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먼드 카버(Raymond Carver, 1938~1988)는 20세기 후반 미국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시인이며, 1980년대에 미국 단편소설의 르네상스를 주도한, ‘헤밍웨이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소설가’, ‘리얼리즘과 미니멀리즘'의 대가라고 불린다. 미국 노동자 계급 출신으로 자신이 속한 계층의 모습을 생생히 묘사한 이전 미국 문학계가 상류층 인생을 묘사한 작품이 주류였다면 레이먼드 카버의 등장으로 미국 문학은 하층민, 블루칼라 계급의 삶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평화롭고 화목한 한 가정이 있었다. ‘지금까지는 행복했고, 운이 좋았다’라고 생각하는 아버지, 빵집을 찾아가 아들의 생일케이크를 미리 주문하면서 빵집 주인이 무뚝뚝해서 아들 얘기를 함께 나누지 못해 불편한 정도가 불만인 어머니, 그리고 친구가 가져올 생일선물을 알아보려고 애쓰는 천진한 아이로 이루어진 가정이다. 그 평범한 가정의 일상적인 행복은 아이의 생일날, 예상치 못한 교통사고로 한순간에 무너지고 만다.
의사는 아이가 괜찮다고, 곧 깨어날 거라고 말하지만 아이는 깨어나지 않는다. 깊은 불안 속에서도 의사의 말에 매달리며 교대로 잠시 쉬러 집에 다녀온 아이의 부모는 집에서 이상한 전화를 받는다. 그것은 케이크를 왜 찾아가지 않냐는 빵집 주인의 전화였지만 아버지는 전혀 영문을 몰랐고, 어머니는 아들의 이름을 말하는 것만 듣곤 혼비백산한다. 그러다 아이는 의사의 말과 달리 세상을 떠나고, 넋이 나간 채 집에 돌아간 부모는 또 전화가 오자 격분하여 새벽에 빵집으로 달려간다. 영문도 모른 채 그들을 맞은 빵집 주인한테 부모는 아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말하며 그를 비난한다. 빵집 주인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사과하고 그들에게 의자를 내민다. 그리고 이럴 때 뭘 좀 먹는 일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될 거라며 갓 구운 빵과 커피를 대접하고, 며칠 동안 자지도 먹지도 못했던, 부모는 새벽 어둠 속의 아늑하고 따뜻한 빵집 안에서 갑자기 허기를 느끼며 갓 구운 그 빵과 커피를 계속 먹는다.
급작스런 교통사고로 어린 아들을 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끔찍한 비극 앞에서도 인간은 갓 구운 빵과 커피 같은 별 거 아닌 것에 위로를 받는다. 별 거 아닌 것이었지만 한 사람의 진심 어린 미안한 마음과 그들을 조금이라도 위로해주고 싶은 따스한 마음이 스며 있기 때문이겠다. 이 이야기는, 어린 아들의 죽음이라는 끔찍한 비극을 뼈대로 삼고 있지만 어찌 보면 아주 하찮은 일상의 오해와 사소한 위로를 담고 있기도 하다. 서로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그들의 전화 통화는 답답하기 짝이 없지만 그러한 불통이 있었기에 마침내 소통하는 이야기다.
우리 인간은 운명 앞에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가, 우리가 사는 현실이란 것이 얼마나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 것인지, 그러면서도 그 미미한 존재들이 어떻게 서로에게 손길을 내밀고, 서로의 상처를 나눌 수 있는지를 쓰라리면서도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는 이 작품을 통해 지금 이 순간 함께하는 삶의 소중함을 깨닫는 시간을 찾는다. 사랑하며 살자. 조금 부족해도 더 부족한 이를 위해, 남에게 좋은 이로 남는다는 것이 어떤 족적을 남기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인간에게는 적어도 사랑이 있음을 잊지 말고 살자.
[민병식]
인향문단 수석 작가
대한시문학협회 경기지회장
문학산책 공모전 시 부문 최우수상
강건 문화뉴스 최고 작가상
詩詩한 남자 문학상 수필 부문 최우수상
2020 코스미안상 우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