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프로젝트] 읽기에 대한 소고

박보현

사진=코스미안뉴스


소고’. 체계를 세우지 아니한 단편적 고찰을 의미한다. ‘단상과 비슷한 용법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좀 더 가볍게 이야기한다면 짧은 생각을 있어 보이게 하고, 지적으로 쓰고 싶을 때 사용한다. 혹자는 글을 쓸 때 굳이 어려운 한자어나 높은 수준의 어휘를 구사할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오히려 글의 이해를 떨어뜨리고, 허영심과 자만심 가득한 글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알지만 사용하지 않는 것과, 단어의 뜻을 전혀 알지 못하는 것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차이는 단순히 습득하고 있는 어휘의 양을 넘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감정과 의견의 다채로운 결을 면밀하고 세밀하게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의 폭을 뜻한다. 그리고 이 능력을 기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읽기이다. , 칼럼, 신문 기사 등 정보의 바다가 깊어질수록 접할 수 있는 글도 다양해진다. 하지만 단편적이고, 짧은 글만을 읽으려 하는 경향이 짙어지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최근 실시간 검색어에 사흘이 올랐다. 정부가 817일을 임시 공휴일로 지정한 사실이 ‘15~17일 사흘간 연휴라는 제목의 기사로 보도되자 사흘이 며칠인지를 많은 사람이 검색한 것이다. 혼돈이 생길 수 있는 단어이기는 하지만, 이토록 많은 사람이 무지했다는 점에 조금 놀랐다.


이동진 평론가의 영화 기생충평론을 두고도 많은 논란이 일었다. 상승과 하강으로 명징하게 직조해낸 신랄하면서 처연한 계급 우화”. 평론에 굳이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어려운 단어를 사용하여 대중들이 이해할 수 없다는 논지였다. 본인도 이 평론을 읽고 명징하다의 의미를 찾아보았기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조금 더 생각해 보니 아주 미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일상에서 자주 쓰이는 단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하여 문맥을 통해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는 단어들의 나열도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계속 읽는 존재였던 우리가 점점 낮은 문해력을 가지고 있으며, 새롭고 어려운 문장을 독해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그렇다면 왜 글을 읽어야 할까. ‘바쁘다 바빠현대사회에서 굳이 나의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어려운 단어를 찾아가면서 다양한 어휘를 접하고 이해하고 사용해야 할까.

 

김영하 작가는 책을 왜 읽는가에 대한 질문에 남이 침범할 수 없는 내면을 갖기 위해서라고 답한다. 실패로 점철될 수밖에 없는 삶임에도 살아가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단단한 내면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작가 랑또는 가담항설이라는 웹툰에서 같은 단어를 알고 있다면 감정의 의미를 공유할 수 있고 같은 문장을 이해할 수 있다면 감정의 흐름을 공유할 수 있어요. 그리고 그건 서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만들죠.”라는 대사로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덧붙이자면 영화 디태치먼트에서는 우리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우리의 사고방식을 무뎌지게 만드는 것에 대항하여 싸우기 위해, 우리는 읽는 법을 터득해야 해. 바로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해서 우리 자신의 의식과 우리 자신의 신념체계를 함양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런 기술이 필요해. 보호하고, 보존하기 위해서, 우리의 정신을 말이야.”라는 대사가 등장한다. 늘 가슴에 새기며 글과 멀어질 때쯤이면 스스로를 다잡는다.

 

필자는 글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나의 세상이 좁아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어찌 생각하면 지극히 당연하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생각을 언어를 이용하여 표현하고 그 언어를 이해하면서 의사소통하고, 그 의사소통을 바탕으로 사회적 존재로서 수많은 관계를 맺기 때문이다. 나의 세계를 표현할 수 있는 언어의 폭이 좁다면, 다채롭지 않다면 나의 세계는 당연히 좁아진다. 경험으로 체득한 사실이다.

 

대입을 위해 노력하던 고등학교 시절 접하던 글은 문학 교과서의 글과 모의고사의 비문학, 문학 지문이 전부였다. 독서기록을 채워 넣기 위해 몇 권의 책을 읽었지만, 정보를 습득하고 심화 지식을 학습하기 위한 목적이 우선이었다. 잠을 줄이고 시간을 쪼개가며 책을 읽는 행위는 사치였다. 수능 언어 영역에서 1등급을 받고, 내신 문학과 국어 과목에서만큼은 상위권을 유지하는 학생이었지만, 친구와의 일상적인 대화에서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표현하지 못해 고민하고 찾아보는 사람이었다. 서로 이 단어가 뭐였지?’를 남발하기 일쑤였다. 누군가는 이 이야기를 듣고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며 반박할 수도 있지만, 이전까지 나름 책 읽기를 즐겨하는 본인에게는 꽤 충격적인 시간이었다.

 

그 시간을 보내온 이후, 단편적인 조각의 글이라도 무턱대고 읽기 시작하였다. 어려운 서술어와 전문 용어가 난무하는 논문도 몇 편 찾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주 짧은 글을 쓸 때에 일부러 낯선 단어를 선택하기도 했다. 읽는 것과 직접 문맥에 맞게 쓰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굳이' 이러한 행위를 반복하면서 잘 정제되고, 글쓴이가 오랜 시간 고민한 글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지 절감했다. 하나하나 선별되어 각자의 자리에 적절히 배치되고, 그리하여 완결된 문장과 문단으로 구성된 글은 세계의 폭을 넓혔다. 처음으로 읽은 신문의 칼럼 혹은 사설 부분은 지식과 어휘 두 세계를 동시에 자극하였다.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다양한 사람에게서 들을 수 있는 이야기들. 때로는 소소하고, 때로는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그 이야기들은 내가 접할 수 없는 시공간으로 데려가 시각을 넓혔다.

 

너무도 많은 정보가 범람하는 인포데믹의 시대이다. 그 어떤 전염병보다 빠르고 확실하게 정보는 우리를 침범하고 세뇌시킬 수 있는 힘이 넘쳐난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우리는 모두 읽음으로써 그 정보들을 선별하고 취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점이다. [글=박보현]


이정민 기자
작성 2021.06.18 00:57 수정 2021.06.18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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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