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프로젝트] 그 많던 화살나무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류가빈

사진=코스미안뉴스


우리 동네로 처음 이사 왔을 때가 초등학교 1학년 때였나 봅니다. 빌딩 모양만 유럽 양식인 소박한 아파트이지만, 어릴 때는 눈이 휘둥그레져 동화 속의 궁전 속에 살게 될 거라 무척 기대를 많이 했습니다.


우리 아파트 단지는 넓지는 않지만, 무척 다양한 종류의 식물들이 군데군데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식물 앞에는 작은 팻말과 함께 간단한 설명이 적혀 있었고요.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나는 찰스 다윈에 빠져 박물학자가 되겠다는 부푼 꿈과 함께 자물쇠가 달린 작은 수첩과 연필을 들고 탐사를 나섰습니다. 그리고 단지 내 모든 식물을 관찰하고 기록해서 팻말에 적힌 그것들의 이름과 학명, 그리고 개화기를 모조리 외워버리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학명이랑 개화기는 금세 잊혔지만, 아직도 그 식물들의 이름과 모양은 눈에 익히 들어옵니다. 어느 아파트 단지나 숲길에서, 예전에 기록해 두었던 식물을 보면, 저거였지 하는 생각이 아직도 들거든요. 우리 동네에는 벚꽃이 아주 많아 봄만 되면 정말 예쁜 꽃들이 핍니다. 아주 예전에 일본 사람들이 벚나무를 왕창 심어서 그렇게 된 거라지만, 그래도 우리 동네만 한 동네가 없습니다. 봄만 되면 여기저기서 벚꽃 구경하러 우리 동네로 와, 우리 아파트 단지 안으로까지 들어와 마구 사진을 찍거든요.

저는 작고 소박한 벚나무의 벚꽃과 조금 더 크고 화려한 꽃을 피우는 왕벚나무를 어렵지 않게 구별할 수 있었습니다. 또 우리 단지에는 감나무가 있었는데, 그 감을 따다 먹으려 하면 경비 아저씨께서, 농약을 쳤으니 먹으면 안 된다고 말리셨습니다. 그리고 어딜 가도 즐비한 회양목, 진달래꽃, 소나무, 주목나무... 모두 학교 끝나고 돌아와서 단지를 한 바퀴 돌며 인사를 해 주었습니다. 그 외에도 이름만큼이나 생긴 게 신기하진 않은 수수꽃다리, 가을이면 열매가 열리는 꽃사과 나무가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팻말에는 이름도 학명도 없지만 도감을 펼치면 나오는, 아주 독특하게 생긴 은방울꽃 같은 야생화를 보기라도 하면, 설렌 나머지 그 꽃 앞에만 두 시간씩 앉아있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식물들 중 유독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바로 화살나무일 것입니다. 화살나무가 화살나무라 불리는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선인장은 아니지만, 긴 화살처럼 뾰족뾰족하고 딱딱한 줄기가 길쭉하게 뻗어있습니다. 소나무나 느티나무처럼 굵지는 않지만, 몇 겹의 화살촉답게 세모나고 네모난 것들이 줄기에 다닥다닥 붙어있습니다. 화살나무는 크지 않지만, 여러 개의 화살처럼 무리를 지어 덤불을 이룹니다.


그러다가도, 화살나무는 가을이 되면 참 예쁜, 작고 길쭉한 붉은빛 열매를 맺습니다. 어렸을 때 친구들이 놀러 오기라도 하면, 안전한지 아닌지를 떠나서 저는 친구들은 화살 덤불로 데리고 가 열매로 즙을 내었거든요. 친구들은 화살나무 열매로 손을 물들이고, 즙으로 물감도 만들었습니다.


화살나무는 모양만이 화살은 아닙니다. 실제로 그 화살에 맞으면 무척 아프거든요. 저는 한동안 화살나무를 몹시 싫어했습니다. 한때는 자전거를 타고 아파트를 돌다가, 화살나무 덤불에 온몸이 떨어진 적 있었습니다. 방향을 바꾸려 했지만 수십 개의 화살은 다가왔고, 온몸이 가시 같은 화살촉에 뒤덮였습니다. 몇 달 뒤 다시 용기를 갖고 자전거에 올랐지만, 그때는 화살나무 덤불 쪽으로는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한참 잘 타고 있었는데, 갑자기 또 다른 화살나무 덤불이 보입니다. 아파트 단지 반대편에 있는 또 다른 화살나무 덤불에 맞아, 저는 결국, 또다시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었습니다.


그 뒤로 다시는 자전거를 타지 않았습니다. 화살나무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화살나무는 참으로 아픈 나무입니다. 실제로 그 화살에 맞아본 사람은 저뿐일 거로 생각합니다. 화살나무만 보면 저에게 날아온 수많은 화살과 상처투성이가 된 팔, 아직도 아무도 태우지 못하고 방치된 엘리베이터 앞의 외로운 자전거가 생각납니다. 그리고 자전거에게 미안해질 뿐입니다. 그리고 다시 자전거를 잡을 수 없는 두 팔이 미워집니다. 그리고 많은 날이 흘러, 너무 나이가 들어버렸습니다. 식물과 인사를 주고받던 것도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렸습니다. 지금은 독이 있다는 예쁜 주목나무 열매, 가을에 달린 분홍빛 꽃사과, 먹을 수 없는 감나무의 감,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 시큰둥합니다. 바쁘다는 핑계, 꽃과 나무들에게 신경 쓸 여지는 전혀 없어졌습니다.


그런데 바로 어제의 일이었습니다. 큰 트럭이 우리 단지 내로 들어와, 내가 부딪혀 아파했던 바로 그 화살나무들을 통으로 가로로 베어, 모두 실어 나르는 것이었습니다. 나무들이 아픈지, 어디다 내다 파려 하는지, 아니면 이제 아예 새로운 나무를 심으려는 것인지. 화살나무들을 모두 베어, 멀리멀리 떠나보내려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무언가 안에서 꽉 막히는 느낌이 들어왔습니다. 안에서 차갑고 딱딱하게 굳어 있던 무언가가, 화살보다는 뭉툭하지만, 더더욱 아프게 저를 찌르기 시작했습니다. 화살나무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화살나무를 사랑해 주지 못해,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에게는 모두 화살나무가 있습니다. 다가올 아픔에 대한 두려움은 누구에게나 존재합니다. 두려움을 넘어서지 못한다면 화살나무라는 나무를 이해해보지도 못할 것입니다. 어쩌면 너무 늦었을 때, 누군가 우리의 화살나무를 베어버릴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하지만 나무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저는 아직도 자전거 손잡이를 잡아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내일은 다른 길을 여행해 보고 싶습니다. 화살나무가 없는 공원도 많지만, 그곳으로는 돌아가지 않을 것 같습니다.[글=류가빈]

 


이정민 기자
작성 2021.05.13 12:15 수정 2021.05.13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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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