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연구가이자 초서 전문가인 노승석 여해고전연구소장이 지난 10여 년간의 연구 결실이라고 할 수 있는 《신완역 난중일기 교주본》을 출간했다. 이번에 출간한 책은 한국과 중국 문헌을 완벽하게 고증하여 이순신 장군이 남긴 《난중일기》에서 용어와 인명 등 4백여 곳을 새롭게 고증한 결과물이다.
《난중일기》 판본은 《이충무공전서》의 《난중일기, 1795》와 《난중일기초, 1935》가 대표적이고, 이에 대한 번역은 홍기문과 이은상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 후 여러 번역서들이 간행되었지만, 오독 문제가 학계에 제기되면서 새로운 교감(校勘, 오류 교정)과 번역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에 노승석 여해고전연구소장이 《난중일기》 교감 번역을 한 결과, 2008년 《난중일기의 교감학적 검토》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바 있다.
노 소장은 초서와 고전을 연구한 고전학자로서 10여 년 동안 이순신과 《난중일기》를 연구하여 이순신 저서 3권과 《난중일기》 역저서 9권을 집필한 국내에서 정평이 나있는 이순신 연구가이다. 그동안 홍기문의 《난중일기》 한글 번역본과 새로운 일기 36일 치, 삼국지 인용문, 금토패문 등을 발굴하였다. 그의 《교감완역 난중일기》는 가장 충실한 교감완역본으로 2013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난중일기가 등재될 때 심의자료로 제출되어 기여한 바가 크다.
이번에 출간한 《신완역 난중일기 교주본》은 다년간 수집한 한국과 중국의 이순신 관련한 방대한 문헌으로 문헌학과 고증학의 관점에서 《난중일기》 용어와 인명, 지명 등을 철저히 분석하여 주석(註釋)한 책으로 《난중일기》 문헌 고증과 판본 교감에 관한 내용을 집대성한 것이다. 초고본과 이본(異本) 글자를 교감한 원문도 함께 수록하였다. 또한 후대에 초록된 일기초의 32일 치와 함께 고상안, 배흥립, 임계영, 송덕일의 문집에 초록된 《난중일기》를 모두 발췌하여 수록하였다.
기존의 교감완역본이 난중일기 원문을 번역한 것이라면, 교주본은 최대 규모의 한중 문헌으로 수많은 전고(典故)들을 일일이 고증하고 교감 역주한 책이다. 특히 이순신이 인용한 〈독송사〉와 둘째 아들 열(䓲)의 이름 풀이 등 지금까지 소개된 적이 없는 중국 고문헌의 출처를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노 소장이 《난중일기》의 난해한 용어들이 중국 문헌에서 인용된 사실을 일일이 밝힘으로써 이순신이 중국의 다양한 고전적들을 두루 섭렵한 독서가였음을 알 수 있다.
새롭게 고증한 사례를 들면, 《난중일기》정유년 10월 8일 이후에 나오는〈독송사(讀宋史), 송사를 읽고〉라는 글이 지금까지는 이순신이 지은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이는 이순신이 지은 것이 아니고 중국 명(明) 나라 때 학자인 경산(瓊山) 구준(丘濬 1420∼1495)의 저작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혀냈다. 또한 《난중일기》 정유년 5월 3일 자를 보면, 이순신이 백의종군하러 합천으로 가는 도중 순천에 머물렀을 때 둘째 아들 울(蔚)의 이름을 열(䓲)로 고쳤다. 이순신은 “열(䓲)의 음은 열(悅)이다. 싹이 처음 생기고 초목이 무성하게 자란다는 뜻이다.(萌芽始生, 草木盛長) 글자의 뜻이 매우 아름답다."라고 뜻풀이를 했다. 여기서 열(䓲)의 뜻풀이인 “萌芽始生, 草木盛長” 8글자는 당(唐) 나라 때 혜림(慧琳)이 지은 《일체경음의(一切經音義)》에 실린 중국 진(晉) 나라 때 학자인 곽박(郭璞)의 주석 내용을 인용한 것이다.
특히 일본인이 오독한 '여진입(女眞卄)'과 '여진삽(女眞卅)'에 대해서는 이제 더 이상의 이견이 없도록 결론을 지었다. 즉 여진(女眞)이 해남 윤 씨 집안의 사비(私婢)였다는 문서(한국학중앙연구원)가 발견되고 명나라 때 자서 《정자통》의 “共은 ‘두 손으로 받들 공(廾)’자와 통용한다"라는 내용을 근거로, 입(卄)과 삽(卅)을 공(共) 자로 확정했기 때문이다. 간혹 일반인과 비전공자들은 초서의 원리를 잘 몰라 이에 의문을 갖지만, 고전학자 대부분은 입(卄)과 삽(卅)이 오독이라는데 공감을 했다. 고문서의 대가인 하영휘 교수는 “이는 변형된 공(共) 자이다”라고 감정하였다.
《난중일기》의 난해한 부분은 연구자마다 해독 내용이 다르고 또한 비슷한 글자들이 매우 많아서 자형만을 보고 판단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에 노 소장은 정통 고전학자들의 해독법에 따라 철저한 문헌 고증과 이순신이 쓴 용례를 분석하여 모두 해결하였다. 그 외 백여 명의 인명에 대해 《선조실록》과 임진왜란 사료, 《이충무공전서속편》 등을 참고하여 새롭게 고증하였다. 최대 규모의 문헌 고증과 고전학자들의 공통적인 해독 방법으로 교감과 고증을 진행하였고, 난해한 구절은 원로 고전학자들의 자문을 받으며 이제 가장 완벽한 《난중일기》 교주본을 출간했기 때문에 의미가 매우 크다.
지금까지 해독한 《난중일기》 원문 글자는 새로운 일기 36일 치를 합하여 모두 93,022자이고, 새롭게 문헌 고증한 사례는 4백여 건이다. 부록에는 노량해전과 이순신의 전사에 대한 논문을 수록했는데, 진경문(陳景文)의 《섬호집》 〈예교진병일록〉 내용을 토대로 정확한 역사적 사실을 새롭게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