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프로젝트] 견여반석(堅如盤石)의 중요성

유정인


자율형 사립고(이하 자사고)가 대거 지정이 취소되었다. 서울은 총 13개 자사고 중 8개가 취소되었다 하는데, ‘전면 폐지를 공론화하자는 서울시 교육감의 발언을 미루어봤을 때 지정취소는 이번 한 번으로 끝나지는 않을 듯하다. 자사고 폐지의 근거는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국영수 위주의 입시 경쟁을 과열시킨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무조건 나쁜 것이며, 타파해야만 하는 대상인 것인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왜 처음에는 쉽고 단순반복적인 일부터 시작할까

 

내가 사는 동네 주변이 전부 공사장이 됐던 적이 있다. 출퇴근 시간에 공사현장을 눈으로 볼 수밖에 없게 되는데, 공사 기간 중 반 이상은 땅만 깊이 판다. 가림막을 설치해 놓은 현장은 아무것도 볼 수가 없고, 그런 게 안 되어 있는 작은 공사현장은 깊은 구덩이만 보인다. 그러다 어느 순간, 철근 골격이 세워지고 콘크리트로 겉면이 덮이면서 건물 하나가 금방 생긴다. , 공사기간 중 대부분이 건물 자체 보다는 건물의 지지기반을 닦는 데 소요가 되는 것이다.


요리를 배우기 위해, 혹은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러 요식업계에 입문하게 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설거지하기와 채소다듬기, 뒷정리라고 한다. 본격적인 요리를 하기 이전에 식당 운영과정이나 식자재의 특성, 선배 요리사들이 요리하는 과정 등을 눈으로 보고 확실히 익히라는 의미일 것이다.

요리 뿐만이 아니다. 물리학과는 석사과정까지는 물리학 교재 암기, 문제풀이, 시험의 연속이다. 본격적인 연구는 사실상 박사과정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물리학계에서는 석사는 거의 인정이 안 된다고 한다. 비단 요리와 물리학뿐이겠는가. 모든 분야가 대부분 그런 단순하면서도 반복적인 일을 한다고 보아야 한다. 그만큼 기본기를 다지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국영수가 중시되는 근본적인 이유

 

국어, 영어, 수학 자체가 실생활에 별로 쓰이지 않을 수는 있다. 그러나 실생활을 영위하거나 원하는 분야를 공부하는 데 필요한 지식을 습득하기 좋게 해주는 과목들이다. 국어와 영어는 각각의 언어로 된 텍스트를 이해하는 데, 수학은 - 특히 이과 계열에서 - 논리 구조를 구사하고, 계산하는 데 꼭 필요한 것이다. 대학수학능력시험에 한 번도 읽어보지 못한 지문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학에 가면 많은 문헌들을 소화해야 하므로, 그것이 가능할지를 평가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대학뿐인가. 어느 조직에서 사회생활을 하든, 상사에게 요점만 명확히 추려서 서면으로 보고할 일은 부지기수다. 자기 의사를 정확히 말할 줄도 알아야 한다. 혹자는 예체능계에 그런 게 필요하겠냐고 묻는다. 그럴 땐 토크쇼에서 왕왕 나오는 중견 연기자들의 인터뷰를 찾아보라고 하고 싶다.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좋은 연기가 나온다며 인문학 서적을 즐겨 읽는다는 그들을. 그 인문학 서적 역시 문자로 되어 있고, 이해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국영수 위주의 입시가 아이들의 개성을 무시하고 획일화시키는 것일까? 개성도 기본기와 지식이 밑바탕에 있어야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유년기와 청소년기는 자신의 능력이 어디에 있는지 찾는 시기이기도 하지만, 그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들을 갈고 닦는 시기이기도 하다. 국어, 영어, 수학은 그 요소들 중 일부일 뿐이다.

 

비정한 경쟁?

 

더불어, 경쟁을 하는 것이 나쁜 것일까. 적당한 승부욕은 자신을 끊임없이 개선하고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좋은 동기가 된다. --수는 꼭 공부해야 하는 과목들이지만, 공부하기 힘든 과목들이기도 하다. 평가수단과 경쟁이 없으면 어느 누가 공부하려고 들까?


경쟁의 비정함 속에 아이들이 상처를 받는다 하지만,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라. 표를 받지 못하면 가차 없이 떨어지는 상황 속에서도, 참가자 사이의 뜨거운 우정과 감동을 엿볼 수 있다. 이렇듯, 같은 목표를 가지고 공부하는 과정에서 좋은 학창시절을 만들어나갈 수도 있는 것이다. 국영수 시험이 없어졌다고 해서 경쟁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객관성이 어느 정도 보장되는 시험들이 사라지면, 수행평가나 자소서와 같은 주관적 평가요소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친구의 수행평가 성적을 못 나오게 하려고 공책을 몰래 찢어버렸다는 신문기사는 국영수 위주의 시험 대신 교사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학생부와 내신이 중요해졌을 때 나왔다. 어느 여고 쌍둥이 학생의 입시 부정 사건도 마찬가지다. 과연 어느 쪽을 더 비정하다고 봐야 하는가.

 

장례희망인지 장래희망인지조차 헷갈리는 청소년들

 

지인의 권유로 세례를 받고자 성당을 다닐 때의 일이다. 일요일 오전에 하는 미사에 가지 못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미사에 가게 되었는데, 주보를 받아 읽다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맞춤법에 대해 쓴 지면에서, 초등학교 받아쓰기 시간에 으레 연습할 것 같은 단어들에 대한 맞춤법을 설명해 놓은 것이다. 이를 테면, ‘장례희망장래희망이라고 쓰며, 질병이 낳다가 아닌 낫다로 써야 한다는 식이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쓴 글이면 그럴 수도 있으려니 하겠는데, 지면 좌측 상단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청소년이라고. 그러니까, 중고등학생들이 보라고 썼다는 것이다.


분명히 아이들이 쓸 때 틀리는 경우가 많으니 저렇게 소개를 해놨을 것이다. 과연 그 맞춤법 소개문을 보고 이 단어 이렇게 표기하는 거였냐며 놀랄 학생들이 대학교를 가도 그 많은 책과 자료들을 소화하는 것이 가능할지 의심이 됐다. 저런 기본적인 단어를 쓰는 것이 안 되는 정도면, 독해력도 그에 상응할 것이라 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우려스럽기 그지없었다. 어쩌면 과열된 입시경쟁을 방지하고 자신이 원하는 분야만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유로 학습량을 줄이고 기본기를 무시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억울하게 폄훼되는 자사고

 

이런 관점에서 자사고를 보자면, 자사고는 국영수를 익혀야 되는 이유를 알고 동기부여가 충분히 된 아이들을 모아서 교육시키는 기관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기관이 도대체 왜 잘못된 것인가. 학부모들은 그저 내 아이가 열심히 하고자 하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바탕을 제대로 갈고 닦았으면 하는 것뿐인데, 그것을 왜 욕심이라고 매도하는가. 자사고가 입시과목 위주의 교육과정으로 학교를 운영했다며 설립취지를 벗어났다고 하는데, 다양한 커리큘럼을 소화하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과목들을 강조한 것을 왜 그리 비난하는가. 왜 국민의 수준을 그렇게 떨어뜨리려 하는가.


교육 당국은 다음을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경쟁이 전혀 없는 체제에서 공부량이 과중하다고 시키지 않는 것이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오히려 강남 지역으로 몰리던 교육열을 분산시키는 효과를 없애버린 것이 아닌지를. [글=유정인]


이해산 기자

  

 




이해산 기자
작성 2020.12.27 12:43 수정 2020.12.27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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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