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고시원 화재 참사를 애도하며


고시원이 무엇인가? 가난한 학생들이 고시라는 사다리를 타고 신분을 바꾸어 보겠다고 와신상담하던 공간이다. 사법고시나 행정고시에 합격하면 뚜쟁이들이 재벌 2세들과 중매를 서면서 열쇠를 3개씩 주던 시절의 이야기다.

죽기를 각오하고 법률서적과 경제원론을 비롯한 시험과목들을 달달 외워야 고시에 합격할 수 있었던 시절에 고시원이란 것이 생겨났다. 서울의 신림동이 고시촌의 원조였다. 고시생들은 하루에 15시간 이상 혹독한 공부를 하고 끼니는 라면으로 때우는 경우가 허다했다.

영등포 쪽방촌이 노약자들의 빈민굴이었고, 청량리역 앞의 사창가는 가난하고 힘없는 창녀들의 홍등가였다면, 신림동 고시촌은 신분세탁을 위해 이를 악물고 공부를 하던 고시낭인들의 공간이었다. 모두가 살기 위해서 발버둥쳤던 공통점이 있는 장소다.

언제부터인가 고시원은 고시생들을 위한 숙소가 아니고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의 침실로 전락했다. 두 평도 안되는 공간에 겨우 몸을 누이고 잠을 자는 가장 열악한 주거공간이 지금의 고시촌이다. 그러다 보니 행정당국의 손길도 잘 미치지 않고 화재예방이나 진화를 위한 기본적 시설도 없는 곳이 많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노동자들이나 무연고 독거노인이 고시원의 주요 입주자들이다.

지난 9일 종로구 관수동 국일고시원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7명의 사망자를 내는 후진국형 대형사고가 났다. 대부분 노약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사회안전망 구축이라는 공허한 말만 하지 말고, 관계 당국은  속히 우리 사회의 안전 사각지대를 진단하고 찾아내어 근본적인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어디 고시원만의 문제이겠는가. 쪽방촌이나 대규모 지하상가 등도 이번 기회에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봉수 논설주간


 












이봉수 기자
작성 2018.11.10 13:56 수정 2018.11.10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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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