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프로젝트] 풀잎처럼 눕다

김회권

사진=코스미안뉴스


세상의 아름다움은 눈에 보이는 풍경으로만 오는 게 아니다.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는 마음에서도 풍경은 선연히 찾아든다. 풍경이란 마음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는 거다. 우리가 서로의 손을 맞잡으면 따뜻한 체온을 느끼듯 마음 또한 마주 서 있어야 한다. 내 마음 앞에 있는 다른 이의 마음이 등지고 있다면 눈을 감고 풍경을 바라보는 거와 같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전할 수도 없다.


그는 마음이 참 따뜻한 사람이야.’ 우린 이 말을 하면서 그 사람의 품위와 품성을 읽어낸다. 품위는 그 사람의 직품(職品)과 직위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기도 하고, 사람이 갖추어야 할 위엄이나 기품을 말하기도 한다. 또 품성은 품격과 성질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어쩌면 마음은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의 이력을 보여주는 것일지 모른다. 전 생애를 통하여 쓰인 삶의 이력이기에 쉽게 바꿀 수 없고, 감출 수도 없다. 그래서 어린아이의 마음은 순수하고 깨끗하다고 말한다. 그만큼 세속의 때가 묻지 않았다는 거다.


마음이 내 것 같지만 실상 그 안을 들여다보면 내 것이라 말할 게 없다. 나는 이리 가고 싶은데 마음은 다른 방향, 저쪽으로 가는 경우가 많은 까닭이다. 우리가 길을 걸을 때 이왕이면 매끄럽고 부드러우며 곧고 널따랗게 뚫린 길을 걸었으면 한다. 물론 조금은 울퉁불퉁하고 굽이졌으나 꽃길처럼 아름다운 길도 있지만. 마음도 길과 같아 막힘없이 시야가 넓게 펼쳐져야 어떤 누구든 내 마음에 불편 없이 드나들 수 있고 소통도 된다.


누구든 대화로서 상대를 안다고 단정할 수 없다. 아무리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할지라도 마음을 알 수 없으면 그건 말로서 끝나기 쉽다. 마음을 접은 상태에서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었던 할지라도 그저 허허롭기만 할 뿐이다. 대화에는 늘 마음이 그 자리에 함께 있어야 한다. 내뱉는 언어는 청각을 통해 받아들이다가 정작 마음의 문 앞에서 서성거리기만 한다. 마음이 구겨졌거나 닫혀있어 그렇다.

하지만 열린 마음은 그렇지 않다. 그 마음끼리 서로 전하고 알아듣는 것이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마음의 눈은 상대를 알아보고 읽을 수 있다. 비록 수정처럼 빛나 보이지 않아도 잠잠히 내 안으로 들어오는 그 평온함은 참으로 아늑하기만 하다. 우리가 누군가의 그늘진 삶에 빛이 되고 향기를 발한다는 거, 그건 먼저 내 몸과 마음을 비우고 닦아야 할 일이다. 먹구름은 바람 따라 흘러가고, 빛은 어둠을 몰아내듯 삶의 무게에 눌려 신음하며 누워있는 이들을 위해 사랑과 봉사, 희생으로 다가서는 발걸음은 매사 그리움처럼 떨리는 감동이리라.

절로 나서 크는 풀 한 포기에 살아 숨 쉬는 생명력이 있듯 고단한 생의 한 토막과 마주 앉아 따뜻한 손길로 어루만져주는 삶. 비록 삶이 긴 눈물로 쓰인 편지 같을지라도 쓸쓸하지 않을 것이다. 우린 누구나 황량한 광야에 심어진 한 그루의 나무와 같다. 그 나무가 어느 날 숲그늘로 날아가 버린 한 마리의 새를 그리워하듯, 우리네 가슴도 무언가 늘 그리워하며 산다. 그게 사람의 마음이다. 비록 우리 생이 초라할지라도 가슴마다 연한 꽃잎 한 장씩 드리운다면, 그래서 이웃의 버거운 삶의 짐을 함께 들어준다면, 미풍에 실리는 산사의 풍경처럼 우리의 가슴에도 그런 종소리가 울리지 않을까.


구름은 엉켜도 미움의 흔적 남기지 않는다. 물은 굽이쳐도 청량한 소리 잃지 않고, 대나무는 서걱대도 서로의 상처 입히지 않는다. 꽃들로 만발한 들판에 어느 꽃 한 송이가 질투와 증오심으로 피어난 게 있던가. 서로 찢기고 상처 입은 꽃잎 하나 있던가. 갈잎 또한 저리도 가벼운 까닭은 그의 사랑하는 나무를 위해 모든 걸 내주었기 때문이다. 갈잎들이 서로 살갑게 비비는 것은 그의 사랑 행여 모남 있나 고르기 위함이다. 골마다 울리는 메아리는 갈잎의 그 숭고한 사랑 이야기를 이산 저산 들려주는 거 아닐까.


그렇다. 너무 진노해 마음속 무엇 하나 추스를 수 없다면 애당초 내 안의 불씨를 키우지 말아야 할 거다. 끝까지 마음속 비밀처럼 넣어두고 싶은 응어리는 끝내 품어내는 불화산과 같으니까. 진정 내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나의 마음은 평화를 찾고, 나의 생각은 명쾌해질 거다. 그러니 내면의 감정에 귀를 기울여 보아라. 나 자신에게는 물론, 상대방에게 그리고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내가 줄 수 있는 최상의 선물이리라.


먼저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라. 그러면 상대방은 자석에 끌리듯 자연스럽게 내게 끌릴 것이다. 우리에게는 언제든지 다시 마음을 열 수 있는 선택의 여지가 있는 까닭이다. 상대방을 받아들이고 존경할 때, 또 상대방을 그냥 있는 그대로 있도록 허용하면서 그의 길을 축복할 때, 우리는 자신의 마음이 활짝 열려있음을 알 수 있다. 만약 가슴 속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키우고 있다면 들에 핀 풀꽃 한 송이를 보라. 세상은 이름 없는 것을 결국 인정하지 않으나, 저들은 이름 모를 하찮은 풀꽃으로 누구 심음 없이 절로 나고 자라 꽃 피우며 향내 발하지 않던가.


저 크지 않은 몸매에 가장 낮은 겸손한 자세로 가냘픈 꽃대 달고 싱싱하게 꽃을 피우는 풀꽃들. 저들과 마주하면 미움과 증오는 조금씩 풀잎처럼 소리 없이 누울 거다. 정녕 우리도 저 들꽃처럼 피고 진다면, 이 드넓은 세상은 참으로 아름다운 꽃천지 아닐까. 마음은 마음을 부르고 따르는 법. 그 선하고 따뜻한 마음에 한가득 정을 품고 산다면,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사랑한다면, 우린 얼마나 행복할까.

마음에도 표정이 있다. 보이는 않는 그 마음은 소통의 언어보다 더 강력하고 품위 있으며 한 사람의 삶을 통째로 간직한다. 그 일생이 마음에서 시작되고 끝을 맺는 까닭이다. 이러니 이제 욕심 든 거라면 무엇 하나 손에 쥐려 애쓰지 말자. 구름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는 저 들녘의 이름 모를 들꽃 한 송이에도 손 내밀지 말고, 허황된 마음일랑 품지도 말자. 정말이지 허물 많고 후비진 노방에 서성이지 말며, 누군가의 사래 긴 밭에 눈도 흘기지 말자.

바람은 숲에서 일어 바다로 간다. 고 작은 꽃씨들이 바람에 날리는 것은 자신이 남아 있는 흔적을 옮기기 위함이다. 그 흔적을 옮기기 위해 이는 바람결에 고 작은 몸짓들을 얼마나 비벼대야 했을까. 우리도 저와 같이 누구를 위해 세상의 무엇이라도 되어보는 거다. [글=김회권]

이정민 기자
작성 2021.05.06 11:02 수정 2021.05.06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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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