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프로젝트] 철학하기

박보현

사진=코스미안뉴스


철학. 모든 학문의 시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세상 만물에 질문을 던지는 근원적인 학문이지만 그렇기에 철학은 아득히 멀기만 하다. 무언가 추상적이고 굳이 정의해야 하나 싶은 것까지 정의하고 비슷한 듯 다른 주장을 하는 철학자의 논쟁을 읽고 있으면 머리가 지끈하다. 그리하여 본인도 철학을 피해왔다. 자연계에 진학했기 때문에 윤리와 사상’, ‘생활과 윤리등의 과목 대신 경제를 선택하여 교과목으로도 배우지 않았다. ‘철학으로 분류되어 있는 서가에 들리지 않았지만, 분야를 막론하고 대부분 책에 철학자의 이름과 용어, 이론이 등장했다. 그때마다 인터넷의 힘을 빌려 해결하곤 했고, 방대하고 어려워 훑지도 못하리라 스스로를 합리화하기 일쑤였다.


그러던 나에게 대학진학과 교양 수업은, 비록 완전히 자발적이라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철학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교양 수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학교였고, 대학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였기에 필수 교양을 들뜬 마음으로 수강하기 시작했다. 교재는 학교 자체에서 편찬한 두꺼운 고전 모음집이었다. 한 번쯤은 읽어야지 하고 읽지 않은, 조각조각 단편적으로 어디서 읽은 경험으로 지식을 연명해온 책들 말이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향연’, ‘돈의 철학. 대한민국에서 20년을 살았다면 들어보지 않았을 수 없는 내용의 글들을 처음으로 읽었다.


부분을 발췌하여 정리된 짧은 글이지만 도대체 왜 진도가 나가지 않는지. 소설을 읽을 때의 흡인력은 고사하고, 한 줄씩 가려서 문장을 씹어먹어도 소화되지 않았다. 책을 덮기도 여러 번이었다. 과제와 학점이라는 속세의 족쇄가 존재했기에 포기하지 않고 여러 번 읽었다고 고백한다. 꽤 글 읽는 행위를 좋아하여 문장 이해력과 독해력이 낮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아니었다. 몇 문장을 지나고서야 마침표가 등장하고, 주장과 근거의 모순을 찾아 반박하며 논의가 진행되는 글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졌다. 처음 시작할 때의 설렘은 조금씩 증발하고, 댓글을 다는 다른 수강생의 유려하고 화려한 글솜씨에 주눅 들었다.

 

그렇게 몇 번의 강의가 지속 되었다. 아주 조금씩 아무 연결 고리 없어 보이던 글들을 관통하는 주제가 눈에 들어왔다. 저자마다 표현하는 방식이 달랐을 뿐, 근본적으로는 결이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교수님이 그리도 강조하던 내용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책이 비슷한 주제를 공유하는 글을 엮어놓았기에 개별적으로 책을 읽었을 때보다 용이하게 발견했으리라 예상한다. 한 번 뜨인 눈은 다른 글을 찾아 헤매었다. 다음 강의 글의 내용이 궁금해졌다. 더욱 놀라운 점은 너무도 먼 물리적 시공간의 차이가 존재하지만, 핵심적인 문제는 지금까지 적용된다는 점이었다.

 

왜 지금껏 수많은 선생님들과 책에서 그리도 고전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는지 알게 된 대목이다. 사랑도 기술이 필요하며, 모두가 그 기술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 에리히 프롬의 글은 결핍 충족을 목적으로 사랑을 찾아 헤매는 현대인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이때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에 아리스토파네스와 아리스토텔레스가 답할 수 있다. 소유할 수 있는 물질의 양이 폭발적으로 증대되고, 더 많이 소유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린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마르크스의 지적은 허를 찌른다. 욕망은 언제나 충족보다 한발 앞선다는 헤겔의 말과 함께라면 우리가 얼마나 허상된 존재를 목적하고 있는지 알게 된다.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인류가 잊지 않아야 하는 참상을 기록했고, 기록함으로써 기억할 수 있게 돕는다. 철학 하기를 주제로 이 글을 쓰고 있지만, 아직 본인의 식견과 지식은 한없이 부족하다. 단지 몇 편의 글을 정독했을 뿐이고, 각 철학자의 이론은 무지하다. 그러나 알아가는 과정에서 또 다른 앎에 다다를 수 있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명제를 온몸으로 체감한 것이다. 페미니즘 이론 수업을 통해서였다. 철학에서 라깡, 니체 등은 너무나 유명한 인물이다. 그들의 이론을 알아가고, 배우는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페미니즘의 시선으로 그들 이론의 한계를 배울 수 있었다. 배우지 않았더라면, 시선은 한 방향으로만 넓어졌을 것이다.

 

다른 철학자의 이론을 습득하는 과정에서 전혀 다른 시선에서 나만의 질문을 던질 수 있는 힘을 기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물음표가 철학을 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너무도 당연하여 무의식적으로, 고민 없이 받아들였던 명제들과 당위들. 모두가 행하고 있어 옳고 그름의 기준이 무화되어 버린 행위들. 브레이크를 걸기에는 너무 위험할 것 같고, 목적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빠른 길로 잘 가고 있는 것만은 확실한 것 같아 보이는 여정에서 방지턱 역할을 하는 것이다. 지름길을 제시해주지는 않지만, 돌아가더라도 그 과정에서 더 많은 풍경을 바라볼 수 있게 말이다.

 

최근 철학 하기의 시선은 돌봄과 간호에 집중되어 있다. 간호학은 인간학의 한 분과라는 말을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지극히 객관적인 과학적 근거에 기반 하지만, 그 지식을 적용하는 대상은 무수히 다른 개별자이다. 질병은 무엇인가, 고통은 무엇인가, 돌봄은 무엇인가. 간호학과에 진학하기 위해 무수히 노력했던 고등학생 시절 생각도 하지 않았던 질문이다. 무용한 질문일 수 있다. 그러나 어찌 생각하면 세상 모든 만사에 각자의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의미를 실천하기 위해 매 순간 노력하는 것이 우리네 인생 아니던가. 가치라는 말로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며, 그 사소한 가치가 무너지는 순간 한 인격은 너무도 손쉽게 무너질 수 있다.

 

간호철학에서 간호가 무엇인지 정의한, 혹은 간호의 발전을 도운 많은 철학자와 이론을 배웠다. 그 작은 의문과 의견이 모여 단단한 학문적 근간을 마련한 것이다. 앞으로 철학하기를 놓지 않을 것이다. 지식 암기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제 철학 서가에 조금 더 자주 발걸음할 것이고, 머리가 지끈해지는 독서를 자발적으로 행할 것이다. 방법과 모습은 다르겠지만 모두가 당신들의 생활에서 철학 하기를 실천하기를 바란다. [글=박보현] 

 

이정민 기자
작성 2021.06.22 11:45 수정 2021.06.22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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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