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신비주의 ‘수피즘’의 본산인 콘야를 출발하여 웅장하고 험난한 토로스산맥을 넘어 5시간 만에 지중해의 휴양도시 안탈랴에 도착한다. 무채색의 올리브 나무, 파란 물감을 잔뜩 풀어놓은 듯한 바다와 하늘의 절묘한 조화가 그림처럼 펼쳐지는 안탈랴로의 여행은 낯선 이방인의 가슴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하다.
창밖으로 온통 코발트 빛 물감을 풀어놓은 듯 푸른 바다가 넘실대고 문득 절벽이 나타나면 그사이에 숨어 있는 황금빛 모래사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냥 지나치기에는 너무 아름다운 풍경이어서 잠시 순백의 모래사장이 딸린 아담한 해변에 차를 세운다. 청량한 파도 소리가 귀를 파고들고, 나긋한 바람이 인사를 건네듯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훑고 지나간다.
안턀랴는 인류 역사에서 수많은 문명의 터전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상 천국을 찾고 있던 페르가몬의 아타로스 2세는 기원전 159년에 바다와 산맥 그리고 태양이 삼위일체를 이루는 이곳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넣은 도시 ‘아탈레이아’를 세운다. 이 도시는 기원전 133년 로마인의 손에 넘어가게 되고 이 시기에 하드리아누스 황제에 의해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된다.
안탈랴 항구에서 유람선에 오른다. 배가 지중해로 나가자 절벽 위에 세워진 도시의 아름다움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안탈랴는 친환경 해변에만 주어지는 블루 플래그(Blue Flag)가 200개가 넘는다 하니 가히 세계 최고 청정 휴양지로 손색이 없다. 구시가지에 우뚝 솟은 이블리 미나레가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북쪽으로 케메르까지 42km의 해안선이 끝없이 이어져 있고 시선이 끝나는 곳에 머리에 눈을 인 올림푸스산이 장엄한 모습을 드러낸다. 캐리비언 유람선은 한여름의 뜨거운 햇살을 헤치고 지중해로 나아간다.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뱃전에 서서 샴페인을 마신다. 긴 여정의 중간에 모처럼 쉼표를 찍는 시간이다. 유람선은 토로스산맥의 녹은 물이 절벽을 타고 40m 아래 바다로 떨어지는 듀덴폭포에서 긴 고동 소리를 울리며 부두로 돌아간다.
항구 뒤 절벽 위의 칼라알리올루 공원에서 복원된 로마시대 성벽 4.5km를 따라 걸으며 본격적인 안탈랴 여행을 시작한다. 꾸불꾸불한 해안선을 따라 길게 둘러싸고 있는 로마시대의 고대 성곽길에서 지중해 항구를 바라보는 풍광은 가히 백미다. 연중 300일 이상 밝은 태양이 내리쬐는 이 도시는 부드러운 백사장과 돌출된 암반지대, 따뜻한 해안과 높이 솟은 토로스산맥 등 극명하게 대조되는 풍경을 지녔으며, 도시와 근교에는 고대 헬레니즘과 비잔틴 유적, 로마 시대와 셀주크 왕조, 그리고 오스만제국의 유적 등 다양한 문화유산들이 가득하다.
바다가 보이는 구시가지 칼레이치의 오밀조밀한 골목에는 아기자기한 앤티크 숍과 기념품 가게가 빼곡하다. 지중해 특유의 붉은 지붕을 가진 오래되고 아름다운 집들이 지중해의 정서를 유감없이 드러낸다. 가로수인 대추야자나무가 곳곳에 있어 휴양지 분위기가 물씬 풍기고, 예쁜 꽃으로 치장한 목조가옥에서는 오스만의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칼레이치를 지나자 오스만 시대 주택 사이로 38m 나선형 첨탑 미나레가 나타난다. 13세기에 세워진 이슬람 사원은 사라지고 첨탑만 남아 있다. 뚜껑이 푸른색이어서 푸른 등대로도 불린다. 노천카페에 앉아 지중해에서 불어오는 해풍을 맞으며 터키식 아이스크림 돈두레를 즐긴다.
구시가지 입구에는 하드리아누스의 문이 있다. 기원전 130년 로마의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이곳을 방문한 기념으로 지은 2층짜리 대리석 성벽이다. 지금은 3개의 아치 성문만 남아 있는데 원래 아치 위에는 하드리아누스 황제 가족의 석상이 있었다고 한다. 하드리아누스의 아치를 통과하면 구시가지 칼레이치가 시작된다.
안탈랴 해변은 유럽 각지에서 온 벌거벗은 청춘들로 법석인다. 청춘들이 뿜어내는 열기와 40도가 넘는 폭염을 피하기 위해 안탈랴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올림푸스산을 오른다. ‘신들의 거처’ 올림푸스산은 해발이 2365m나 되지만 케이블카로 단숨에 올라갈 수 있다. 안탈랴는 염천이지만 이곳은 초가을 날씨다. 땅에서 새어 나오는 천연가스로 인해 수천 년간 불꽃이 계속 타오르는 신비한 현상도 볼 수 있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면 코발트빛 안탈랴의 지중해가 한눈에 들어오고, 고개를 뒤로 돌리면 타우르스산맥의 산군들이 끝없이 펼쳐진다.
안탈야에서 동쪽으로 44km 떨어진 곳에 아스펜도스가 있다. 현존하는 유적 중 가장 원형에 가깝게 남아 있는 로마시대의 아스펜도스의 원형극장은 현대적 음향시설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음향 효과가 완벽하여 눈길을 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재위 시절 세워진 하단 20줄, 상단 20줄의 2단 객석으로 1만 5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 원형극장은 무수한 전쟁과 재해 속에서 2,500년을 견디고 지금도 오페라 무대로 쓰이고 있다는 사실에 시대를 넘어선 감동으로 다가온다.
원형극장 뒤편에 있는 아스펜도스 수도교는 타우루스산에서 물을 운반해오기 위해 2세기에 건설된 로마 공학의 산물이었다. 길이가 1km에 달하는 늪지대를 가로지르기 위해 2, 3층의 아치를 일정한 기울기를 이용하여 만들었는데 수도교 꼭대기에는 파이프 역할을 하는 토관이 들어가 있다.
안탈랴에서 동쪽으로 75km 떨어진 시데는 기원전 7세기에 건설된 그리스의 식민도시로 터키 동부 지중해를 대표하는 고대도시다. 이 도시의 바닷가에는 지붕 없이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새하얀 5개의 기둥만 남은 아폴론 신전이 있는데 짙푸른 지중해의 바다색과 어울려 경탄을 자아낸다. 원래 코린트 양식의 기둥이 6열×11열로 세워진 두 개의 신전으로 세워졌고, 기둥마다 메두사의 머리가 조각되어 있었다. 로마 정치가 안토니우스가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와 이곳으로 밀월여행을 와서 석양에 물든 신전을 바라보며 사랑을 나누었다고 해서 더욱 유명해진 곳이기도 하다. 그 사랑에 지나치게 몰입하는 바람에 로마의 초대 황제 자리를 아우구스투스에게 빼앗긴 것은 아닐까.
페르가몬에 의해 세워졌고, 로마인의 손에 넘어가 해군기지로 사용되었으며, 비잔틴 지배하에 십자군의 통로가 되기도 했으며, 셀주크와 오스만의 지배에 이어 근래에는 이탈리아에게 점령당하는 등 수천 년 동안 역사의 굴곡을 수십 번 넘게 겪은 도시.
숱한 제국들이 이 도시를 거쳐 가는 동안 인종과 종교와 문명이 충돌하고 교차했다.
그런 역사의 부침을 말없이 지켜본 안탈랴의 지중해는 오늘도 평화롭기만하다.
여계봉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