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바뀐 몸과 머리

영원한 인간 수수께끼

토마스 만

5

 

, 이쯤해서 이 이야기 듣는 사람들에게 착각하지 말라고 주의를 환기시켜 경고해 둘 일이다.

 

잠시 동안 침묵이 흐르고

그 침묵이 고개를 돌려

되돌아보는 그 순간에는

그 얼굴이 무섭게 변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괴물 메두사가 되어있어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돌이 되게 하지 않으면

아주 완전히 미쳐버리게

모든 일을 차례로 꾸며

슈리다만과 난다와 시타

이 세 사람을 하나같이

그 제물로 희생시킨다고.

 

시타가 시집 와서 남편 슈리다만과 신혼생활을 한 지 6개월이 지났다. 무더운 한여름이 지나고 장마철이 되었다. 하늘은 구름장으로 땅은 꽃으로 뒤덮이고. 그러나 이 장마철도 곧 지나면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이 가을 연꽃이 피어난다. 시부모님의 허락을 받아 시타는 여행하기 시원한 계절을 맞아 친정나들이를 하게 된다.

 

단봉낙타와 봉우 등뿔소가 끄는 덮개차를 타고 세 사람은 길을 떠났다. 난다는 마부석에 앉아 신혼부부를 양쪽으로 커튼이 쳐진 뒷좌석에 태우고 차를 몰았다. 소와 낙타보고 소리 지르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다가 흥얼거리기도 하면서.

 

뒷좌석에 앉은 신혼부부 슈리다만과 시타는 아무 말 없이 앞에 앉아 부지런히 차를 모는 난다의 뒤통수와 목 그리고 어깨와 등골을 바라볼 뿐이었다. 건장한 남성의 육체미 넘치는 난다의 뒷모습을 그의 아내가 계속 바라보지 않도록 슈리다만이 난다와 자리를 바꿔볼까도 생각해보았으나 그래도 소용없겠다는 판단에서 그대로 계속 뒷좌석에 시타와 나란히 앉아 눈앞에 앉은 난다만 바라보노라니 결국 세 사람이 다 진땀을 뺄 일이었다. 세 사람 다 눈알은 충혈 된 채. 이것은 분명코 좋지 않은 조짐이었다. 그 어느 누가 투시력이 있다면 검은 날개처럼 이들을 덮고 있는 불길한 그림자를 볼 수 있었으리라.

 

이들은 일부러 어두운 밤을 이용해 차를 몰았다. 날이 새기 전에 그래서 한낮의 더운 햇빛을 피해가며. 그럴싸하다면 그렇겠지만 여기에는 또 다른 속뜻이 있었으니 그들의 혼란스러운 마음이 무의식적으로 어둠을 통해 길을 잃고 싶었으리라.

 

난다는 낙타와 소를 시타의 친정으로 가는 큰 길로 몰지 않고 달도 없는 밤에 별빛만을 따라 길을 잘못 들고 말았다. 그러다 보니 길을 아주 잃게 되었다. 깊은 숲속으로 오도 가도 못하게 된 것이다. 슈리다만과 시타는 난다 뒤에 앉아 뜬 눈으로 난다가 길 잘못 들도록 방관만 하고 있었다. 아니 그런 셈이 되었다. 하는 수 없어 이들은 맹수들을 쫓기 위해 불을 지피고 날이 새기를 기다렸다.

 

날이 밝자 이들은 이리 저리 길을 찾아 헤매다 정글을 벗어나 물이 마른 돌 골짜기로 덜컹거리며 차를 몰았다. 그러다 바위를 깎아 만든 한 사원에 다다랐다. 그것은 만물의 어머니 모성의 신 데이비의 신전이었다.

 

여기들 잠간만 있어. 내가 얼른 가서 기도하고 올께.”

 

이렇게 말하고 슈리다만이 신전으로 돌계단을 밟고 올라갔다. 신전의 입구는 가파른 산 밑에 나 있는데 으르렁거리는 표범형상의 돌기둥으로 받쳐져 있고 그 속 입구 양면에 갖가지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육체에 담긴 생명의 여러 모습과 상징들이었다. 살가죽과 뼈, 골수와 근육, 정액, 정충, 땀과 눈물과 기타 끈끈한 분비물, 똥과 오줌, 쓸개 즙, 정열과 분노, 욕정과 시기, 질투와 절망, 연인들의 이별과 무정한 인연, 굶주림과 갈증, 사람이 늙고 병들어 죽는 슬픔 등 영원토록 반복되는 삶의 달콤하고도 따뜻한 피의 흐름이 천만 가지 다른 형태로 모습을 바꿔가며 즐기고 괴로워하는 그런 그림들이었다.

 

이렇게 짐승과 사람과 신이 온통 한데 어우러진 미궁 속에서 코끼리의 코가 남자의 손발이 되기도 하고 돼지 대가리가 여자의 머리가 되기도 하는 그림들을 슈리다만은 눈여겨보지 않고 그냥 스쳐 지나치는데도 이들이 그에게 어떤 현기증과 연민의 정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만물의 여신상을 알현하기 위한 하나의 준비작업 예행연습이었는지 모를 일이다. 산꼭대기로부터 떨어져 내려오는 빛으로 황혼 빛이 깃든 동굴 속을 지나 신전 그러니까 만물의 어머니 자궁이라 할 수 있는 한가운데 이르러 슈리다만은 몸을 떨며 뒤로 비틀거렸다. 양쪽으로 두 팔을 뻗어 돌을 깎아 만들어 논 남근男根을 더듬으며.

 

칼리 여신상은 무서웠다. 충혈된 그의 눈에 그렇게 보였을까 아니면 그가 다른 데선 이와 같은 형상의 칼리상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을까. 해골들과 잘린 손과 발의 뼈들로 골격을 갖춘 여신상이 여러 가지 빛깔의 바위를 배경으로 있는 빛을 모두 받아 반사하고 있었다. 찬란하게 눈부신 보석의 관을 쓰고. 열여덟 개의 팔들은 돌아가는 바퀴형상이고 칼과 횃불을 휘두르고 있었다.

 

한 손으로 받쳐 입에 대고 있는 해골바가지에선 뜨거운 피가 김이 무럭무럭 나고 있는 듯 했고 발밑으로도 피가 흥건히 고여 피바다를 이루고 있는 것같이 보였다. 홍수가 난 삶의 바다 망망대해의 일엽편주 같은 배를 탄 듯 아니면 피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듯 슈리다만은 짙은 피비린 냄새를 맡고 있었다. 눈앞의 제단에는 너더댓 개의 짐승 들소, 돼지, 염소 대가리가 피라미드처럼 쌓여있는데 이 짐승들의 목을 벤 칼이 묻은 피가 말라붙은 그대로 한 쪽에 세워진 깃발들과 함께 놓여있었다. 슈리다만은 이 여신상의 얼굴을 보면서 온 몸이 얼어붙도록 공포감에 떨다 못해 열병이 나는 것 같았다.

 

바로 이것이었구나.

죽음과 함께 삶이란 것이.

모든 생물은 제물일 뿐이야.

 

그는 무섭게 뛰는 그의 가슴에 꼭 쥔 두 주먹을 갖다 대고 누른다. 그러자 엄청나게 이상야릇하고 괴기한 진동으로 차고 뜨거운 느낌이 온 몸으로 파도처럼 계속 밀려온다. 그의 머리 뒤통수로, 그의 뱃속으로, 그의 극도로 자극된 성기(자지)끝으로 단 하나의 강한 충동을 느낀다. 피가 다 마른 창백한 입술로 그는 기도한다.

 

만물이 창조되기 이전부터

시작이란 것도 끝도 없이

아무도 들추어볼 수 없는

신비로운 옷을 걸친 그대

공포-욕망 다 받아들이는

세상 만물의 영원한 자궁

그대가 낳는 세상이미지들

그대 자궁 속으로 돌아가리.

살아있는 산목숨 제물로

그대에게 바침이 당연하리.

나 자신을 그대에게 바치니

그대가 기쁘게 받아주시리.

그대 속으로 다시 들어가

나 자신으로부터 벗어나리.

그래서 모든 욕망이란 것

당황스러울 뿐인 슈리다만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리.

돌이켜 보건대 욕망이란

결코 슈리다만 그 자신이

만들어 가진 것 아니니까.

 

이렇게 기도한 후 그는 바닥에 놓여있던 칼을 집어 들어 스스로의 목을 잘라버린다.

 

이 얘기를 옮기는 사람의 입장에서 서둘러 급히 한마디 부언하건대 그리고 간절히 바라건대 사람들이 스스로의 목을 자르는 일이 있어 왔고, 또 기록에도 남아있다고 해서 이 사건을 무관심하게 아무 생각 없이 듣고 보아 넘길 일이 아니란 것이다. 마치 옛날 옛적부터 수많은 사람이 세상에 태어났다 죽었다고 해산의 진통을 겪는 어느 한 산모 앞에서 또는 그 어느 누구의 임종을 지켜보는 자리에서 이것이 대수롭지 않은, 흔해빠진, 아주 예사로운 일이라고 가볍게 여길 수 없듯이 말이다.

 

사람이 제 목을 스스로 자른다는 일을 실제로 실행에 옮기려면 굉장한 결의와 목적과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 브라만계급의 젊은이 슈리다만이 그처럼 착하고 사색적인 눈과 가냘픈 팔로 그런 일을 감행한다는 것은 결코 보통 일이 아니다. 정말로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이렇게 스스로의 목숨을 제물로 바친 것이다.

 

 

 

 

 

 

 


서문강 기자
작성 2018.11.06 12:54 수정 2018.11.06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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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