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들어서도 코로나19는 그 위세를 더하고 있고, 북극발 한파까지 몰아치면서 한반도는 얼어붙고 있다. 코로나19와 강추위로 실외 생활이 통제받다 보니 우울감이 더해져 식욕까지 달아나 우리는 더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는 셈이다. 이 엄중한 시기에 건강이라도 제대로 챙겨야 하는데 바닥으로 떨어진 식욕을 되찾게 해줄 음식이 없을까.
기자의 고향은 가고파의 고향, 어항 마산이다. 1980년대 전국 7대 도시 중 하나였던 마산이 창원시에 흡수된 지 10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창원시 마산합포구라는 지역 명칭은 낯설기만 하다. 어린 시절, 요즘같이 추운 겨울날 저녁이면 집 근처 오동동 아구찜 골목에서 사온 아구찜을 온 가족이 둘러앉아 땀을 뻘뻘 흘려가며 맛있게 먹었던 추억은 겨울날의 흔한 일상이었다.
생선가게 얼음상자 속에 널브러진 아귀 한 마리
쓸데없이 입만 커서 온몸이 주둥이인
그래, 사람들은 너를 아귀라 부른다
주둥이뿐이라 하지만
작은 지느러미 하나 버릴 것 없어
술안주에 그만인 아귀찜과 물텀벙이 아구탕
- 복효근의 ‘아귀는 나를 아귀라 부른다’ 중에서
원래 아귀(餓鬼)는 불교에서 나온 용어다. 살아서 탐욕이 많았던 자가 사후에 굶주림의 형벌을 받아서 되는 귀신을 가리키는데, 입이 크고 흉하게 생긴 모습을 지니고 있다. 쭉 찢어진 큰 입, 어두운 몸 색 때문에 수많은 어류 중에서도 못생긴 물고기로 유명한데다 자신만한 물고기도 삼켜버리는 포식성 때문에 그다지 자랑스럽지 못한 이름을 지니게 된 것이다.
아귀는 지방마다 부르는 이름이 다르다. 마산은 ‘아구’, 부산은 ‘물꽁’, 인천은 ‘물텀벙’이다. 인천 어부들은 못생기고 돈도 안 되는 아귀를 잡자마자 바다에 “텀벙” 던져 버렸다고 한다.
정약전이 쓴 자산어보(玆山魚譜)에 의하면 아귀는 ‘조사어(釣絲魚)’로 불린다. ‘조사(釣絲)’는 낚싯줄을 뜻한다. ‘낚시하는 물고기(Angler Fish)’라는 뜻이다. 아귀 주둥이 끝에는 두개의 실 같은 것이 달려 있다. 작은 물고기가 아귀의 낚싯줄을 무는 순간, 아귀는 줄을 당겨 통째로 삼켜버린다. 아귀는 입이 함지박만큼 커서 어지간한 물고기는 모두 삼킬 수 있다.
아귀 요리의 대중화는 마산의 아귀찜이 최초라고 알려져 있다. 일제 시절에 일본인 상권이 강했던 마산 지역에서 어획물의 대부분을 일본인에게 수탈당한 후, 상품성 없는 남은 생선 중에 아귀가 많았다. 어느 추운 겨울날 마산에서 아귀를 잡아온 어부들이 장어국을 끓여 팔던 할머니에게 이 물고기로 안주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할머니는 점액이 끈끈한 아귀를 보고 이런 물고기를 어떻게 먹냐고 하며 밖으로 내던져 버렸다. 버려진 아귀는 추운 날씨에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서 제대로 건조되자, 할머니는 북어찜 만드는 법으로 아귀를 조리했는데 맛이 좋아 주위에 알려지면서 지금의 아귀찜 요리가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이러한 이야기 때문에 마산은 ‘아귀찜의 메카’로 통한다.
말린 아귀는 맛이 쫄깃쫄깃하고 비린내가 없다. 씹을수록 깊은 맛이 우러난다. 콩나물도 대가리는 따내고 줄기만 넣는다. 마른 아귀의 쫄깃쫄깃한 맛을 죽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생아귀를 쓰는 방식은 인천이 원조라고 한다. 생아귀는 물컹하고 약간 푸석하다. 비린내가 많아 온갖 양념으로 이를 없앤다. 생아귀찜의 최대 장점은 아귀 내장의 쫀득쫀득한 맛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마른 아귀를 쓰는 마산아귀찜에서는 기본적으로 내장 맛을 볼 수 없다. 지금은 전국적으로 생아귀찜이 대세인지라 아귀찜집들은 거의 다 생아구로 전환하는 추세인데, 건아구찜만 팔던 마산 아귀찜집들도 소비자 취향에 맞추어 말린 아구와 생아구를 거의 반반씩 취급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은 제대로 된 아귀찜 먹기가 쉽지 않다. 국내산 아귀는 찾아보기 힘들다. 거의 중국, 미국산 냉동 아구다. 그나마 아귀는 별로 보이지 않고 콩나물과 미나리로 무친 양념만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비린내 잡으려고 매운 양념을 엄청 넣었는데도 맵기만 하고 비린 맛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눈높이를 낮추어 먹기는 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어린 시절 먹었던 고향의 아구찜이 그리워지는 것은 어찌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