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인문기행] 시흥 갯골을 따라 소래 포구까지 가을과 함께 걷다

여계봉 선임기자


가을이 끝나갈 무렵 찾은 시흥갯골에는 푸른색이 다 빠지고 말라가는 억새 잎이 서걱거리며 가을 소리를 내고 있다. 농익은 풀냄새가 나는 갯가의 산책로는 아직은 따가운 한낮의 햇볕이 가을의 끝을 아쉬운 듯 붙잡고 있다. 오래 오래 사랑하고 싶었는데, 오래 오래 보드라운 햇살 속에 머물고 싶었는데 가을은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나고 있다.


시흥 갯골에는 알 수 없는 그리움이 바닷물 되어 밀려든다.


시흥갯골에는 1996년 이전만 해도 국내 최대 염전이었던 소래염전이 있었다. 월급 받는 샐러리맨의 샐러리(salary)의 어원은 라틴어의 소금(salt)이었다. 그리고 졸업식장에서 교장선생님께서 "너희는 사회에 나가서 소금이 되어라"라고 하셨다. 그러나 하얀 황금으로 귀한 대접을 받았던 소금은 이제 허물어져가는 소래염전의 소금창고처럼 상석에서 말석으로 내려오고 말았다.

 

바람이 만들던 소금

그러나 지금

시흥갯골에는 소금은 없다

바람만이 하릴없이 이리 저리 불어 다닐 뿐

 

하지만 생각난다

뜨거운 여름햇살 아래서 바람맞고 태어나던 하얀 보석을

 

갯냄새마저 사라진 낡은 소금창고. 지나간 세월은 바람이었다.

 

시흥갯골생태공원이 어떤 곳인지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시흥갯골을 이해하는 게 먼저다. 시흥갯골은 서해에서 밀려온 바닷물이 시흥 내륙을 파고들며 낸 물길이다. 바닷물이 들어왔다 빠져나가기를 수천수만 번. 물이 쓸고 간 곳은 움푹 팼고 양옆에는 진흙이 쌓여 굽이굽이 급경사를 이뤘다. 여기는 경기도에서 유일하게 내륙 깊숙이 들어와 있는 내만갯벌이기도 하다.

 

유구한 세월 동안 수없이 바닷물이 드나든 갯골은 생명의 보고다.

 

 

갯골에는 칠면초, 나문재, 퉁퉁마디 등 염생식물과 붉은발 농게, 방게 등 각종 어류, 양서류가 서식하고 있고 자연생태가 온전히 보존돼 있어 지난 2012년에는 국가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 왜가리와 청둥오리는 갯골에 무리 지어 산다. 동식물에게 살 곳을 내어주고 사람을 불러 모으는 갯골. 시흥갯골생태공원에는 살아 숨 쉬는 자연이 있다.

 

생태공원 가운데 우뚝 서있는 22m 높이의 흔들 전망대는 갯골 바람이 휘돌아 오르는 느낌을 나타내고자 6층의 나선형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바람이 불면 흔들리게 만들어져 흔들 전망대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구조적으로는 안전하다. 계단을 빙글빙글 돌아 꼭대기에 오르면 도심에서 볼 수 없는 상상하지 못했던 장면들이 펼쳐진다. 자연과 사람이 스스럼없이 어울린 풍광이다. 물 빠진 갯골이 공원을 휘감아 돌고, 사람들은 갈대와 억새 사이에서 추억을 남긴다. 갈대가 있는 풍경은 눈길 닿는 곳마다 다 포토존이다. 억새물결에 한줌 햇살이 비추기라도 하면 그 아름다움은 더해진다.

 

갯골생태공원의 랜드마크인 흔들 전망대. 전망대와 황금빛 갈대가 한 폭의 가을 수채화를 연출한다.


 

꼬불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갈대밭도 갯골도 모두 꼬불꼬불이다.


갈대가 가을바람에 하늘거린다. 갈대가 뿌리내린 갯골에는 바닷물이 하루에 두 번 시흥의 뭍과 바다를 오간다. 갈대 옆에서 억새도 바람에 춤을 춘다. 억새의 은빛 물결에 눈이 시리다. 억새와 갈대를 혼동하는 이들이 많지만, 억새는 희거나 은빛을 띠고, 갈대는 갈색을 띤다. 산에 자라는 것은 억새, 물가에 자라는 것은 갈대다. 바람이 서걱이며 지나갈 때, 억새는 대를 부딪치며 소리를 내는데, 그걸 노랫말에서는 '으악새 슬피 운다'라고 표현한 것이다

 

갯골을 적시는 바닷물은 갈대의 눈물이 아닐까

 

 갯골을 따라 이어진 오솔길을 걷노라면 갈대의 황금빛, 물 빠진 갯골의 회색빛, 칠면초의 불그스름한 빛. 자연이 풀어놓은 물감에 눈과 마음이 편안해진다. 소금기 머금은 가을바람은 얼굴을 간지르고 조용한 갯가길을 이어가는 걸음걸음에는 가을이 따라붙는다. 곧 자전거 다리, 일명 미생의 다리를 만난다.

 

이곳은 여명과 일몰 출사로 유명한 곳이다.

 

다리를 지나 소래습지공원으로 가는 길가로 물이 빠져 움푹한 갯골과 쌓인 진흙이 기묘한 풍광을 연출한다. 습지 산책로 중간에 있는 탐조대에서 바라보니 청둥오리는 무리지어 여유로이 노닐고 백로가 홀로 먹이 찾는 모습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풀에도 단풍이 든 걸까. 1년에 7번 색깔이 바뀌어 칠면초라고 불리는 염생식물은 가을이면 붉은 자줏빛을 뽐낸다. 진흙투성이 갯벌에서 어쩌면 이리 고운 물이 들었을까


칠면초가 가을 단풍처럼 갯골 전체를 빨갛게 물들이고 있다.


시흥갯골공원에서 출발한 지 1시간 만에 도착한 소래습지공원은 자연과 인간이 함께하는 연안습지다. 끝없이 펼쳐진 갈대숲은 보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비스듬히 비추는 늦가을 햇살에 억새는 하얗게 빛이 나고 갈대는 갈바람과 함께 소리 내어 울고 있다. 그래서일까, 갈대밭에 서면 이내 마음도 흔들린다.


소래습지공원 랜드마크인 빨간 풍차에도 가을빛이 내려앉았다.


소래포구와 가까운 소래습지공원에는 한낮의 햇빛과 한 줌의 바람과 코끝에 스치는 알싸한 갯냄새에서 가을이 찾아와 머물고 있다. 기세등등하던 억새의 칼 잎들이 가을볕에 물기가 빠져 누런 셀룰로오스만 질긴 가을 인연의 끈을 잡고 있다. 포구에서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우수수 소리를 내며 운다. 가을바람에 울어대는 억새풀은 더없이 낭만적이다. 억새 물결 사이로 사뿐사뿐 걷다보니 마음도 바다색 가을빛으로 물들어간다. 바다색 가을빛에는 봄날 연둣빛 설렘도, 여름날 초록빛 싱그러움도, 겨울날 실루엣의 쓸쓸함도 모두 담겨있다. 아름다운 이 계절이 물러나면 갯골의 갈대와 억새가 내는 서러운 울음소리가 그리울 것이다.

 

 

 


여계봉 선임기자


편집부 기자
작성 2020.11.16 02:53 수정 2020.11.16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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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계봉님 (2020.11.19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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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선님 (2020.11.17 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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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