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코스미아뉴스]
요즘의 결혼식은 옛날과 사뭇 다르다. 아니, 너무 많이 간소화 되고 있다는 표현이 더 맞는 듯하다. 똑똑한 젊은 세대들이 실리를 추구해서 일수도 있고, 만만치 않는 결혼 자금을 부담하기에 부모세대와 자녀세대의 주머니 사정이 그리 녹녹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잘 한다 박수 쳐 주고 싶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안쓰러운 생각도 든다.
최근에 아주 친한 지인의 서른여섯 살 아들의 결혼식에 갔다. 주례자 자리에는 양가 부모님께서 서 있었고, 신랑신부가 함께 손잡고 예식장에 입장했다. 신랑신부가 양가 부모님 앞에서 서로 서약서 읽고, 신랑아버지가 축사로 편지를 읽고, 사회자가 결혼선언서를 낭독했다. 친구들이 나와서 장난 끼 있는 노래로 분위기를 띄우며 결혼식을 한층 재미있게 만들었다. 옛날 같은 엄숙함은 없었지만 그래도 나름 재미있는 요즘스런 결혼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랑의 어머님과 잘 아는 사이라 들은 이야기로는 서로 예단과 함도 생략하고, 예물 대신 작은 반지 하나 주고받았다고 했다. 그렇게 절약한 돈을 서울에 작은 전세 구입비용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얼마 전 또 다른 결혼식은 평일 오후 여섯 시에 있었다. 일요일 저녁 6시에 있는 결혼식에도 참석했었다. 이제는 결혼식을 꼭 토요일이나 일요일, 공휴일 낮 시간에 해야 한다는 틀도 깨어졌다. 주례자가 없어졌으니 주례자라는 은퇴 후의 명예로운 직업도 사라지고 있다. 어른들보다 아이들이 그렇게 하겠다고 하니 어른들은 따를 수밖에 없다고 한다. 또 일부 연예인들의 작은 결혼식으로 인해 그런 문화가 자리 잡고 있는 듯해서 보기 좋아 보이긴 하다.
결혼식에 양가 부모님들이 반드시 갖추어 입어야 하는 값비싼 한복도 사라질 것 같다. 한 결혼식에서는 양가 부모가 정장 양장을 입고 있었다. 물론 뒤에서 이러쿵저러쿵 말들을 하긴 했다. 하지만 3년 안에 아들 딸 둘 다 결혼 시킨 지인은 한복 값으로 백만 원이 넘는 돈을 썼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그럴 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두 양가 집안의 용기에 박수를 쳐 주고 싶기도 하다. 이러다 우리도 미국처럼 결혼 증인만 대동하고 동사무소로 가서 서류에 사인만 하고 사진관 가서 웨딩드레스 잠깐 입고, 아니 웨딩드레스도 생략하고 원피스 입고 부케 들고 사진만 찍는 날이 곧 오려나보다.
요즘은 결혼식장도 크지 않다. 미리 와서 축의금 내고 식사 미리 하고 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식장 안에는 주로 친구들과 친지들만이 있는 경우가 많다. 결혼식에 축하하러 왔으면 끝까지 결혼예식을 다 보고 가야지 돈만 내고 식사만 하고 가는 것은 너무 성의 없다는 사람도 있다. 이 또한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 바쁜 세상에 와 주는 것만도 감사한데 1시간 이상을 붙들어 놓고 결혼예식 다 참석해야만 식사가 제공되는 그런 결혼식을 싫다는 사람도 있다. 나는 후자에 한 표를 던진다. 사실 12시 호텔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밥도 못 먹고 밖에 나와서 추어탕 사먹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이 시대에 편승해 살고 있는 사람이다.
옛날 내가 어린 시절에 동네 언니가 결혼한 날이 생각난다. 옛날식으로 족두리 쓰고 신부 집 마당에서 결혼식 올렸는데 엄마가 그 집 마당에서 떡국 퍼는 일을 맡아서 했다. 결혼 축하파티도 하루 종일 있었고, 온 동네 사람들이 종일 들락거리며 저녁까지 거기서 먹었던 것 같다. 요즘 몽골이나 중국 오지 여행 프로에서나 봄직한 그런 결혼식이 불과 50년 전에도 한국에 있었다. 이제는 그런 결혼식은 족두리 쓰고 마당 병풍 앞에서 보자기에 잘 묶여진 닭과 함께 찍은 빛바랜 사진처럼 아련한 옛 이야기가 되었을 뿐이다.
“함 사세요! 함 사세요!”
요즘은 “함 사세요.”라는 재미난 문화도 소리 없이 사라졌다. 아파트에서 30년을 살았지만 이런 외침을 들어 보지 못했다. 한 때 일부 함 잡이들이 너무 많은 돈을 요구해서 서로 싸움이 났다는 뉴스를 텔레비전에서 들었던 적도 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함을 주고받는 문화는 사라졌다. 대신에 서로 돈 봉투가 오고간다. 신랑 친구들이 함을 들고 오던 것이 신랑 혼자서 함을 메고 오다가, 마침내 돈 봉투가 오고 가게 된 것이다.
그 시절은 신랑 집에서 함을 준비하기 위해서 큰 여행 가방을 사고, 그 속에 한복과 양장, 보석과 함 단지를 정성을 다해 싸서 함 잡이가 들고 왔었다. 함 들어오는 날 집에 있는 사람들은 함 가방을 펴 보고 이런 저런 말고 훈수를 떴었다.
예단과 함을 주고받는 일은 간소화되어 여전히 존재하고는 있지만 함 사라고 소리치는 것은 더 이상 들을 수 없다. “함 사세요.”라고 소리치는 것이 좋은 문화였는지, 아니며 싹둑 무 자르듯이 잘라내야 하는 백해무익 문화인지, 보존가치가 있는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재미난 풍경이 사라진 것에 대해 조금 아쉬움은 있다.
내가 함 받는 날을 떠올려본다. 겨우 30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아주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린 듯하다. 그때만 해도 결혼식 일주일 전부터 신부집안은 부산스러웠다. 함이라는 것이 오기 때문이었다. 함이 들어오는 날 밤에 아버지가 마당에 큰 양철통을 가져다가 나무 장작으로 불을 피워 놓고 함 잡이들을 맞았다. 대문에서 꽤 먼 거리부터 오징어로 가면을 만들어 쓴 신랑 친구들이 “함 사세요.”를 외쳐서 온 동네 사람들 구경 나왔었다.
여기저기 아주머니들이 자기네도 다 큰 처자가 있으니 자신들이 함 사겠노라고 농지거리를 던지기도 했었다. 아버지와 오빠와 친척 어른들은 함 잡이들을 앞에서 당기고 뒤에서 밀기도하고 온갖 감언이설로 한 발자국씩 앞으로 밀었다. 함 잡이는 뒷걸음을 절대로 치면 안 되기 때문에 있는 힘껏 앞으로 나가지 않으려고 애썼다. 발 한발 앞으로 나갈 때마다 발에 돈을 깔아 주기를 바라는 함 잡이와 몇 발자국이라도 더 앞으로 밀어야 하는 우리 집 장정들과 힘겨루기를 하며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 나는 한복 곱게 차려입고 새신랑과 창문 내다보며 안절부절 못하고 왔다 갔다 했다.
“자기 친구들 좀 너무 심하다 적당히 하지”하며 푸념하자, 새 신랑은 장모 눈치 보느라 좌불안석이었다. 엄마, 이모들, 언니, 올케 언니는 함 잡이들을 위해 음식 차리느라 분주하게 오고갔다.
현관문 입구에는 하얀 통통한 실타래를 밍크 목도리처럼 칭칭 둘러 멘 섹시한 북어가 따뜻하고 폭신한 큰 시루떡 위에 우아하게 누워 이 소란을 즐기며 미소 짓고 있었다. 이런 풍경 지금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 아들딸도 “함 사세요.”를 할 것 같지 않다. 만약에 한다면 고성방가 죄로 신고 당하고 경찰이 올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아들과 딸이 작은 결혼식을 했으면 한다. 사실 축의금을 주었다고 해서 왕래가 끊어져 지금은 잘 만나지도 않는 사람들에게 다 청첩장 돌리는 것은 너무 이해 타산적인 것 같아 절대로 그러고 싶지 않다. 남편이 사업하다 그만 둔 터라 딱히 연락할만한 곳도 많이 없다. 그러니 작은 결혼식은 정말 좋은 구실이다.
한 번은 딸에게 시골 이사 가면 집 마당에서 결혼식 하는 것이 어떠냐고 농담 삼아 물었더니 망설이지도 않고 좋은 생각이라고 흔쾌히 말한다. 친구들과 결혼식과 피로연을 한가하게 즐기고 싶다고 한다. 마치 옛날 신부의 집 마당에서 결혼식을 하고 하루 종일 동네사람들이 들락거렸던 시절처럼... 이렇게 옛날 문화로 다시 돌아가는 독특한 결혼식도 생길 것 같다. 우리 딸이 그 문화의 선두에 서 있으려나 궁금해진다. 나는 정말 찬성하고 싶다. 그 또한 멋지고 기억에 남을만한 결혼식이 될 거라 생각하니 벌써 마음이 설렌다.
결혼이라는 인륜지대사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항상 문젯거리를 안고 있다. 안한다고 해도 고민, 한다고 해도 고민이다. 내 아이들은 남의 눈치 보지 않는 결혼식을 했으면 한다. 실리파인 내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할 거라 다짐해 본다. 쉽지는 않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