 장승이 필요한 시대를 맞았다.

 

그녀의 작품을 몇 번 본 사람이라면 언제 어떤 곳에 작품이 전시돼 있든지 간에 자신의 작품을 알아본단다.

 

중요한 것은 이혜영작가의 진짜는 그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명함에는 연필초상화, 솟대, 천아트, 벽화 등 어느 것 하나 예능부문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게 그녀의 재능이다. 대부분의 영역에서 상당한 실력의 소유자로 인정받았고 또 그 능력으로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신은 공평함이 없는 것일까. 어느 것 하나 못하는 게 없을 정도로 많은 재능을 지녔고 주특기가 뭐라고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작품들을 만든다.

 

그러나 이혜영 선생은 자신을 분석하기를 항상 웃는 모습의 장승을 제작하다보니 운 좋게도 웃을 일이 생기고 자신이 추구하는 모든 일들이 잘된다고 겸손해한다.

 

그녀는 사천 BAT코리아에 근무했던 남편을 따라오면서 모든 작품의 세계가 시작 될 정도로 사천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은 진주시 문산읍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그녀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장승 브랜드를 만드는 게 꿈이란다.

 

안동지역의 하회탈이 대표적인 브랜드가 되듯이 이혜영 선생 역시 사천이든 진주지역이든 지역을 대표하는 브랜드이미지 작가를 꿈꾸며, 나아가 대한민국 대표 브랜드 장인이 되는 게 꿈이란다.

 

이혜영 작가의 작품이 널리 알려지고 웃는 장승의 이미지처럼 코로나19를 극복하고 활짝 웃는 대한민국의 앞날이 다가오리라는 기대를 한다.

  kdnnews@daum.net

 


정천권 기자
작성 2020.08.30 15:56 수정 2020.08.30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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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