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6월 22일 우리나라 최초의 현수교 ‘남해대교’가 남해노량과 하동노량을 연결하며 개통을 했다. ‘노량’은 이슬다리란 뜻을 담고 있는 마을이다.
‘어쩌면 두 개가 이슬다리가 생기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이슬다리란 뜻을 품고 있는 남해노량에는 이슬처럼 고결한 삶을 살다 가신 충무공 이순신의 시신이 잠깐 머문 ‘충렬사’ 사당이 있다.
충무공 이순신은 1598년 11월 19일 남해 관음포만에서 나라를 구하고 전사하셨다. 그리고 노량으로 모셔졌다가 다음 해 2월 11일 아산 금성산에 모셔질 때까지 총 84일이 소요되었기에 추정하기로 수의나 기타 예를 갖추기 위해 준비하는 동안 남해노량에 계셨을 것이라고 짐작해 본다.
그리고 우리 남해는 예부터 ‘화전’이란 별칭으로 불리고 있는데 그 화전(꽃밭)이란 이름이 생긴 유래라고 생각되는 ‘화전별곡’이란 유배시를 쓴 자암 김구의 유허지가 있다. 자암 김구는 기묘사화로 남해로 유배와 13년 살면서 남해가 꽃밭이라고 노래하시면서 시를 썼다.
하늘 끝 땅끝 한 점 신선의 섬
왼쪽은 망운산 오른쪽은 금산
봉내와 고내 흐르네
산천 수려하고 호걸 남아 많이 나서
인물 번성하니
아, 하늘 남쪽 아름다운 곳 그 경치가 어떠한가?
풍류 주색 즐기던 한때의 인물들이
풍류 주색 즐기던 한때의 인물들이
아, 나까지 몇 분이나 되었던가?
정말 신선 같은 시를 남겼다. 또 조선말 흥선대원군이 ‘서양오랑캐와 화친하는 사람은 매국노라 하겠다.’라며 세운 척화비가 남아 있다. 그런 역사적인 흔적이 남아 있는 의미 깊은 남해 노량에 ‘남해대교’가 이슬처럼 걸렸고 최초의 현수교를 보기 위해 남해를 찾는 관광객의 편의를 위해 1975년 ‘남해각’이란 휴식공간이 생겼다.
그러나 세월은 흘러 격세지감이 느껴질 만큼 남해각을 찾는 사람이 줄었고 그래서 그냥 비어 있던 남해각이 새롭게 리모델링을 하였다. 남해대교를 배경으로 한 추억 속의 사진들, 남해를 주제로 한 조각 작품들...
그리고 영상들이 관광객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눈앞에 시원하게 펼쳐지는 노량해협을 내려다보며 삶이 그대로 예술이었던 충무공 이순신도 떠올리고, 유배와 13년 고독과 친구했을 자암 김구의 삶도 더듬어 보면서 남해노량을 들러보면 역사의 스토리텔링을 만날 수 있다.
이제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은 ‘남해각’이 그대를 기다리고 있으니 더욱 즐거운 여행이 될 것이다. 첫사랑을 만나러 가는 소녀의 마음처럼 당장 남해로 일정을 잡았으면 좋겠다. 참 그리고 막연한 예감 ‘두 개의 이슬다리가 생기는 것은 아닐까?’ 했는데 정말 지금 남해각에서는 ‘남해대교’와 ‘노량대교’를 동시에 감상할 수 있다. 그래서 가끔 생각과 말이 얼마나 큰 힘이 있는 것인지 실감도 하면서 노량을 둘러본다.
[서재심]
시인
남해군문화관광해설사
코스미안뉴스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