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보훈의 달 6월이다. 필자는 나라에서 부여받은 고유번호 하나를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 나라를 위한 자존감·자긍심·명예·헌신의 징표다. 아라비아 숫자, 군번이다. 이 군번이 새겨진 은빛목걸이(군번줄)를 모가지에 걸고서 37년을 복무했다. 워카(전투화) 37년이다. 훈장을 받은 증거 국가유공자 번호도 있고, 여러 가지 면허 번호도 있지만, 여기에 비할 바가 아니다. 군번이 없는(부여받지 못한) 사람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이름과 자유민주주의 이념의 가치를 말할 때 뒷줄에 서야한다는 것이 절대 절명의 소신이기도 하다.
1978년 최백호가 절창을 한 <입영전야>(入營前夜, 군대에 들어가기 전날 밤) 노래를 가슴속에 피멍이 들만큼 절규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전우(戰友, 전쟁터에서 목숨을 담보로 한 벗)라는 말이 품고 있는 정(情)과 한(恨)의 깊이와 무게를 알지 못한다. 2021년 국방조직과 구성원들이 물리적·감성적 불화살을 맞고 피멍이 들고 있다. 불건전한 병영문화(兵營文化)라는 협의적 범주의 실상과 공감대의 타킷이 되고 있다. 잘잘못 무게의 경중도 분명하다.
그래서 <입영전야> 노래를 해설 곡목으로 정했다. 국방문화인가, 병영문화인가. 당연히 합리적 진화의 화두를 광의적인 국방문화로 해야 함을 제언하며, 내 나라 위해 국방조직에 몸을 담은, 뜨거운 피를 품은 국방가족들의 가슴에 찬사와 위무의 불덩어리 같은 존경심을 표한다.
아쉬운 밤 흐뭇한 밤 뽀얀 담배 연기/ 둥근 너의 얼굴 보이고/ 넘치는 술잔엔 너의 웃음이/ 정든 우리 헤어져도/ 다시 만날 그날 까지/ 자아 우리의 젊음을 위하여/ 잔을 들어라// 지난날들 돌아보면 숱한 우리 얘기/ 넓은 너의 가슴 열리고/ 마주 쥔 두 손에 사나이 정이/ 내 나라 위해 떠나는 몸/ 뜨거운 피는 가슴에/ 자아 우리의 젊음을 위하여/ 잔을 들어라// 자아 우리의 젊음을 위하여/ 잔을 들어라.(가사 전문)
이 노래는 전쟁세대와 전후세대의 교차점에서 부른 노래다. 행진곡리듬과 행진드럼소리, 트럼팻소리가 어우러진 전주에 이어 최백호의 허스키 탁성 음이 군대 입대를 앞두고, 아쉬운 이별의 술잔을 든 젊은이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사랑하는 나라 대한민국과 자유민주주의 가치 수호자로서의 다짐과 새로운 환경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호기심을 부풀리는 것이다.
1970년대를 기준으로 40대는 전쟁세대, 20대는 전후세대라 할 수 있다. 당연히 일본제국주의 강제점령기와 6.25전쟁세대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양문물세대의 교차 시기라고 해도 된다. 그 시절이나 오늘날도 수많은 젊은이들은, 군 입대를 가족과 친구와 헤어져 험한 고생을 하는 창살 없는 감옥처럼 생각한다.
1975년 하길종 감독의 영화 <바보들의 행진>의 마지막 장면(병태가 머리를 깎고 군대에 입대하는)은 그런 의미를 함의한다. 하지만 당시의 영화나 노래는 당국의 검열로 인하여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이 노래는 그런 의미에서 기성세대들에게 반기를 들었던 젊은이들에게 내면적 착잡함을 대변하고, 현실상황을 표변하는 계기를 준 곡으로, 군 입대를 앞 둔 젊은이들은 입대 한 달 전(입대 영장을 받은 날)부터 이 노래를 울먹이듯이 흥얼거렸다.
이 노래는 최백호가 자신의 입영 전날 기분을 떠올리며 만든 곡이다. 부산 가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의 동래시장·온천장 등지의 음악다방 DJ로 전전하던 그는 현역으로 입대를 하지만 1년여 만에 의병전역(依病轉役, 질병으로 인한 조기 제대)을 했다. 1971년의 일이다. 이후 1976년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로 데뷔하여 대중들의 인기를 받던 중 1977년 11월 첫 독집을 발표했다. 이 음반의 B면 첫 번째 곡이 <입영전야>다.
이 노래는 1978년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젊은이들이 모이는 선술집에서 줄기차게 불린 곡이다. ‘자 우리의 젊음을 위하여 잔을 들어라~’를 외치며 술잔을 치켜드는 것이 비장한 감흥의 하이라이트였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연인과 헤어짐의 아쉬움을 나누고, 군 복무를 무사히 마치고 환희의 재회를 다짐한 곡. 이 비장한 순간에 나라를 지키는 일에 동참하는 젊은이들의 명예·자긍심·다짐이 한없이 부추겨져야 하는데...
최백호는 1950년 부산에서 출생한 낭만가객이다. 청사포·해운대·동백섬 등을 모티브로 하는 부산 노래도 많이 지어서 부른다. 그는 흔히 가을 남자, 고독과 낭만의 가수로 불린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다. 6.25전쟁 중 북진 공격 시기에 UN군으로 참전한 터키군 트럭과 충돌한 사고사였다.(1950.11.10일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가던 중에 김천 황간 부근에서 북상하는 터키군 수송 차량과 충돌) 아버지 최원봉(1922~1950)은 자유당 시절, 29세의 최연소 무소속 국회의원이었다. 어머니는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다. 때문에 어머니를 따라 그 역시 어릴 적부터 떠돌이 생활을 해야 했다.
그는 어릴 적부터 노래보다는 그림을 더 좋아했다. 그래서 고희를 넘긴 지금도 그림을 전업 화가처럼 그려낸다. 고등학교 때까지 그는 미대 지망생이었다. 그런 그의 꿈이 틀어지게 된 건 어머니의 죽음이었다. 그가 노래를 부른 건 오로지 생계를 위해서였다. 딱히 노래를 배우진 않았어도 평소 통기타를 치며 흥얼거리던 그의 노래 실력은 누구나 인정하는 바였다. 그는 통기타 라이브 술집을 하는 친구네 집에서 노래를 했다.
그렇게 음악 살롱을 전전하다가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의 주인공 하수영(동향 선배, 1948~1982)을 만나게 됐고, 그의 주선으로 서울에 올라와 본격적으로 노래를 하게 된다. 그는 당시 대마초 사건(1975년)으로 가요계가 치명타를 입은 채 휘청거리던 1976년 가을 데뷔곡이자 히트곡인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로 가요계의 샛별로 떠올랐다.
이 노래는 암 투병을 하는 어머니에게 바친 노래다. 이후 <입영전야>, <영일만 친구> 등을 연속 히트 치며 인기가수의 대열에 올랐다. 그즈음 국민배우 김자옥(1951~2014)과 결혼했다. 1980년의 추억이다. 그러나 그 결혼은 오래가지 못하고, 1983년 이혼 후 각자의 길을 걷는다. 그러다 1984년 지금 아내, 손소인을 만나 방황의 끝을 맺는다. 손 씨를 만난 건 친구 집에서였다. 친구 부인의 친구인 손 씨는 최백호보다 10년이나 아래다. 이후 1989년 미국으로 이민을 가 LA에서 한인방송국 DJ를 하였으나, 1995년 귀국하면서 <낭만에 대하여>를 불러 재기를 한 후, 어린 시절 못다 한 그림을 그리며 살고 있다.
<입영전야> 이 노래는 1971년 조영남의 <이 일병과 이쁜이>와 대칭을 이루는 병영을 모티브로 한 노래다. 우리 대중음악계는 1960년대~70년대 까지 군대를 소재로 하 노래가 인기를 누렸다. 여기에는 당국의 부추김도 있었으나, 6.25한국 전쟁과 같은 시대적 상황과도 연계된다. <육군 김일병>,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늙은 군인의 노래> 등이다. <입영전야>는 1970년대 검열을 아슬아슬하게 통과한 노래다. ‘흐뭇한 밤, 내 나라 위해 떠나는 몸, 뜨거운 피’등의 가사와 ‘아쉬운 밤, 뽀얀 담배연기, 넘치는 술잔, 자 우리의 젊음을 위하여 잔을 들어라’라는 어휘들과 대칭을 이루며, 비장함과 술자리의 자유분방을 조화시켰다.
호국(護國)은 나라를 지키고 보호함이다. 보훈(報勳)은 나라를 지키는 일을 한 사람들의 공훈에 보답하는 것이다. 여기서 나라는 대한민국과 자유민주주의 이념이다. 이를 지키는 첫째가 국방조직과 조직원들이다. 이들이 건전하고 합목적적인 철학과 가치를 품고 본연의 직무에 정려(精勵)하게 하기 위해서는 국민적인 공감대를 선결요건으로 하는 선진 국방문화(國防文化)의 정착과 진화가 절실하다.
선진 국방문화는 법·제도·시스템·감성적 공감대를 포괄한다. 이러한 함의는 어디까지일까. 대한민국과 국민들이여 응답해보시라. 하지만 작금의 현실은 병영문화(兵營文化)로 범주를 축소하여 존중과 존경의 대상이 되어야할 국방조직을 향하여 여론과 책임추궁과 대안수립과 시행을 일방적으로 촉구한다. 국방문화로 치면 나라(국군통수권자)와 국민 모두가 그 책무를 절감하고 동참해야 한다.
‘이래라 저래라’하며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듯 하면 어쩌란 말인가. 병영문화라고 단정하면 국방조직과 구성원 이외의 다른 이들은 강 건너 불을 보듯 하며 눈총과 말(言) 총질을 하게 된다. 군복무가 자랑스럽고, 제복(군인·경찰·소방관 등)이 자랑스럽고, 이 의무를 이행한 사람들이 존중받는 국방 선진국을 지향하는 대한민국(국민)의 책무는 무엇일까. 여기에 응답해야할 책무에서 예외일 사람들은 누구일까. 호국보훈의 달 6월, 최백호가 절창한 유행가, <입영전야>에 단호한 질문을 매달아 본다.
[유차영]
시인
수필가
문화예술교육사
한국유행가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