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기자: 정명 [기자에게 문의하기] /
서울 종로의 피맛골(避馬골)이 완전히 사라지고 있다. 조선시대에 고관대작들이 말을 타고 다니는 대로를 피해 뒷골목으로 서민들이 다니던 골목길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가고 있다. 그나마 피맛골의 모습이 남아 있었던 곳은 광화문 교보문고 옆으로부터 종로3가 탑골공원을 지나 동대문에 이르는 좁은 골목길이었다.
단층 주택 사이로 두사람이 겨우 비켜 설 만한 좁은 골목길이 길게 이어진 곳에, 열차집을 비롯하여 정겨운 선술집들이 즐비했던 추억의 골목길이다. 고고학자들은 이곳을 대한민국의 폼페이라고 부른다. 마치 이탈리아의 폼페이가 화산폭발로 매몰되어 있다가 발굴로 그 원형이 드러났듯이, 피맛골도 조선의 역사가 고스란히 묻혀 있는 곳이라는 의미다.
이런 피맛골이 2011년에 서울 강북 최대 규모 오피스빌딩을짓는 청진동 12-16지구 재개발 사업지구로 지정되어, 해방 이후 서울의 근 현대 건축 유산을 고스란히 없애버렸다. 문화재 발굴은 흉내만 내고 역사의 보고는 돈 앞에 무릎을 뀷었다.
그런데 이런 문화적 만행을 저지른지 꼭 10년이 지난 지금, 그나마 일부 남아 있던 피맛골 구간인 청진동에서 종로3가 인사동 초입까지의 구간이 지금 철거 중이다. 역사적인 골목길이 다 부서지고 곳곳에 펜스를 치고 문화재 발굴은 시늉만 하고 있다. 수많은 스토리텔링 소재와 서민들의 애환의 역사가 묻혀 있는 대한민국의 폼페이가 돈에 의해 무분별하게 파헤쳐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