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라고 말하려는 이 순간에도 나는 울고 싶다. 내게 찾아들었던 감당하기 버거웠던 충격은 언제쯤에나 그 아집을 손에서 놓을 수 있을까. 작년 젊은 김씨 성을 가진 한 쌍의 새가 내 이웃으로 이사와 둥지를 쳤을 때 나도 함께 하늘을 날 것 같던 기분이었다.
한국타운이나 나가야 한국인의 체취를 담아올 수 있었던 내가 이제는 아침저녁으로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이 행복은 정말 신이 아니시라면 있을 수가 있을까. 작년 남편 죤이 미국군대에서 제대 할 때까지 기다려준 백인 여자 말리샤와, 나의 이웃이 된 후부터 내게는 아름다운 마음으로 사색하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한국인인 젊은 죤의 체격에 딱 맞추고 백인 말리샤의 몸매를 꾸미는 멋진 옷을 재단하시어 한 쌍의 부부를 이루어내신 신은 이 아름다운 작품을 내게 선물해 주셨다. 그들은 신이 제작하신 특별한 부부라고 확신하니 그들이 문을 열고 나서면 밖에서 온갖 행복들이 샘이 나서 야유세례를 퍼붓는 상상을 하게 되고 그들의 집안에 가득 차 있을 행복들은 모두 내게 보낸 선물인 듯 나는 늘 즐거웠다.
죤의 부모님은 내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감사하게 말해주어 나는 더 어찌할 몰랐다. 그들의 부탁대로 죤의 서툰 한국말도 내가 꼭 완성 시키리라는 생각조차도 엄청난 기쁨이었다. 그들은 내게 있어 티끌만큼도 누려보지 못했던 행복을 누리게 했다.
“세상은 헤아려 낼 수 없는 고통의 바다이다.”
그런 기가 막힌 말을 누가 했을까. 죤 부부를 향한 내 사랑의 애착에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다가왔다. 이런 헛된 생각은 내게 너무 과한 행복에서일까. 아무도 모르게 그들을 통해 얻어 챙긴 행복의 수익은 부정한 불로소득의 대가처럼 느껴져 갔다.
한참을 만날 수 없었지만 서툰 생각으로 죄를 짓지 말자고 한동안 지내며 많은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그들을 보기가 힘들어지는 시간으로 여름을 겨우 보내고 새벽 공기가 시간도 어기지 않고 문을 두드리던 가을날 아침 나는 죤의 부인 말리샤로부터 전화를 받고 수화기를 떨어뜨린 체 바닥에 무릎을 꿇어 버렸다.
말리샤의 울먹이는 소리조차 어렴풋한 나의 정신은 바닥에서 한참을 있게 했다. 서른 세 살의 죤이 어제 세상을 떠났다는 말이 가을 만우절이었으면 하는 나의 간절함이 적중할 때까지 그대로 바닥에 누워버리고 싶었다. 그 간절함은 나의 피처럼 굳어지기를 바랬다. 아, 그것이 한참을 볼 수 없었던 동안에 있었던 만우절 같은 무서운 현실이었구나.
죤은 왜 젊은 나이에 그런 암이라는 이유를 둘러대고 세상을 허겁지겁 서둘러 떠났을까. 한참을 못 보았던 시간이 죤에게는 얼마나 간절한 시간이었을까. 부모와 와이프, 세상 모든 사람들은 물론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배경들까지도 외면하려는 생각에 얼마나 무서운 순간들을 이겨내야 했을까.
그 많은 존재들을 떨쳐 버리고 어떻게 눈을 감았을까. 죤은 많은 사람들을 배신했다고 말해도 나에게는 정당하게 용서를 받을 수 있을까. 그를 그토록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죤은 배신을 때렸다고 화내며 말하고 싶다. 일요일 아침 커피 한잔과 도넛을 나누던 그들과의 살뜰했던 행복도 내겐 허락될 수 없는 것이 바로 나라는 존재란 말인가.
내게 떠난다는 말 한마디 없이 그리 갈 거면 왜 나를 그토록 따랐을까. 동냥은 고사하고 쪽박만큼 남은 행복이 산산조각이 났다. 그래서 죤은 나에게 원망의 대상이 되었다. 어디 세상 사람들뿐이랴. 당장 눈앞에 떨어진 가을부터 모르는 척 외면을 당했다. 머지않아 아무런 영문도 모르고 찾아 줄 겨울은 또 얼마나 황량할까.
그 설경을 찾아 여행 떠날 채비로 부산할 그들을 겨울은 얼마나 큰 충격을 받을 것인가. 죤은 그런 겨울도 반길 수 없고 그 어느 계절에게도 똑같이 외면을 해야 한다. 사계절, 그 어느 한 계절 아름답지 않은 계절이 있냐고 물었을 때 고개를 끄덕이던 죤이 찾아간 곳에도 계절은 때를 맞춰 찾아줄까.
그 어느 계절에 어디로 어떻게 그를 찾아 나서야 그를 만날 수 있을까. 이제는 분명 아픔뿐이던 그 고통의 바다를 건너 살고 있는지만 알고 싶다. 이승에서 다 마치지 못한 삶을 저승에서는 꼭 환불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죤의 가족과 나에게는 매일 나누는 웃음밖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았다. 이제 그 웃음들은 어디서 환불이 될까. 하늘마저도 웃음을 잃었다. 모두의 웃음소리는 죤을 따라 영원히 치유될 수 없는 채로 떠났지만 웃음은 죤이 내게 준 기적의 선물이다. 나는 선물을 기억하며 늘 우리의 웃음과 함께 할 거다.
우주에 생겨난 만물은 결코 영원할 수 없는 순간들이다. 그들과 나누었던 부귀영화도 찰나의 순간처럼 죤과의 웃음소리 또한 만물의 하나다. 모든 것은 영원할 수 없기에 죤은 바쁜 신의 일을 돕기 위해 특별하게 시간을 앞당겨 떠났을 뿐이다.
내가 죤을 방문하게 될 때까지 신의 일을 도우며 살고 있을 것이다. 이제는 누렸던 과분한 모든 선물들을 각자에게 그대로 돌려보내야 할 때인가 보다. 그들은 내게 주었던 웃음을 보따리째 빼앗아 갔고 나는 신에게서 받았던 선물을 그대로 되돌려주려 문밖에 내놓았다.
[문경구]
미주한인크리스찬문학협회공모 수필당선
전명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