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소월(1902~1934)은 설화 모티프 시를 여러 편 발표했다. 그 대표적인 시가 「진달래꽃」, 「접동새」, 「물 마름」, 「삼수갑산운」 등이다. 이 가운데 환생 화소(還生話素)에 주목해 보면, 「진달래꽃」과 「접동새」이다. 「진달래꽃」에서는 진달래꽃으로 환생하는 식물 환생 화소, 「접동새」에서는 접동새(두견새, 소쩍새)로 환생하는 동물 환생 화소가 내재해 있다. 다시 말하면, 죽은 자의 영혼이 「진달래꽃」에서는 진달래꽃에, 「접동새」에서는 접동새(두견새, 소쩍새)에 깃들어 있음을 읽을 수 있다. 이는 애니미즘(animism) 화소(話素)이기도 하다.
애니미즘(animism)은 원시 종교의 정령 신앙이다. 자연계의 모든 사물에는 영적이고 생명적인 것이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자연계의 여러 현상에 영적이고 생명적인 것이 깃들어 작용한다고 보는 세계관을 일컫는다. 이를 흔히 미신이라고 한다. 고등 종교 관점에서 보면, 터무니없고, 허무맹랑한 원시 신앙에 불과하다.
시에 설화를 차용하거나 변용할 때, 외적 소재(extrinsic matter)와 내적 소재(intrinsic matter)로 구분하여 적절성을 검토하여 채택한다. 외적 소재(extrinsic matter)란 독자에게 이미 잘 알려진 사실(역사, 신화, 널리 퍼진 이야기)에서 취재한 시인의 독창성이 거의 없는 소재를 일컫는다. 내적 소재(intrinsic matter)란 독자들이 전혀 모르는 새로운 사실, 즉 시인의 상상력에 의해서 창조한 소재를 일컫는다. 그렇다면 김소월은 이를 어떻게 채택했는지 살펴본다.
이 글에서 ‘시 「접동새」와 접동새 설화 읽기’로 읽어 보고자 한다.
김소월의 시집 『진달래꽃』(1925)에 수록한 애니미즘 화소 가운데 가장 인상 깊은 「접동새」를 읽어 보고자 한다. 동물 환생 화소가 내재해 있다. 더 자세하게 표현하자면, 새 환생 화소, 접동새 환생 화소이다. 시 「접동새」의 전문을 읽어 본다.
접동
접동
아우래비 접동
진두강(津頭江) 가람 가에 살던 누나는
진두강 앞마을에
와서 웁니다.
옛날, 우리나라
먼 뒤쪽의
진두강 가람 가에 살던 누나는
의붓어미 시샘에 죽었습니다.
누나라고 불러 보랴
오오, 불설워
시새움에 몸이 죽은 우리 누나는
죽어서 접동새가 되었습니다.
아홉이나 남아 되던 오랩 동생을
죽어서도 못 잊어 차마 못 잊어
야삼경(夜三更) 남 다 자는 밤이 깊으면
이 산 저 산 옮아가며 슬피 웁니다.
― 김소월, 「접동새」 전문
인용 시는 동물 환생 화소가 내재한 ‘접동새’ 설화를 변용한 시이다. 즉, 평안북도 박천의 ‘접동새’ 설화를 외적 소재로 차용하여 변용한 시이다. 비서술체(非敍述體, non-narrative), 즉 운문(verse) 표현 기법을 채택했다. 이는 자기 독백 형식의 묘사체 기법이다. 압축으로 인해 설화를 바로 이해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배경 설화를 시적 변용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바람직한 기법이다. 반면에 배경 설화를 변용한 서술체(敍述體, narrative), 즉 산문(prose) 표현을 채용했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시적 변용 측면에서는 바람직하지 않다.
만일 서정주의 시 「신부」처럼 서술체, 투박한 산문체로 표현했다면 주술적 이야기의 시적 의미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곧 객관성을 획득하지 못했을 것이다. 접동새 설화 자체가 애니미즘 요소와 주관적 무속 신앙적 요소가 짙게 흐르기 때문이다. 이는 불교의 윤회 바퀴와 관련한 환생 화소가 내재해 있기도 하다.
오세영 교수가 시 「접동새」의 배경 설화를 소개한 것을 살펴본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옛날 평북(平北) 박천의 진두강(津頭江) 가에 한 소녀가 부모와 아래로 아홉이나 되는 오랍동생을 데리고 함께 살았다. 그런데 어느날 그만 어머니가 죽게 되자 아버지는 의붓엄마를 얻었다. 계모는 성질이 흉포 잔인하여 전실 10남매를 매일 같이 구박하였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이를 못 본 체하였다. 계모의 학대는 날로 심하여 생모가 거처했던 방의 유물들을 모두 없이 하였을 뿐만 아니라, 전실 자식들에게 끼니조차 제대로 주지를 않았고 그들이 밖에 나가지 못 하도록 집에 가두어 두기까지 하였다.
세월이 지나 과년해지자 소녀는 박천 어느 부잣집 도령과 혼약하게 되었다. 그리고 약혼자의 집으로부터 많은 예물을 받았다. 이를 시기한 계모는 어느날 그 예물을 빼앗고 그녀를 친어머니의 장롱 속에 가두었다가 마침내 불에 태워 죽였다. 의지할 곳 없는 아홉 어린 동생들은 누나가 불에 타 죽은 재를 헤치며 슬피 울었다. 그때 재 속에서 한 마리의 접동새가 살아 날아갔다. 죽은 누나의 넋이 접동새로 환생하였던 것이다.
한편 뒤늦게 이 사실을 안 관가에서는 계모를 잡아, 그 딸이 죽은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처형하였다. 계모의 재 속에서는 까마귀가 나왔다. 접동새가 된 소녀는 죽어서도 계모가 무서워 대낮엔 나오지를 못하고 남들과 다 자는 야삼경이 되어야만 조심스럽게 날아와 오랍동생들이 자는 창가에서 목 놓아 울었다(오세영, 『한국 현대시 분석적 읽기』, 고려대학교 출판부, 2001, 36-37쪽.).
이와 같이 불교의 윤회 바퀴 측면에서 보면, 누이(소녀)의 죽은 원혼(冤魂)은 접동새로, 계모의 죽은 혼은 까마귀로 환생하였다는 설화이다. 애니미즘 측면에서 보면, 누이의 원혼(冤魂)은 슬피 우는 새의 상징인 접동새에 깃들고, 계모의 혼은 악의 상징인 까마귀에 깃들었다는 설화이다.
오세영 교수가 인용 시의 마지막 연을 해석한 부분을 그대로 읽어 본다.
접동새는 어린 아홉 동생을 차마 잊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을 버리고 홀로 자유를 찾아 날아갈 순 없었다. 그리하여 야삼경만 되면 동생들이 자는 창가에 앉아 슬피 울었던 것이다. 즉, 이 시에서 한의 갈등은 떠나고자 하는 행위와 떠날 수 없는(매이고자 하는) 행위, 즉 자유와 구속의 서로 상반하는 모순에 존재한다.
첫째는 죽음과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강한 생에의 집착이다. 설화는 주인공이 단순하게 죽는 것으로 결말 지우지 않았으며 그 죽음의 결과가 현재까지도 영향을 주는 것으로 묘사한다(단순히 죽음으로 끝났다면 하의 정서가 환기될 순 없을 것이다). 주인공은 죽어서도 접동새로 살아 있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 새는 자유롭게 훨훨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항상 지상에서 슬피 울고 있다. 둘째는 망각과 기억, 또는 체념과 미련 사이에 조재하는 딜레마이다. 주인공인 누나는 이제 이승의 인간이 아닌, 망자이므로 속세의 모든 것들로부터 초월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녀는 속세를 ‘죽어서도 못 잊어 차마 못 잊는’ 것이다.
이렇게 「접동새」는 접동새의 이미저리를 통해 한국인의 심층에 내재한 한을 표상하고 있다(위의 책, 48쪽.).
인용 시 「접동새」처럼 제주 신화에서 ‘새 환생 화소’가 나타나는 본풀이가 둘 있다. ‘지장본풀이’와 ‘세경본풀이’이다. 인물로 말하자면, ‘지장 아기씨’와 ‘서수왕 따님아기’이다. ‘지장본풀이’는 제주 큰굿의 ‘시왕맞이굿’ 신화의 일부이다. ‘시왕맞이굿’에서 ‘지장본풀이’, ‘차사본풀이’, ‘명감본풀이’를 가창한다. ‘지장본풀이’에서 새로 환생한 인물은 ‘지장 아기씨’이다. 먼저 이를 읽어 본다.
머리를 깎고 스님 행색을 하여 탁발을 다니면서 집집이 한 홉씩 쌀을 공양 받아다가 떡을 했다. 이렇게 탁발을 하여 쌀을 모은 것은 여러 사람의 공덕이 깃든 떡을 만들기 위해서이다. 지장 아기씨는 온갖 정성을 모아 죽은 원혼들을 위하여 전새남굿을 해 주었다.
이렇게 자신으로 인해 죽게 된 사람들의 원한을 풀어 준 지장 아기씨는 남은 생을 살다가 주어서 새로 환생했다. 그런데 이 새가 사람의 몸에 들면 나쁜 기운이 되어 온갖 질병을 일으켰다. 사악한 기운, 새[邪]가 된 것이다.
이 사악한 기운이 머리로 들면 두통새가 되고, 눈으로 들면 눈 흘기는 흘기새가 되고, 코로 나오면 거친 숨 쉬는 악심새가 되고, 입으로 가면 부부간 이간질하는 헤말림새가 되고, 가슴으로 가면 답답증 일으키는 열화새가 되고, 오금에 붙으면 조작거리는 오두방정새가 되었다. 사람들에게 질병이 생기는 것은 이 새가 온갖 질병을 가져다주면서 풍운조화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원래 지장 아기씨의 이름은 불교의 지장보살에서 따온 것이다. 불교의 지장보살은 모든 중생을 지옥의 고통에서 구제해 주기 위하여 부처가 되는 것을 미룬 보살이라고 한다. 그런데 같은 이름을 가진 지장 아기씨는 죽어서 사람들에게 온갖 질병을 일으키는 새로 환생하였다(강순희·여연, 『조근조근 제주 신화3』, 지노, 2018, 165-166쪽.).
‘세경본풀이’는 ‘제주도 큰굿’의 신화이다. ‘제주도 큰굿’은 ‘세경본풀이’ 제차와 농신(農神)을 위한 굿이다. 심방이 제상 앞에 앉아 장고를 치며 부르는 신화이다. ‘세경본풀이’에서 새로 환생한 인물은 ‘서수왕 따님아기’이다. 이를 읽어 본다.
서수왕 따님아기는 문왕성 문도령에게 시집가기로 결정이 되었는데 자청비 때문에 혼사가 틀어졌다. 자청비에게 문도령을 뺏긴 것이 너무나 억울하여 서수왕 따님아기는 문을 걸어 잠그고 석 달 열흘을 물 한 모금 먹지 않았다. 백일이 지나 방문을 열어 보니 서수왕 따님아기는 죽어 새로 환생해 있었다.
가슴속 원한이 뭉쳐서 새로 환생한 서수왕 따님아기는 지장아기씨처럼 사람들 몸에 들어 온갖 질병을 일으켰다. 도통새, 흘그새, 악숨새, 헤말림새가 나온다는 것은 지장본풀이와 같다(위의 책, 166-167쪽.).
이는 전형적인 ‘새 환생 화소’이다. 애니미즘 화소이다. 김소월의 「접동새」의 ‘새 환상 화소’와 상동성 측면에서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그뿐만 아니라, “새들은 영혼의 안내자이다. 스스로 새가 되었다는 것 혹은 새와 함께한다는 것은 살아 있으면서도 천상계와 저승으로 접신적인 여행을 할 능력을 얻”(미르치아 엘리아데, 『샤마니즘』, 까치, 2014 재판, 107쪽.)은 것이다. 올바른 시 읽기 측면에서 무속의 의미를 이해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신기용]
문학 박사.
도서출판 이바구, 계간 『문예창작』 발행인.
대구과학대학교 겸임조교수, 가야대학교 강사.
저서 : 평론집 9권, 이론서 2권, 연구서 2권, 시집 5권,
동시집 2권, 산문집 2권, 동화책 1권, 시조집 1권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