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프로젝트] 되돌아 걷기

엄지환


100, 또렷한 눈꺼풀에 힘을 빼고 살포시 눈을 감아보면 감회가 새롭다. 지나고 보면 짧은 순간들의 연속이자 연장선일 뿐이지만 그 단일의 나날들을 들여다보면 모두가 각자의 개성과 특징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되는 그런 시간. 그 백 일이란 시간은 바람이 우리의 곁을 소리 없이 스쳐가듯 그렇게 슬며시 지난 발자취를 따라 나의 곁에 산들바람처럼 다가왔다.


소리도, 형체도, 흔적도 없이 지나쳐간 탓일까, 이 시간 속에 란 존재가 담겨져 있는 것인지 약간의 의심이 든다. 너무 가벼워서 그 안에 어떤 삶의 무게가 담길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 마저 생긴다. 그래서 조용히, 은밀하게 다가왔듯 보낼 때도 조용히, 소리 없이 보내야만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과거의 그림자를 스쳐온 이 바람을 그냥 없었던 듯이 보내기엔 뭔가 아쉽다.

아무리 짧은 시간이고 한없이 가벼운 시간이더라도 백 일의 기억과 추억을 조금이라도 머금은 것이라면 잠깐 정도는 얼마든지 바람의 속삭임에 집중할 가치를 지닌 것이 아닐까. 그래서 난 잠시 눈을 감고 지난 99일과 지금 현존하는 이 하루, 그리하여 총 백일이란 시간을 향해 천천히 그리고 다시 한 번 걸어보려 한다.


막막함. 이 모든 생활의 출발점에 선 순간부터 이곳에서 백 번째 흔적을 남기는 순간까지 줄곧 머리를 맴돌았던 감정을 요약하자면 이 단어가 적합할 것이다. 사실 요약할 것도 없다. 마치 휑한 것으로는 모자라 사방에 아무것도 없는 모래벌판에 혼자 남겨져 어딘지도 모를 결승선을 찾아야 할 때의 막막함처럼 막연한 기다림이 내가 가졌던 감정의 전부였다. 어쩌면 내가 지금껏 지내온 시간보다도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이 해답 없는 문제로 인해 괴로워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을 하면 꼭 애써 쌓아 올린 종이 탑에 물 한 방울의 불청객이 더해져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것을 지켜보았을 때 나오지 않을 수 없는 그런 한숨만 입 안을 가득 메울 뿐이다.


하지만 나의 손가락 하나조차도 잘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도 작은 촛불 하나만 주어진다면 탈출구를 어림짐작이나마 할 수 있듯이, 모래바람뿐인 벌판에 홀로 남겨진 나에게도 작은 희망이 있었다. 뒤늦게야 늘상 잔잔한 춤사위만 보이던 바다는 고양이처럼 사나운 발톱을 감추고 있었단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바다의 가면 속 모습을 들춰 보기 전까지만 해도 바다에 대한 무지로부터 피어나는 위험천만한 로망과 함께 바다라는 공간을 항상 열망하고 있었다.

그 열망은 결국 나를 해양경찰의 길로 이끌었고 오랜 시간을 기다려 마침내 도달한 부둣가. 그 곳은 그야말로 밤하늘의 은하수 너머 외계와도 같은 신비로움을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이 미지와의 첫 만남은 달에 최초의 걸음을 내딛는 한 우주인이 느꼈을 강렬함과 통하는 순간이었다. [글=엄지환]


이해산 기자


 

 



이해산 기자
작성 2020.11.17 01:37 수정 2020.11.17 02:52
Copyrights ⓒ 코스미안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이해산기자 뉴스보기
댓글 0개 (1/1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Shorts 동영상 더보기
이란에 말바꾼 트럼프의 진짜 속내는?
2025년 6월 16일
2025년 6월 16일
2025년 6월 15일
2025년 6월 15일
2025년 6월 15일
2025년 6월 15일
2025년 6월 15일
[ESN쇼츠뉴스]‘2025 인천국제민속영화제(IIFF 2025), 이장호..
[ESN쇼츠뉴스] 킹오브킹스 K애니로 만나는 예수 K 애니로 탄생 킹오브..
[ESN쇼츠뉴스]봉사 / 환경 / 고양재향경우회, 국민과 자연 잇는 자원..
[ESN쇼츠뉴스]김명수 응원 인천 민속영화전통과 영화가 만나는 자리 인..
천재 로봇공학자의 ADHD 고백 #제이미백 #스위스로잔연방공과대학 #로보..
세상에서 학력보다 중요한 것은?#닌볼트
생존 문제가 된 은퇴, 평생 먹고 살 대책안은? #은퇴자금 #은퇴전문가 ..
100만 유튜버의 숨겨진 실패 스토리, 이런 과거가?
토막살인은 이 때 나온다! #형사박미옥
전직 아이돌에서 페인트 업체 대표가 된 비결?(feat.긍정의 힘) #오..
요즘 친환경 플라스틱은 생분해가 아닌 바로 이것! #친환경플라스틱 #친환..
왕따가 곧 사라질수밖에 없는 이유?!
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