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용(中庸)
제1장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
하늘의 명은 이를 본성이라고 하며
솔성지위도(率性之謂道)
본성을 따르는 것은 이를 도라고 하며
수도지위교(修道之謂敎)
도를 닦는 것은 이를 가르침이라고 한다.
도야자 불가수유리야(道也者 不可須臾離者)
도라는 것은 모름지기 잠시도 떠날 수 없는 것이니
가리비도야(可離非道也)
떠날 수 있다면 그것은 도가 아니다.
시고 군자 계신호기소불도(是故 君子 戒愼乎其所不睹)
이 때문에 군자는 그 보이지 않는 곳을 경계하고 삼가며
공구호기소불문(恐懼乎其所不聞)
그 들리지 않는 곳을 두려워한다.
막견호은(莫見乎隱) 막현호미(莫顯乎微)
숨어 있는 것 보다 더 잘 보이는 것이 없고 작은 것보다 더 잘 나타나는 것은 없다.
고 군자(故 君子) 신기독야(愼其獨也)
그래서 군자는 홀로 있어도 조심해야 한다.
희노애락지미발(喜怒愛樂之未發) 위지중(謂之中)
희노애락이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것을 중(中)이라 한다.
발이개중절(發而皆中節) 위지화(謂之和)
나타나서 모든 것이 법도에 맞으면 이를 화(和)라고 한다.
중야자(中也者) 천하지대본야(天下之大本也)
중(中)은 천하의 큰 근본이다.
화야자(和也者) 천하지달도야(天下之達道也)
화(和)는 천하의 도를 이룬 것이다.
치중화(致中和) 천지위언(天地位焉) 만물육언(萬物育焉)
중과 화를 이루면 하늘과 땅이 제 자리를 잡고, 만물이 자라난다.
주) '중용'은 논어, 맹자, 대학과 함께 사서의 하나이며 공자의 손자인 자사가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용 사상은 중국 외에도 서양에서는 그리스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여 전개되기도 하였고, 인도 불교의 중도사상도 비슷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양 극단을 버리고 중간을 취하는 것이 덕이라고 파악하는 것이 서로 유사하다. 유교사상에서 중용은 형이상학에서 출발하지만 현실에 적용되는 수양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