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땅을 찾아 불어대는 디저리두의 슬픈 연가
나의 조국은 영국인가 호주인가? 정글에서 울려 나오는 디저리드는 한의 노래이며 빼앗긴 대지를 돌려 달라는 애버리진의 슬픈 비명이다.
애버리진은 말한다. ‘우린 영국의 과보호로 자활 능력을 잃어버렸다. ’ 원주민이 급속도로 줄어들자 영국은 세계 여론의 압박을 받자 부랴부랴 원주민 보호책을 내놓고 남아 있는 원주민을 극진히 대우하였다. 국가가 모든 원주민에게 무상보급으로 생활을 하게 하였다. 그러나 원주민 교육은 소홀히 하여 점점 하층계급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결과 100년이 지난 현재 원주민의 총수는 30만에서 40만 명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애버리진들은 너무 지나친 국가 보호책으로 자생력을 잃고 말았다. 이들을 교육시키지 않아 자기 계발과 자활 능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과보호로 일을 하지 않아도 정부가 먹여주니까 살았으나 자생력을 잃은 나태라고 무능력한 종족으로 전락했다.
영국은 원주민 지도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마침내 원주민 보호책을 철회하자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알고 스스로 자구책을 세워 영연방에 적응해 가지만 변화를 못 하고 스스로 자멸해 가는 상태이다.
무력한 애버리진들은 관광지나 유흥업소에서 디저리두를 불거나 민속춤을 추면서 생계를 유지하지만 우리에게 조상의 땅과 생존권을 달라는 말 없는 저항으로 울부짖지만, 그들에겐 절망만 있을 뿐이다. 결국 그들은 이대로 사라질 뿐이었다.
인종 차별과 민족주의 부활
생물은 종족을 보존하면서 동종 집단을 이루어 살아가고 있다. 생명의 연속성이리라고 한다. 같은 종이 모여 살면 그만큼 협동과 단결이 잘 되어 번영을 누린다. 동족 공생은 식물과 동물뿐 아니라 사람들의 사회도 마찬가지다. 동족과 부족이 집단을 이루어 살며 번영을 누렸고 더 나아가서는 민족국가를 이루어 왔다. 그런데 강대국의 식민정책으로 지구촌이 세계적으로 개방되면서 동족이나 민족주의가 깨지고 세계화의 다 민족주의로 변천하였다.
민족주의는 얻는 것도 많지만 잃은 것이 더 많았다. 유럽의 강대국들은 식민지를 지배하여 부와 재화를 얻었으나 식민지인 학대란 엄청난 피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지금도 이질 민족의 동화는 쉽지 않다는 것을 미국과 영국에서 볼 수 있다. 혼합민족 국가에서 일어나는 인종 차별과 민족 분쟁은 민족주의 부활로 일어나는 투쟁으로 앞으로 더 큰 수난을 겪을 것이다.
호주 원주민의 학살사(범법자들의 무자비한 학살)
해양제국 네덜란드는 1616년 호주를 발견하였고 1688년에 영국인들도 호주 땅에 상륙하였다. 17세기 호주를 발견할 땐 약 100만 명의 애버리진이 300여 개의 부족 국가로 살고 있었다. 그들은 250여 개의 언어를 사용하였다. 그런 영국은 1770년 제임스 쿡 제독을 앞세워 원정대를 보내 시드니를 점령하고 시드니가 영국령이라고 유럽인에게 소개하였다.
그리고 영국의 왕 조지 3세는 1788년 1월 26일, 아서 필립 제독에게 명하여 11척의 배에 1,500명의 원정대를 보내 호주 원주민을 학살하고 광활한 호주 대륙을 점령하고 뉴 사우스 웨일스에서 영국이 호주의 식민주권을 가진다고 선포하였다. 그는 스스로 뉴 사우스 웨일스 주의 초대 식민지 총독이 되었다. 넓은 땅과 풍부한 천연자원을 확보하기 위하여 호주 원주민인 애버리진을 무참히 학살하였다.
1859년에는 호주를 완전 정복하고 모든 주를 대영제국의 식민지로 만들고 1901년에는 식민지를 영연방으로 통합하는 법을 공표하고 원주민 토벌전을 벌였다. 호주는 독립된 나라로 번영을 누리고 있지만 원주민들은 식민지배를 거부하고 있다.
영국은 신대륙 호주 개발을 위해 수많은 범죄자를 파견하여 영토를 넓히고 식민주권을 휘어잡기 위하여 호주 원주민 토벌하기 시작하였다. 범법자들은 아무 저항 없는 원주민을 학살하고 그들의 재산을 빼앗았다. 1788년 영국인이 정착할 당시 원주민(Aborigines)의 수는 대략 100만인데 무차별 학살로 3만 정도가 남았다. 이렇게 영국은 호주에 자국인과 아일랜드 인을 대거 이주시켜 백호주의 나라를 만들었다.
영국은 식민정책에 반항하는 행위나 터전을 보전하려고 저항하는 애버리진을 무자비하게 짐승처럼 도륙하였다. 1860년대에는 태즈메이니아섬 원주민 전원을 학살하였다. 영국인들은 호주를 자기들만의 나라를 만들려는 백호주의를 부르짖으며 이민을 안 받고 원주민을 제거하는 정책을 고수했다. 따라서 영국은 1868년까지 약 16만 명의 죄수를 오스트레일리아로 파견하여 원주민 학살과 농토를 개발하게 하였다. 영국에서 가장 하류 계층인 죄수들이 잔학무도하게 원주민을 학살하였다.
1868년부터 1968년까지 100년 동안 수많은 원주민이 죽고 겨우 살아남은 자들은 영국의 문화와 문명에 적응하지 못하고 멸종하는 위기를 맞았다.
뉴질랜드 마호이족과 호주의 애버리진의 차별대우
같은 영연방 식민지인 뉴질랜드의 호주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뉴질랜드 정복 이민자들은 처음부터 원주민인 마호이족을 달래고 옹호하면서 평화롭게 지내는 법을 가르쳐서 순수하게 적응했으나 호주의 정복 이민자들은 무지하게 원주민들을 학살하는 정책으로 추진하여 원주민이 영국에 순응하길 바랐던 것이다.
마호이족은 아무 저항을 하지 않고 영국이 지시하고 원하는 대로 따라주면서 자신의 문명을 되찾아 독단적인 문화를 형성하여 잘 적응했으나 호주의 애버리진들은 영국의 문명에 적응을 못 했다.
영국은 세계 제1.2차 대전 때 호주 원주민을 의용대로 끌어내어 참살시켰다. 결과적으로 100만 명의 원주민이 300년 만에 40만 명 정도 남았다. 이들 원주민은 겨우 퀸즐랜드· 뉴사우스웨일스· 웨스턴 오스트렐리아 주에 일부 살고 있다. 아무리 한 강력한 국가라고 할지라도 민족이 다르면 소수 민족이 박해당하고 끝내 그들은 자멸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아무리 민족주의를 부르짖는다고 할지라도 사라져가는 인구 감퇴엔 어쩔수 없었다. 식민 국가가 노리는 것은 바로 원주민이 스스로 자멸해 가는 그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인디언들의 사멸은 성공했으나 다민족주의 혼란은 막을 수 없었다.
[김용필]
KBS 교육방송극작가
한국소설가협회 감사
한국문인협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마포 지부 회장
문공부 우수도서선정(화엄경)
한국소설작가상(대하소설-연해주 전5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