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프로젝트] 그 많던 아이들은 어디로 갔나

박대원

사진=코스미안뉴스DB / 1960년대 만화방 풍경


우리에게 동방의 등불이란 시로 잘 알려진 동양인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이자 교육자이기도 했던 라빈드라나드 타고르(Tagore Reabindranath, 1861~1941)’어린이는 신이 인간에 대하여 절망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이 땅에 보낸 사신이다.’라고 했다. 이처럼 축복의 존재인 어린이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면 어떨까?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의 초등학교 시절인 1980년대에는 학교, 시장, 놀이터 등 우리 주위에 어린이들이 많았다. 농어촌 지역의 시골 학교 출신인 나의 기억에 아침 등교 시간이면 정문을 향해 줄지어 가던 많은 아이들, 점심시간이면 운동장에서 축구, 고무줄놀이, 구슬치기 등을 하는 학생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던 장면들이 추억으로 떠오른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약 30년이 지난 2020년 현재 학교 건물은 그대로 아니 그전보다 외관이 좀 더 깨끗하게 리모델링 되었지만, 전교생이 1,200여 명이었던 학생 수는 5명으로 줄었다. 지난 30년 동안 급격한 학생 수 감소로 인해 해당 초등학교를 폐교하려 했으나 총동창회의 지원 및 건의로 폐교는 면했다.

 

비단 학생 수의 감소는 이 학교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수많은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이를 증명하듯 2019년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98명으로 1970년 출생통계 작성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또한, 유엔인구기금(UNPFA)에서 발표한 ‘2020년 세계인구 현황 보고서(State of World Poulation)’에 따르면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1.1명으로 조사 대상 198개국 중 최하위인 198위였다. 이처럼 대한민국의 세계 최하위 출산율은 내가 졸업한 시골 초등학교 학생 수가 지난 30년 동안 전교생 1,200여 명에서 5명이 된 현실 보다 더 피부로 와 닿는다.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급증했고 출산을 하지 않으려는 여성도 급증하다 보니 출산율이 급감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지금보다 경제적으로 살기 힘든 1970~80년대는 출산율이 너무 높아 정부에서 통제해야 할 정도였는 데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당시 정부의 출산 억제 정책 슬로건 중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에서 시간이 좀 지나자 더 나아가 둘도 많다라는 슬로건이 있다. 지금보다 국민소득은 훨씬 낮았고 생활여건도 힘들었지만 너무 많이 아이들을 출산하여 정부에서 통제해야만 하는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출산 억제 정책의 한 단면이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9년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32047달러로 세계 30위로 발표됐다. 1970255달러, 19801660달러와 비교하면 각각 125, 19배 이상 증가했다. 반대로 출산율은 19704.5, 19802,0명에서 2019년에는 0.98명으로 각각 78%, 51% 감소했다. 1인당 국민총소득(GNI)1970255달러로 세계 119위 순위였던 절대빈곤의 나라에서 세계 30위 순위로 급성장했지만, 결혼을 못 하거나 안 하는 독신 남녀와 결혼했으나 자녀를 출산하지 않거나 1명만 낳고 더이상 출산하지 않는 부부의 경우도 경제적인 이유가 가장 큰 원인이다.

 

독신 남녀의 경우 취직이나 내 집 마련 등의 문제로 결혼을 못 하고 있거나 안 하는 경우가 많다. 미혼인 남성들이 결혼을 못 하고 있는 가장 큰 요인은 경제적인 능력, 좀 더 구체적으로 신혼집 마련, 안정적인 직장과 같은 부분이 준비가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현재의 미혼 남성뿐만 아니라 1960년대 한국의 미혼 남성에게도 해당하는 부분이었다.

 

소설가 손창섭 작가가 1969년 발표한 소설<>에는 주인공 성칠이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6살 나이로 서울로 상경하여 여관 직원, 구두닦이, 과일 행상 등 갖은 고생을 하면서 자신의 첫사랑인 같은 초등학교 동창 봉순과 결혼할 결심을 하고 부단히 노력하며 살아간다. “군대에 들어가기 전에, , 스무 살만 되면 성칠은 정식으로 봉순을 아내로 맞아들일 각오인 것이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그만한 준비가 선행되어야 한다. 준비란 처자를 거느릴 기반을 닦아 놓는 일이다. XX만 달고 있다고 남자요, 남편이 될 수는 없다. 아내와 자식을 먹여 살릴 능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 능력이 없는 자는 결혼할 자격도 없는 것이다.”라는 장면을 보면 그 당시도 결혼할 남자에게 가장 필요한 건 경제적인 능력이라는 것이 사회 일반의 통념임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소설<>의 주인공 성칠은 아직 스무 살도 안 된 젊은이지만 벌써부터 결혼할 여자와 처자식을 먹여 살릴 각오를 단단히 하고 준비해 나가는 것이다.

 

어쩌면 현재 대한민국이 세계 최하우의 출산율 국가가 된 원인이 사랑하는 처자식을 먹여 살리겠다는 각오가 과거보다 약해졌기 때문은 아닌지 자문해 본다. 몇 년 전부터 우리 사회 구성원을 계층적으로 구분 짓는 신조어인 수저론이 등장했다. 바로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로 대변되는 계층의 구분이다. 대한민국의 GDP, GNI와 같은 경제 규모 및 소득수준을 나타내는 숫자의 증가만큼 빈부격차도 커졌다. 이에 따라 상대적 박탈감이란 것이 사회 전반에 커졌고 젊은 세대들 사이에선 헬조선에서 나아가 탈조선이라는 신조어가 일상화되었다. 한반도 대한민국을 지옥과 같은 곳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지옥 같은 이곳에서 탈출하는 것이 살길이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신조어들이다. 하지만 정말로 지금의 대한민국이 헬조선이고 탈조선 해야만 하는 곳일까?

 

얼마 전 봤던 한국영화 중 남자 주인공이 가족과 함께 살던 집이 다른 사람의 방화로 불타는 장면이 나온다. 화염을 뚫고 가족과 함께 집을 탈출한 남자 주인공이 불타고 있는 집을 망연자실 바라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주인공의 어머니가 했던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울지마! 다 큰 어른이 울긴 왜 울어, 너는 아직 젊으니까 다시 시작하면 돼! 6.25전쟁 끝나고는 나라 전체가 불타고 없었어, 네 아버지하고 나도 아무것도 없는 맨손으로 시작해서(불타고 있는 집을 바라보며) 저 집도 짓고 너도 낳아 키우고 그랬어, 그때는 다들 그랬어. 그러니까 아범아! 울지 마라, 다시 시작하면 돼!”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에서 먹고 살기도 힘든 상황이었지만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하는 희망, 의지가 축적되어 1970년대 대한민국이 지금보다 4배 이상 높은 출산율 수치가 나타내듯이 학교와 거리, 동네 골목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넘쳐날 수 있었던 건 아닐까!

 

나는 마치 상처 난 몸에 붙일 약초를 찾는 짐승처럼 조급하고도 간절하게 산속을 찾아 헤맸지만, 싱아는 한 포기도 없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나는 하늘이 노래질 때까지 헛구역질하느라 그곳과 우리 고향 뒷동산을 헷갈리고 있었다.”라는 소설가 박완서 작가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의 한 대목처럼 그 많던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글=박대원] 

 

이정민 기자
작성 2021.06.11 11:22 수정 2021.06.11 11:27
Copyrights ⓒ 코스미안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이정민기자 뉴스보기
댓글 0개 (/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