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는 지난 7월,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가 돌연 통보한 도서정가제 재검토 방침 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 2003년 처음 시행된 도서정가제는 3년마다 개정되어 오는 동 안 단순화된 시장경제 논리로부터 출판계 전체의 다양성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방어막이 되어 왔다. 세상에 완벽한 법과 제도는 없다.
가장 최근인 2014년 개정된 현행 도서정가제 역시 만 족스러운 제도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도서정가제가 중소형 출판사와 서점 등이 상생할 수 있 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임을 증명하는 결과는 적지 않다. 도서정가제는 서점과 출판계에 만연했던 가격 경쟁을 완화하는 데 일조했으며 이에 따라 전국적으로 개성 있는 출판사와 독립 서점 등 이 늘어나고 있다.
독서의 본질은 우리를 망설이고 고민하게 만드는 데에 있다. 책이 그저 단순한 상품이 아닌 이 유는 책 속의 작은 목소리들이 우리를 돌아보도록 하기 때문이다. 한때 동네 골목에는 작고 개 성적인 서점들이 있었다. 구독하던 잡지를 사러 발매일에 뛰어가던 서점이 있었다. 서점의 유리 창에 붙어 있는 포스터를 물끄러미 보면서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우리는 온라인으로 손쉽고 값싸게 책을 살 수 있게 된 대신에 직접 책을 만져보고 책을 살까말까 망설이던 시간을 잃었 다. 순위표에 오른 인기 있는 책을 손쉽게 살 수 있는 편리한 세상은, 작은 서점 주인이 고민 끝에 진열해 놓은 작고 개성 있고 의미 있는 책들을 접할 수 없게 만들었다. 우리는 우리의 노동력을 서로 착취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최저임금제를 시행하고 있다.
그렇 다면 도서정가제가 무엇을 방지하고자 시행되고 있는지 역시 자명해진다. 도서정가제 때문에 이 제 간신히 작은 서점들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도전적인 목소리를 가진 작가들이 다시 펜을 쥐 려 힘을 얻고 있으며, 다양한 내용과 판형을 실험해 보려는 출판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도서정가제는 작가들의 권익 신장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작가들의 기본적인 인권이자 재산권인 저작권을 시장경제의 폭압 속에서 보호해주는 것이다. 정말 좋은 문학작품은 시장 가 치가 아니라 정신 가치를 통해 자리 잡는다. 도서정가제를 포기하는 것은 그나마 되찾은 작가 들의 권리를 빼앗기는 셈이 된다. 한국작가회의가 도서정가제에 개악에 반대하는 이유는 이처럼 명확하다.
우리는 문체부가 도서정가제의 목적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분명히 인식할 것을 촉구한다. 도 서정가제는 출판의 다양성뿐 아니라 독자와 작가의 권익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정책이다. 만 일 건강한 출판문화를 훼손하는 사태가 앞으로도 계속된다면 한국작가회의 소속 작가들은 이를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며 즉각 행동에 나설 것임을 밝힌다.
2020. 8. 31.
(사)한국작가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