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찬의 두루두루 조선 후기사] 제29화 역관

[최영찬의 두루두루 조선 후기사]

 

제29화 역관

 

6, 70년대만 해도 가장 선망받던 직업이 외교관이었습니다. 지금은 이웃 동네 가듯이 쉽게 외국을 드나들 수 있지만, 그때만 해도 무역상사원이나 특별한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 외에는 해외로 나가는 것이 힘든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조선조에는 오늘날 통역사와 외교관의 역할을 하는 이들을 역관이라고 불렀습니다. 기능직 중인을 과거를 통해 선발해 사역원에서 집중하여 관리했는데 중국어, 몽골어, 만주어, 일본어 등을 회화, 강의, 글을 베끼는 것, 번역하는 것 등으로 나뉘어 체계적으로 공부했습니다.

역관은 주로 사신의 통역 같은 외교활동을 했지만, 정보를 입수하는 첩보활동과 국제무역상으로도 활약했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공식문서나 야담으로 많이 전해져 오는데 대표적인 것이 역관 홍순언이 부모님의 장사를 치르기 위해 기루에 나온 소녀를 도와주고 이러한 인연이 훗날 일본이 조선을 침략했을 때 명의 구원병을 파견하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또 소설 ‘허생전’에서 선비에게 장사밑천을 꿔주는 변역관은 왜역관 변승업의 조부로 알려졌습니다. 이들은 사신을 따라가 이들을 도와 외교활동과 함께 현지인에게서 정보를 수집해 조정에 올려 국방정책을 결정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나라를 위해 활동하는 공직자들이 어떻게 국제상인 역할을 했던 것일까요. 사신과 달리 역관에게는 여행비용을 지급하지 않고 인삼을 팔아 경비로 쓰게 했습니다. 즉 사신을 따라 중국을 갈 때 인삼 여덟 보따리를 가지고 가서 처분하고 그 돈으로 비단을 사도록 허락했던 것입니다. 지금도 인삼의 약효는 인정하지만, 그 당시 중국에서는 인삼은 죽어가는 사람도 살린다는 명약으로 알려졌습니다. 중국 상인들은 이런 인삼을 통역과 사신을 따라간 상인들에게 고가로 사들였습니다. 인삼은 전당포에서도 사 갔는데 임종을 앞둔 부모를 위해 인삼을 빌려다가 뜨거운 물에 담궈 우려낸 물을 드시게 하는 것이 효의 척도가 될 정도였습니다. 역관은 상인보다는 못하지만, 인삼을 팔고 그 돈으로 비단을 사서 서울에서 파는 것은 상당한 이익이 되었습니다. 왜관을 통해 일본에 인삼을 파는 왜역관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인삼은 대마도에서 구매해 본토로 넘겼는데 구입가의 열 배가 넘는 비싼 비용에도 구하기 힘든 귀한 약재였기에 중간에서 매매하는 역관들은 많은 부를 축적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역관은 중인의 신분으로 벼슬을 하면서 부자가 될 기회였기에 많은 사람이 역관 시험에 응시했지만, 현씨와 변씨처럼 역관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언어를 익힌 사람이 유리했습니다. 몇 대를 걸쳐 과거에 내리 합격하는 이가 많았지만, 합격 후에도 시험을 통해 계속 실력을 측정했기에 열심히 닦고 갈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역관은 외국어 교재도 편찬했는데 임진왜란 때 왜군에 붙잡혀가 십 년 동안 일본에 머물던 강우성이 역관이 되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첩해신어’를 만들어 일본어 통역들을 가르쳤습니다. 숫자가 많았던 중국어 역관을 위한 교재로는 ‘노걸대’와‘박통사’가 있습니다. 노걸대가 상인의 무역활동을 하는 실용회화라면 박통사는 중국인의 일상생활을 알 수 있는 회화였습니다.

이들 역관은 상행위도 했지만, 사신을 보좌하여 통역하는 한편 공식사절이 할 수 없는 군사정보수집 등을 했습니다. 또 화약의 원료를 밀수입하거나 직접 제조하는 기술을 익혀 조선군의 전투력 향상에도 크게 기여했습니다. 부를 갖추고 국제 정세에 밝았던 이들은 정경유착을 통해 국내 정치에도 관여했고 구한말에는 천주교 서적과 새로운 서양선진 문물을 조선에 들여와 개화사상의 주역이 되었으니 오경석, 유대치 등은 유명한 사람들입니다. 개항하고 난 뒤에 미국, 영국, 러시아 등 다양한 나라의 언어를 익혀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의 각축전에도 새로운 통역들이 큰 활약을 펼쳤습니다. 이들은 변화하는 국제 정세를 일찌감치 파악하고 깊이 있는 이해와 앞선 시대감각으로 변화하는 조선을 이끄는 세력이 되었습니다. 


이시우 기자
작성 2018.10.03 12:00 수정 2019.12.30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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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