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열전 靑年 列傳] 나에 대해 생각하기, 유지영

순간의 이렇고 저런 것들, 그리고 내가 너무도 나이던 때

 나에 대해 생각하기

    

나는 나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왠지 나를 잃어가고 있는 느낌이 들어 마음이 무거워지곤 한다. 사실, 기쁘고 행복한 순간에는 앉아서 그것들을 생각하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 무언가 내 안에 문제가 있을 때에 생각의 꼬리잡기가 시작되는데 그것들은 하면 할수록 긍정적 결과에 도달하기 보다는 보통 더욱 답답한 문제들과 얽혀 더 무겁고 우울한 것들이 되었다. 이런 순간들에 괴로울 때면 펜을 들어 머릿속의 생각들을 적어내려 갔다. 이렇게 하면 어쩐지 마음이 느슨해지고 가끔은 눈물도 났다.

 

이 순간의 기록이 라는 것은 사실 매우 어려운 일이다. 머릿속 생각들을 글로 담아내려 하다보면 자꾸 내 머릿속에 없던 말들을 만들어내기 마련이기에. ‘순간의 생각은 말 그대로 순간의 생각이라 그 찰나를 잡기엔 시간이 너무도 빨리 흘러버리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어떤 생각을 그 생각이 지나가기 전에 완전하게 적어내리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생각을 옮기다 보면 더 좋은 단어, 말들을 적어내려 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순간의 생각은 이미 흘러가고 없으니까. 혹시, 술을 왕창 마시고 필터의 기능이 약화되었을 때 혹은 감기약에 취해 몽롱할 때 펜을 들어 글자를 써내려간다면 어떨지 모르겠다. ‘순간의 생각을 정말로 포장 없이 기록할 수 있을지.

 

그래서 나의 기록들은 주로 술을 한두 잔 마신 상태에서 적어 내려간 순간, 관계 그리고 마음들에 대한 것이다.

 

 

1. 순간

 

바람냄새

 

계절이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좀 더 정확히는 겨울에 더욱 가까워질 때쯤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의 나는 아침잠이 유독 많아 이른 새벽 알람소리가 두세 번 정도 지나고 나서 겨우 일어나 교복을 입었다. 특히 날씨가 추운 새벽에 일어나는 것은 더욱 힘들었다. 해가 늦게 떠서인가. 왠지 하루를 시작한다는 느낌이 덜 하달까. 해도 없으니 따뜻한 이불 속을 나오는 것은 더더욱 힘들고.

 

그럼에도, 이 추운 아침 등굣길이 좋은 이유가 있었다. 빈지노의 나이키슈즈를 듣고 엄마가 싸준 사과를 한 입 베어 먹으며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는 것. 양치하고 바로 베어 먹는 사과는 약간 씁쓸했고, 코로는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갈 때쯤 나는 그런 바람냄새가 들어왔다. 나는 계절의 변화를 바람 냄새로 미리 짐작하곤 하는데, 이 날의 바람냄새는 왜인지 더 특별했다. 여전히 나이키슈즈를 들으며 길을 걸을 때는 그 순간 사과의 씁쓸함과 차가운 바람냄새가 느껴졌다. 그리운 순간들이 쌓이고 있는 것이다.

 

 

그 때의 나

 

내 서랍장 가장 마지막 칸은 추억 저장소이다. 이사 오면서 여기저기 흩어진 편지며 사진들, 그리고 추억의 폴더폰들까지 버리지 못하고 가지고 있던 것들을 한 군데모아 나름대로 추억 저장소라고 이름을 붙여보았다. 이 중 중학교 때 찍었던 스티커 사진을 한 장 발견했는데 잊고 있었던 나의 똥꼬발랄하던 그 시절이 떠올라 웃음이 났다. 나는 수업시간 외에도 거의 만날 교무실로 달려가 원어민 선생님과 이야기하고 싶어 했다. (약간 거의 돌진이었다) 영어가 좋다기보다는 다른 나라의 사람과 이야기하고 다른 문화를 경험하는 것에 흥미가 있었던 듯하다. 결국 선생님과 나는 매우 친한 사이가 되었고, 선생님에게 한국 문화를 소개시켜 주고 싶었다. 선생님께 명동 구경을 시켜드리기로 하고 친한 친구 둘을 꼬셔 함께 서울투어에 나섰다. 나와 친구 둘, 그러니까 우리 셋은 점심으로 피자 한 판을 나눠먹고 선생님은 피자 한 판을 혼자 다 드셨다. (그 때의 나는 일인 일피자가 굉장한 충격이었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기념으로 스티커사진을 찍게 되었는데 나는 이상한 광대가발을 쓰고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선생님 옆에 서있었다.

 

참 아이러니한 것은 이 장난스러운 소녀의 모습은 지금의 내가 그토록 바라는 나의 모습이다. 어렸을 적에는 화장도 하고 예쁜 옷도 마음대로 입을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었는데 그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지금의 나는(물론 정말 어른이 된 것은 아닐지라도) 저 소녀의 모습이 너무나 부러운 것이다.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주저 없이 들이대고 필요하다면 귀여운 집착까지도 할 수 있는 그런 순수함 말이다.

 

 

여름이 좋은 이유

 

누가 나에게 너는 여름이 좋아? 겨울이 좋아?’ 라고 물으면 나는 주저 없이 여름이라고 대답했다. ‘겨울은 아침 꼭두새벽부터 밤까지 하루 종일 추운데 여름은 낮에는 덥지만 밤에는 그래도 시원하잖아~’ (그러나, 요즘은 그것도 아닌 것 같지만) 또 다른 이유를 떠올리자니 바로 오늘, 좋은 이유가 떠올랐다. 자전거 타고 땀범벅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니 뭔가 하루 종일 열심히 산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같은 일을 해도 뭔가 더 최선을 다한 하루 같은 느낌.

 

1. 밤을 즐길 수 있어서 2. 밤에 치맥을 즐길 수 있어서

 

 

2. 관계

 

엄마의 전화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난 어느 날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엄마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나는 한 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는 것만 같은 이상신이라는 사람을 떠올렸다. 마음이 아팠고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엄마로서가 아니라 그냥 그 자체의 인간으로써. 마음을 다잡았고 성공하리라. 며칠 뒤, 엄마의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뭐 해라, 그래야한다, 왜 그랬냐엄마에 대해 가지고 있던 안쓰러움의 마음을 벌써 다 잊었다. ‘, 알았어, , , 나는 짧은 말들, 가벼운 말들을 내뱉고 만다.

 

나는 너무나 이기적이다. 내 마음 편하자고 그 사람을 생각하고 또 내 마음 편하자고 쉽게 잊는다. 나의 못나고 이기적인 마음에도 한결같이 바라봐주는 사람인데. 그 마음을 조금은 알면서도 너무 잘 잊는다. .

 

 

관계의 집착

 

모든 관계들을 잘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사실은 지치고 상처받게 된다. 무조건적으로 일방적인 관계는 거의 없기에 기대하게 되고 바라게 되는 것이다. 나 또한 그러한 관계들에 집착하고 상처받았던 적이 있다. 그러다보면 결국 나의 자존감의 문제까지 들춰지게 되는데 때로는 어떤 트라우마로 남아 나를 괴롭혔다. 이 기록은 내가 그러한 관계의 집착에서 얻은 자존감의 추락에 대한 것이다.

 

나라는 사람이 초라해 보이지 않게 방패를 만들어 두었다

늘 막고 막아 속 안의 것들이 보이지 않도록 무던히 애썼다

그 방패들이 사실 아주 비겁한 것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쓰레기들마저 사라지면 어쩌나 하고 두려워했다

그 안의 사실들이 밝혀지면 그런 사람으로 보여질까봐서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 방패를 내 것이라 믿는 내 자신이 초라해지고 지겨워졌다

나는 그 방패를 들지 않으면, 나를 가리지 않으면 누군가의 앞에 설 수도 없는 사람

그래서 자꾸 몸이 비틀어지고, 휘어버려 마음이 뭉겨져 버리게 되었지.

 

 

3. 마음

 

입장차이

 

술 한 잔 마시며 친구와 이야기했다. 그 때의 나는 마음이 아팠고 지니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만약에 지니가 나타나서 나한테 소원하나 말해보라고 하면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을 얻게 해달라고 빌 거야나는 시작이 하고 싶었다. 그랬더니, 내 친구는 이렇게 소원을 빌겠다고 했다. “그 사람의 마음이 변하지 않게 해주세요.” 그 말에 마음이 쿵 가라앉는 듯 했다. 그 마음을 가지면 나는 그걸로 된 거라고 충분히 행복할거라고 확신했는데, 그 마음이 변할 수 있다니 가지는 것이 두려워졌다. 왜 마음은 변해서 또 고민이게 되는 걸까.

 

 

감정 바라보기

 

가끔 나는 마음이 아픈 그런 상태를 즐기는 것 같기도 하다. 그것이 얼마나 상처이고 아픈지 알면서도, 자꾸만 생각해서 그 감정을 크게 만들어 버리고 마음에서 떠나지 않게 붙들어놓곤 한다. 내 안에 그런 감정들을 담아두고는 막상 다른 사람의 아픔은 모른 척 할 거면서. 어쩌면 같은 상처를 주기도 하고.

 

나는 나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럼에 어떤 좋기도 한 순간의 또는 괴롭던 순간들의 기록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내 안에서 생겨나는 문제들은 가볍게 사라질지도 또는 더 무거운 것이 되어 나를 괴롭힐지도 모른다. 그치만 나는 그 안에서 생겨나는 모든 고민들을 못 본 척 하지 않으며 살펴보려 애쓰고 싶다. 너무 복잡해질 때쯤이면 순간의 바람냄새에 킁킁거릴 줄도 알고 하늘을 보고 오늘의 하늘의 매우 아름다움을 느낄 줄도 알면서.

 

 

 


전명희 기자
작성 2018.10.27 00:30 수정 2018.10.27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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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