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갓 잡은 청어를 숯불에 구워 먹는 맛을 아는가? 기름이 잘잘 흐르는 껍질 속에 도톰한 살점,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입에 살살 녹는다. 겨울이 산란기로 볼록한 배속의 알 또한 톡톡 입안에서 터지는 그 감촉이 별미이다. 등뼈로부터 가지를 쳐서 내려오는 잔뼈가 많지만 조심하면 한꺼번에 떨어져서 어렵지 않다.
청어는 찬 바다에 무리 지어 살다가 산란기가 되면 해안으로 올라온다. 그 개체 수가 너무나 많아서 원양어선에서는 청소기로 흡입해서 잡았다고 할 정도이다. 19세기 말까지도 부산 해안에 청어 떼가 몰려들면 배를 대지 못했다고 한다. 조선에서는 비유어(肥儒魚/선비를 살찌우는 물고기)라고 불렀고 임진왜란 때에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병사들을 동원해 청어를 수십만 마리를 잡아 말려서 과메기로 만들어 군사와 피난민들의 단백질원으로 사용하셨다고 한다.
하멜의 고향 네덜란드에도 청어가 많이 잡혔다. “동북쪽으로는 넓은 바다가 있다. 그곳에서 매년 네덜란드나 다른 나라의 작살이 꽂혀 있는 고래가 꽤 발견된다. 12월에서 3월까지는 청어가 많이 잡힌다. 12월과 1월에 잡히는 청어는 우리가 네덜란드의 북해에서 잡는 것과 같은 종류이며, 2월과 3월에 잡히는 청어는 네덜란드의 튀김용 청어처럼 크기가 작은 종류이다.” 조선에 억류되어 사는 동안 고향 네덜란드에서 온 청어를 조선에서 보면서 사무치는 고향 생각을 했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하멜은 1653년 제주 앞바다에 표류해 조선에 억류되어 살면서 몇 번의 시도 후 마침내 탈출에 성공해서 일본으로 갈 수 있었다. 그가 타고 온 동인도회사 소속 스페르베르호의 애초의 목적지는 일본 나가사키였다. 에도막부는 동인도회사들 중에서 유일하게 선교목적을 갖지 않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하고만 교역을 하고 있었다. ’하멜표류기’로 알려진” “난선 제주도 난파(蘭船濟州道難破記)에 하멜이 네덜란드로 돌아가 14년 억류기간동안의 보상청구를 위하여 동인도회사에 제출한 것이다.
청어로 인해 자본주의가 탄생했다고 하면 경제학자들은 뭐라고 말할까? 네덜란드는 청어잡이가 국가산업이었다. 하멜이 표류할 무렵에는 네덜란드 인구의 3분의 1이 청어와 관계된 산업에 종사했다고 한다. 청어가 네덜란드 북해에서 가장 많이 잡히기도 했지만 청어 저장기술을 발달시킨 덕분이다. 국토가 바다보다 낮아서 청어를 절이는 소금을 저렴하게 생산할 수 있었다. 바닷물을 끓여서 소금을 생산하는 것으로 순도도 암염보다 높았다.
당시 유럽은 암염(巖鹽)을 주로 사용했다. 암염은 채취 비용이 많이 들 뿐 아니라 불순물도 많이 섞여 있다. 당시 저장 청어의 수요는 대단했다. 동양무역로 개척을 위한 장거리 여행의 선박에 선적하는 필수 식료품이었고 기독교 전통에 의하여 금요일에는 육식을 못 하는 관계로 생선으로 대신해야 했다.
청어로 부국이 된 네덜란드 정부는 동양무역로를 개척하고자 큰 규모의 배를 주조하기 위한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다. 정부는 동인도회사를 만들고 이를 위하여 선주들에게 투자하게 했다. 최초 60명의 선주가 최소 1만길더(금 100kg)씩 투자했다. 모여진 금이 645만 길더(금 64톤)였다. 한국은행의 2009년 금 보유량이 14.3톤인 것을 비교하면 엄청난 양의 금이다. 투자자들에게는 동인도회사의 이름으로 그 투자액에 상당한 권리증서를 만들어 주었는데 이들이 최초의 주주들이고 이로써 최초의 주식회사가 만들어졌다. 1602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설립된 후 7년 후 암스테르담에 세계 최초의 증권거래소가 생겼다. 이로써 자본주의가 탄생하게 되었다.
영국을 필두로 네덜란드와 다른 유럽 각국의 동인도회사들의 애초의 목적은 무역이었다. 그러나 국가기관이 개입한 회사임으로 후에 식민국가의 군사권과 통치권을 가지게 되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현 자카르타에 총독청을 두고 포르투갈과 영국 세력을 물리치고 17세기에는 독보적인 회사로 성장했다. 17세기 후반으로 들어오면서 인도를 거점으로 하는 영국 세력에게 압도되어 인도를 영국의 동인도회사가 지배하게 되었다.
각국의 동인도회사의 배들은 아시아와 아프리카로 진출하여 식민지 시대를 열었고 교역이라는 이름으로 노예를 포함한 많은 자원들을 유럽으로 날랐다. 배들은 처음에 나무배로 바람을 이용한 범선이었지만 후에는 철강으로 주조되고 증기기관 엔진을 달게 되었다. 화물선들은 수백 개의 컨테이너를 싣고 중국 공장의 싼 제품들을 선진국으로 날랐다. 엔진에서 나는 굉음은 돌고래와 고래들의 교신을 교란시켜 길을 잃게 하고 유출되는 기름은 해양 생태계를 오염시켜왔다.
자본주의는 국가의 GDP를 올려주었고 인구 증가와 함께 인터넷 보급으로 세계는 더 가까워지게 되었다. 소비를 하지 않으면 경제성장은 없다. 소비를 부추기기 위해서는 물건값이 싸야 한다. 물건의 값이 싸려면 그 물건을 만드는데 드는 비용을 외부화 해야 한다. 원재료의 채취 - 생산 - 소비 - 폐기의 일방적인 컨베이어벨트를 가능한 한 빨리 돌려야 한다. 원재료 채취에서 매립지까지의 한 방향의 컨베이어벨트는 지구의 자원을 쓰레기로 만들어 지구의 땅과 바다를 쓰레기장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독성 화학물질과 플라스틱, 온난화 기체는 지구의 하늘과 땅과 바다로 쏟아낸다. 생산자도 소비자도 지구에 쏟아지는 유해 영향의 값을 치르지 않는다.
자본주의는 기술이라는 기관총을 달고 지구의 몸체 속에 썩지 않고 순환되지 못하는 물질들을 하루에도 수백만 톤을 쏟아 놓는다. 돈을 좇는 자본주의는 지구의 내장 기관과 같은 지역들, 아마존 우림(폐), 늪지대(간, 해독작용), 바다 (자궁)을 여지없이 위협하고 있다. ‘제6차대량멸종시대’인 인류는 시작되었고 지금 진행 중이다.
간단한 통계로도 이점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현재 인간의 개체 수가 야생 영장류 개체 수보다 수십 배 더 많고 사람과 가축을 합친 생물량(1억6천만 톤)이 야생포유류의 전체 생물량(700만 톤)의 약 22배가 된다. 지구상의 땅과 바다와 하늘에 인간의 탄소발자국이 없는 곳이 없다. 신비한 동물의 왕국은 사이버 공간에서만 존재한다.
인류의 역사 속에는 동물 바이러스가 인간 속으로 들어와 병원균으로 인간의 역사를 몇 차례 바꿔 놓았다. 그런데 코비드19부터는 다르다. 70억 인구가 촘촘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는 지구촌의 세계화 상황에서는 인류는 한 덩어리다. 즉 한 몸이다. 어느 한 곳의 기아, 전염병, 테러 사태가 곧 지구 저쪽에 영향을 준다.
신(神)에게서 벗어나려는 인간 중심의 사상이 인본주의였다면 그 인본주의가 인간을 죽이고 있다. 새로운 인본주의가 태어나야 한다.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 아니고 지구 생태계 속의 다른 동식물과 마찬가지인 한 종으로 존재함을 절실하게 깨달아야 한다. 생각하는 기능이 인간을 다른 종과 구별하게 한다면, 그 기능 때문에 우리가 여기 지속불가능의 지점으로 오게 했다면, 바로 그 기능으로 지속가능의 길을 열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 주변 세포를 죽여서 자신의 숙주가 죽을 때까지 번식을 멈추지 않는 지구의 암세포가 되어 있음을 자각해야 하고 살기 위하여 암세포가 아닌 다른 세포로 변해가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자본주의의에 대한 자성과 변형의 움직임이 전부터 있어 왔지만, 경제문제로 부각된 것은 2019년 파이낸셜 타임스의 1면 ‘자본주의 리셋을 위한 시간’이라는 헤드라인을 볼 수 있다. 그리고 2020년 팬데믹이 닥친 연초 세계경제포럼은 ‘위대한 리셋’을 주제로 본격적인 토의를 했다. 결의 사항으로 세 가지에 초점을 맞추었다. 1) 공정한 경제성장을 위한 정부의 역할, 2) 지구적인 공동의 목표인 지속가능성에의 투자, 그리고 3) 4차산업혁명의 기술을 환경, 건강, 사회적 문제에 있어서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데 이용하는 것이다. 정부가 조세, 규제, 재정 정책을 통하여 경제성장이 환경과 함께 공정하게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하여 부유세의 조절, 화석연료 보조금 폐지, 등을 이끌어 낼 것을 촉구하고 있다.
유럽위원회에서는 기존의 ESG(Environment, Society and Governence) 회사에 투자를 증강시키기 위해 750억 기금 계획을 발표했다. 기업이 일정한 환경과 사회에 이득이 되는 경영을 증명하는 일정한 기준을 통과하면 ESG 회사로 등록이 된다. ESG 자산규모는 최근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었다. 국제금융협회(IIF)에 의하면 지난해 11월 말 현재 세계 ESG 펀드의 총자산이 1조3천억 불이었으나 2019년 말과 비교하면 4천4백 51%나 늘어났다고 한다.
몇 주 전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은 자신들이 투자한 기업의 CEO들에게 보내는 2021년 연례 서한에서 자신들의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기후변화 대응을 고려하여 구성하겠다는 강력한 메세지를 보냈다. 그는 지속가능성을 투자의 최우선 순위로 삼겠다면서 “2050까지 탄소제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사업계획을 공개해 달라”고 CEO들에게 요구했다. 그리고 “기후변화는 큰 위기이지만 역사적인 투자의 기회이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애플도 금년도 경영진의 성과급 산정 기준에 ESG 경영성과가 중요한 지표가 될 것이며 성과급에 최대 10%까지 반영하겠다고 발표했다. 애플은 작년 전 세계 협력업체들과 함께 2030년까지 세계 공급망에서 탄소 배출을 제로로 만들겠다고 발표한 적이 있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직접적인 배출량 감소로는 75%를 나머지 25%는 나무 심기와 야생동물 서식지 복원 등의 상쇄 프로그램으로 실행하겠다고 발표했었다.
지구의 바다에 풍부한 청어로 부국이 된 네덜란드의 최초의 주식회사 동인도회사로 시작된 자본주의의 결과는 청어를 포함한 해양 동물을 멸종의 위협에 놓이게 했다. 리셋되는 새로운 자본주의는 생태계를 파괴하는 기관총이 아니라 자연을 복구하고, 물건들이 폐기된 후에도 다시 지구의 자원으로 재생산할 수 있는 순환의 사이클을 만들어 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래서 싱싱한 청어 떼들이 다시 지구의 바다를 가득 메우고, 산호초가 화려하게 파도에 일렁이는, 하멜이 표류했던 300여 년 전의 바다로 복구시킬 수도 있을 것이란 희망을 가져본다. 그리고 그 바다에서 자란 겨울 청어를 100년 후 우리 미래세대들도 그 맛 그대로 맛있게 먹을 수 있게 되는 꿈도 꾸어 본다.
[김은영]
숙명여자대학교 졸업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석사
오크라호마주립대학 박사과정
시납스인터내셔날 CEO
미국환경청 국가환경정책 및 기술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