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프로젝트] 부부로 살기

문용대

사진=코스미안뉴스


19751, 우리는 처음 만난 그날 바로 인연을 맺고 딱 한 달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내 눈에) 아내는 지금도 미인이지만 45년 전 봤을 때 참 예뻤다. 그렇다고 미모에 반해서 결혼한 것만은 아니다. 우리의 만남은 예사롭지 않았다. 짝 맺어 준 분에 대한 신뢰가 없었더라면 쉽지 않은 일이다. 대부분 선보고 사귀고 할 때 돈, 학벌, 지위, 성격, 외모 등 이것저것 따져본다. 상대로부터 손해 보지 않고 덕 보고자 하는 생각이 은근히 마음 바탕에 깔려 있어서인지 모르겠다. 허나 우리는 애당초 그런 거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조선시대는 서로 얼굴도 안 보고 결혼해도 잘 살았다. 만나서 대화하고 스스로 결정했으니 우리는 얼마나 다행인가! 나는 경기도 구리에서 일하던 때다. 헤어진 다음 날 사무실에서 연락이 왔다. 현장 일을 멈추고 전화를 받으러 갔다. 내 사진을 들고 간 사람이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울먹인다. 갑작스러운 일인 데다가 상대가 전라도 사람이라는 데에 가족 중 편들어 주는 이가 단 한 사람도 없단다. 아내는 경북 영천에서 태어나 가족이 부산에 살고 나는 전남 여수가 고향이다. 휴가를 내 열차를 타고 부산 초량동으로 달려갔다. 긴장되기도 했지만 당당하게 대했다. 딸 굶기지는 않을 것처럼 보였는지 관문을 통과해 결혼식을 올리고 지금에까지 이르렀다.


우리는 태어난 환경부터가 딴판이다. 아내는 심심산골에서, 나는 바닷가 가까이에서 나고 자랐다. 서로 다른 점이 너무 많다. 차라리 같은 점을 찾기가 어렵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남모르게 무던히도 지지고 볶으며 살았다. 내 성격은 급하지만, 아내는 느긋하다. 어딜 갈라치면 나는 늘 속을 부글거리며 상을 찌푸리고 기다려야 한다. 바쁜 길 갈 때 성질 급한 나는 따라오건 말건 돌아보지도 않고 간다. 아내는 밥 먹을 때 밥알을 세며 먹는 것 같다. 반쯤 먹으면 나는 이미 다 먹어치운다. 늘 나보다 두 배나 더 많이 먹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바닷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나고 자랐지만 낚시질을 좋아하지 않는다. 낚싯대 붙들고 고기가 걸릴 때를 기다리는 게 싫다. 음식이 입에 안 맞는다. 경상도 사람이 만든 음식이 전라도에서 나고 자란 내 입에 맞을 리가 없다. 취미가 다르다. 나는 등산을 좋아하고 아내는 수영을 좋아한다. 잠드는 시간이 서로 다르다. 평생을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나와 달리 중국 무협지 의천도룡기, 측천무후 등 장편 시리즈와 TV 드라마에 빠져 늦게 잔다. 아내는 틈틈이 뜨개질한다.

잠자리 눈 같은 안경을 끼고 아이고 고개야, 아이고 허리야!’ 하며 한 올 한 올 뜨고 있는 걸 보기만 해도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힌다. 말려도 소용이 없다. 아내는 한때 벨리댄스를 했다. 구슬과 번쩍번쩍 휘황찬란한 것이 주렁주렁 달려 이상하게 생긴 옷을 입고 흔들어대면 나는 정신 사나워 책을 읽거나 다른 일을 할 수가 없다. 우리는 이렇게 서로 다르다. 아내가 나와 다를 뿐 틀리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 별것도 아닌 일로 다툴 때는 항상 내가 이긴다. 지나고 보면 분명 잘못한 건 되레 나다. 잘했어도 남자가 저 줘야 한다는데 말이다. 속으로만 생각할 뿐 잘못했다고는 절대 말하지 않는다.

이제부터는 팔푼이 소리를 들을 게 뻔하지만, 마누라 자랑 좀 해야겠다. 그러고 나면 식탁에 반찬 한 가지라도 더 오를지 모를 일이다. 생각해 보면 늘 아내가 옳았다. 불같은 내 성격이 그랬고, 밥을 게 눈 감추듯 빨리 먹어치우는 내 식습관이 그랬다. 아내가 뜨개질을 그리 잘하는지 몰랐다. 다문화센터에서 가르치는 걸 보고야 알았다. 뜨개질이 그렇게 좋은 건 줄 뒤늦게 알았다. 정신을 집중하다 보면 명상효과나 만성통증의 진통 효과가 있다고 한다. 손가락운동, 뇌 운동으로 기억력이 향상된다고도 한다. 아내는 지독한 데가 있다. 40년 가까이 수영을 한다. 아무리 추운 날씨에도 어김없이 다섯 시 반이면 일어나 수영장엘 간다. 수영대회에서 개인이나 단체 금상을 많이 타왔다. 한강을 건너는 대회에서도 상을 여러 번 탔다.

나는 수영을 제대로 배우지 않았지만 맥주병은 아니다. 수영장에 딱 한 번 가고 다시는 가지 않는다. 멋모르고 내 방법대로 개구리 짓을 하다가 수영선수들이 나만 지켜본 걸 알고 나서 창피해 안 간다. 아내는 경로우대카드를 받고서야 배운 게 있다. 자전거 타기다. 무릎, 다리, 팔꿈치가 늘 상처투성이더니 지금은 익숙해졌다. 틈만 나면 자전거를 타며 나를 앞세우려 한다. 수영과 자전거 타기를 해서인지 얼마 전 골밀도검사에서 20대와 같다고 하더라며 좋아한다. 이제 요리 솜씨 자랑이다. 추어탕, 호박죽, 팥죽, 해파리요리 등 아내가 만든 모든 음식이 내가 먹어보기로는 가장 맛있다. 그중에 추어탕은 어디서도 더 맛있는 것을 먹어 본 적이 없다. 아내가 나와 가족을 위해 그만큼 노력한 결과라고 본다. 자랑거리는 끝도 없지만 이제 팔푼이 짓 그만해야겠다.

부부는 다름으로 만나 같음으로 사는 거라 한다. 반쪽 두 개가 서로의 모자라는 반쪽을 채워 한 개가 되는 것이라고도 한다. 국어학자 이희승 선생은 부부가 되면 개성의 반은 죽이고 반은 살려라. 반을 죽인다는 건 희생이고, 반을 살린다는 건 사랑이다.’라고 했다. 부부는 닮는다고 한다. 닮는다 함은 각자 살아온 환경, 성격, 과거 습관이나 가치관 등 서로 다른 점을 인정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라 할 것이다.

닮으려 노력하는 것은 상대를 위한 최상의 이해와 배려이고 사랑이다. 아내가 늦으면 나는 기다린다. 걸을 때 같이 걸으니 뒤돌아볼 일이 없다. 드라마도 같이 보고 나서 같은 시간에 자고 깬다. 주말이면 함께 강변도로를 따라 꽃향기 맡으며 자전거를 달린다. 우리는 산에 올라 맑은 공기와 더불어 일상에 지친 몸 마음을 달랜다. 서로 같아지려고, 채우려고, 닮으려고 노력한다. 배우자는 죽을 때까지 내 곁에 있을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사람이다. [글=문용대]

    

이정민 기자
작성 2021.06.07 12:06 수정 2021.06.07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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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