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서점에 가보면 『사피엔스』, 『호모데우스』, 『종의 기원』 등 인류의 기원과 그 진화를 다룬 책들이 즐비하다. 가벼운 교양서적으로 읽기엔 담긴 내용이 다소 무겁고 전문가에 준할 만큼 난해할 수 있으나, 그러한 책들은 불티나게 판매지수를 올리고 있으며 각종 교양 프로그램에서도 단골 도서로 불려 나가는 일이 부지기수다.
인류의 역사는 진화론자에 따르면 380만 년 전, 성경에 따르면 기원전 4천 년 경에 시작되었다. 어느 쪽이 됐건 장구한 역사가 아닐 수 없다. 한데 그 이래로 전해 내려오는 동안 요즘처럼 인류의 기원과 역사에 관해 관심이 높았던 때도 없다. 1800년대 후반에 이르러 누구나 생각했지만 아무도 발설하지 못했던 것을 토대로 이론화하여 『종의 기원』을 출간한 다윈 시대를 제외한다면 지금처럼 뿌리에 대한 탐구와 의심과 연구에 쌍불을 켠 때도 드물 것이다. 왜 이토록 사람들은 태초의 근원을 밝혀내려 애를 쓰는 걸까? 지구촌, 다문화 시대, 첨단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뿌리를 찾는다는 건 어떤 의미와 가치를 갖는 것일까?
그 해답은 ‘족보’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었다. 족보(族譜). 시조로부터 파생된 일족의 혈통 관계를 파(派)와 세(世)로 구분하여 기록한 책이다. 살면서 한 번쯤 집안의 족보가 있다는 것쯤은 들어 알고 있을 테지만 실제로 그것을 만져보거나 읽어본 이는 드물기 마련. 그도 그럴 것이 한문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또 문중에 몇 없는 ‘가보’와도 같은 책이기 때문이다. 물론 권수와 무게도 만만치 않은 탓도 있다. 그 때문에 족보는 내 부계와 모태에 대한 아련한 동경으로 남아 신비성을 간직하기도 하는데, 요즘에는 종이책으로 발간된 족보 이외에도 일부 종친회의 ‘인터넷 족보’가 맥을 잇는 새로운 방안으로 떠오르고 있어 접근이 한결 쉬워졌다.
그런 족보를 들춰보는 행위는 단순한 호기나 허세가 아닌 뿌리에 대한 막막한 갈증에서 비롯된 일일 것이다. 핵가족화에 이른지 어언 삼십여 년이나 흘렀고, 그 자식 세대는 이제 비혼과 딩크족의 확산으로 새로운 가구 체계가 정립된 요즘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의 습성처럼 정체성을 되찾으려는 움직임도 함께 진행되기 때문이다. 나의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그리고 고조부모...
그렇게 거듭되는 뿌리의 심연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불현듯 막막한 외로움과 숭고함이 복잡하게 버무려지는 느낌마저 든다. 먹물로 쓰인 이름 석 자, 거기에는 생략됐지만 그들의 생애가 주석처럼 달려 하나의 대서사시처럼 다가오기 탓이다.
종내에는 거기에 이름을 올리는 것조차 대단한 뭐라도 되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거기서 우리는 시대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양자로 들어가는 경우 출계(出系)라 하되 반드시 그 생부를 기재하지만, 딸의 경우는 이름을 넣는 대신 사위의 본관과 이름을 넣는 것. 생애 업적에 따라 족보에 등재된 내용의 경중이 달라지며 그로 말미암은 묘지도의 유무까지도 갈린다는 사실, 더 나아가 보잘것없이 운영되어 오던 문중을 일으키기라도 하면 중시조(中始祖)의 반열에 오르는 영광도 누리게 된다는 것. 물론 태어났어도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는 이도 있을 터. 이쯤 되면 족보는 하나의 역사고 또 하나의 계급사회고, 더 나아가 인생의 장(場)이나 다름없다.
페이지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몇 없어 헤아릴 수 있었던 실가지들이 차츰 퍼지고 퍼져 바람에 휘날리는 버드나무처럼 거대해진다. 어쩐지 그런 식으로라면 당장 집 밖에 나가서 열 사람을 붙잡아도 그중에 한 명쯤은 나와 혈연관계일 것만 같은 착각은 덤이다. 그렇다면, 좀 더 폭을 좁혀 직접적인 조상으로부터 계보를 확인하는데, 그때 필요한 것이 파(派)다. ‘파’란 대체로 최초의 시조가 아닌 중시조의 관직에서 따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같은 성씨라도 파로 구분하여 본다면 처음보다 폭이 좁아져 직접적인 혈연관계에 놓인 뿌리를 찾는 데 훨씬 수월하다. 이를 파보(派譜)라고 한다. 파보에 수록된 조상을 되짚어 보면 그때는 집안 형성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 크고 작은 사건들과 인물을 만나게 된다. 당시를 살아오면서 인생의 갈림길에서 그들이 선택한 길에 따라 조금씩 대를 거듭하며 바뀌고 사라지는 것.
인생이 한 사람이 걸어온 역사라면, 족보는 걷고 또 걷는 혈통의 연쇄를 기록한 물건인 셈이다. 또 그 연쇄 속에서 성찰하고 자조하는 과정을 거친 유전자는 지금의 ‘나’의 생명 단위를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필자는 중앙종친회에 연락을 취해 족보에 등재 여부를 확인한 바 있다. 물론 부계와 모계 모두 확인했고, 옛 시대의 산물인 만큼 딸은 등재가 되지 않은 오류를 안고 있었다. 그 오류를 바로잡고자 수단(收單) 신청을 하여 어머니를 올려 드렸는데, 다행스럽게도 종친회 측에서 받아들여졌다. 자 어떤가? 시대가 흐르면서 걷는 방향과 속도도 달라진 셈이다. 더는 유교 시대의 고리타분한 유물 또는 가부장제가 낳은 불평등의 산물이 아니라 남녀, 친외를 떠나 오롯이 ‘나’의 기원의 흐름과 성소(聖所)를 파악하고 추적하며, 또 다른 여정을 시작하는 자양분으로 변모한 것이다.
기원의 태(胎)를 찾으려는 움직임이 엿보이는 현대사회에서 족보에 대한 재해석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 수 없다. 반대로 내 안에서 무언가 재창조되고 시작된다는 사고는 막연한 자아도취가 아니라 ‘기원’에 대한 ‘역발상’일 것이다. 이는 누군가의 기원이 반대로 나에게 있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족보(族譜)는 족보(足步)일 수밖에 없다. 왼쪽으로 갔다가 오른쪽으로 갔다가, 갈지(之) 자로 걸었다가 일직선으로 걸었다가, 뛰었다가 느릿느릿 걸었다가, 춤추듯 걸었다가 잔바람에도 비틀거리며 걸었다가, 그렇게 황혼까지 다다르고 이튿날 해가 뜨면 또 걷는 족보(足步).
이미 걸어간 이의 발자국을 보며 우리는 따라가거나 벗어나기도 한다. 세상에 외떨어진 존재로만 여겼던 정체성에 안락함을 느끼고 든든한 동지애마저 느끼는 순간이다. 따라서 앞서 찍힌 발자국과 다른 경로를 택한다 해도 외롭지 않다. 막막하지 않다. 역시 우리의 뒤를 따르는 아무개 역시 제 앞에 찍힌 족흔을 보며 나름의 선택을 할 것이다.
자, 우리는 우리의 여정을 묵묵히 떠남으로써 유전되어 온 미완성의 대서사시를 각자의 보폭과 걸음 속도로 이어 나가면 될 일이다. 오늘의 ‘나’가 있다는 것은 어제의 ‘너’가 있기 때문인 법.
결국, 그 한마디를 하기 위해 그토록 두꺼운 책자를 써야만 했던 것이다.[글=강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