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프로젝트] 지금의 자유를 누리며

박대원



 

이반 데니소비치는 감옥과 수용소를 전전하면서 내일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내년에는 또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계획을 세운다든가, 가족의 생계를 걱정한다든가 하는 버릇이 완전히 없어지고 말았다. 그를 위해서 모든 문제를 간수들이 대신 해결해 주는 것이다. 그는 오히려 이런 것이 훨씬 마음 편했다.’ (솔제니친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이영의 옮김)

 

이 글은 러시아의 노벨문학상 작가인 솔제니친이 1945년부터 8년이라는 세월 동안 강제 노동수용소에서 수감생활을 하면서 경험한 사실을 바탕으로 기록한 소설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의 한 대목이다. 개인의 자유가 억압된 강제수용소에서 오히려 역설적으로 걱정이 없고 마음이 편하다고 하는 부분은 언뜻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좀 더 이 글의 의미를 음미해 보면 개인의 자유가 속박당하는 대신 의무, 책임과 같은 걱정 할 요소들도 훨씬 줄어들겠지만 반대로 개인이 자유를 누린다는 건 그에 따른 의무와 책임을 수반한다는 걸 작가가 말하려고 했던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의 경험으로 비추어 보면 솔제니친 작가가 의미하는 바가 이해된다. 나는 육군에 입대하여 만기 제대했다. 자유가 통제된 군 생활이 힘들고 답답했는데 제대가 몇 달 남지 않은 말년 병장이 되자 그동안 잊고 있던 걱정들, 예컨대 제대 후 취직문제, 자취방 구하는 문제 등이 하나, 둘씩 떠오르기 시작하면서 고민하고 걱정했었다. 수용소처럼 개인의 자유가 통제된 군대라는 조직에 있을 때는 비록 자유는 없지만 생계에 대한 걱정이 해결되었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마음 편하다고 생각할 때도 종종 있을 정도였다. 자신의 자유를 대가로 하루 세끼와 잠자리와 같은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에 만족하며 사는 사람도 있지만 자유를 위해서 그러한 거래를 과감히 뿌리치는 사람도 있다.

 

흔히 말하길 자유에는 고통이 따른다.’고 한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작가인 장 폴 샤르트르(Jean Paul Sartre,1905~1980)’인간은 자유롭도록 저주받았다.’고 까지 말했다. 자유롭기 위해서는 저주받을 정도의 책임과 고통이 따른다는 말일까? 예전에 10년을 다니던 직장에서는 해마다 새해가 되면 전 직원 단합 등산을 갔다. 아침 일찍 출발해서 등산을 하고 저녁 식사로 마무리하는 행사였다.

 

나는 평소에 등산을 좋아해서 적어도 한 달에 1~2번씩은 등산을 했었는데 회사에서 공식적으로 1년에 한 번 실시하는 전 직원 단합 등산은 가기 싫었었다. 한번은 회사에서 새해 전 직원 단합 등산 행사에 오른 산이 내가 예전에 몇 번 등산했던 산이었다. 나 스스로 계획을 잡고 산을 오를 때는 상쾌한 산 공기와 경치에 자유로움을 만끽했었는데 똑같은 산을 회사에서 계획하고 의무적으로 단체로 등산할 때는 발걸음이 무겁고 자유로운 마음이 들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자유(自由)’란 단어의 의미를 살펴보면 스스로 자()’자 와 따를 유()’자로 이루어져 있다. 자유란 타인이나 외부의 영향을 받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결정한 것을 따른다는 의미다. 아무것도 안 하고 소위 말하는 멍때리기역시 자유가 아니다. 빈둥빈둥 놀고먹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게으름이고 나태함이다. 또한 자신만 편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 역시 자유가 아니라 방종(放縱)이고 추태(醜態). 자유는 외부의 압력이나 통제 없이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위해서 책임과 고통이 따르더라도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의지와 행동을 통해 성취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유에 대한 열정이 전 세계 어느 민족보다도 강한 게 바로 우리 한민족일 것이다.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는 자유를 위한 투쟁의 역사였다. 1910년 일본 제국주의가 대한제국을 완전한 식미지로 만들기 위해 강제로 체결한 경술국치조약(庚戌國恥條約)한일병합조약( 韓日倂合條約)’을 체결했다. 나라의 주권을 강탈한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주권을 되찾고 자유를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체포되고 고문당하고 심지어 목숨까지 잃는 경우도 많았다. 국권을 침탈당한 후 조국 광복을 맞이하기까지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목숨을 내놓고 싸웠다.

 

2019815일 국가보훈처 발표에 따르면 독립운동 공적 포상자가 15,689명이다. 이처럼 많은 분께서 조국과 민족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 투쟁하고 헌신했던 것이다. 이러한 자유에 대한 의지와 정신은 이후 1960‘4.19혁명1980‘5.18 광주 민주화운동으로 이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과거에는 국가권력에 의해서 개인의 자유가 억압되고 통제됐다면 최근에는 거대 기업과 같은 자본세력, 언론, SNS 등에 의한 개인 자유의 침해가 더욱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IT 기술의 발달 등으로 특정 개인을 공개적으로 까발리는 이른바 신상털기나 연예인들에 대한 악플러(flamer)’들의 악플(hate comment)’로 인한 피해 연예인들이 목숨을 끊는 경우까지도 발생하고 있는 현실이다. 인터넷이나 SNS 등을 이용해서 개인의 자유를 침해, 억압하고 통제하는 이러한 사이버 폭력(Cyber bullying)’이 무서운 건 과거에는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실체가 분명한 세력이어서 개인이 이를 인지하고 연대하여 저항하고 투쟁할 수 있었지만, 사이버 폭력을 행사하는 실체는 그 실체를 파악하기도 힘들고 파악하고 대면한다 해도 피해에 대해 보상을 해줄 능력이 안 되는 존재인 경우도 많다.

 

앞으로의 시대는 더욱더 얼굴 없는 개인에 의한 개인의 자유 침해와 통제가 광범위하게 자행되는 시대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개인의 자유를 위해서 서로 공존해야 한다는 의식과 개인의 자유에 대한 존중 의식이 절실히 필요한 시대다. <예언자>로 유명한 칼릴 지브란(Kahlin Gibran,1883~1931)은 자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근심 걱정

슬픔과 괴로움 없을 때

자유로워지는 것 아니고

이 모든 고달픔 속에서도

우리 타오르는 가슴으로

향기로운 숨을 쉴 때가

순간순간 자유로움이리.

(예언자 , 이태상 옮김)

 

이 시의 한 구절처럼 순간순간의 자유로움을 느끼며 자유를 만끽하며 살자. [글=박대원]

이정민 기자
작성 2021.06.09 11:14 수정 2021.06.09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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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