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프로젝트] 리타와 함께 카프카를

박소은

사진=코스미안뉴스 DB


두 살 터울인 큰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1학기를 마친 후 홈스쿨을 시작했다. 그러나 아이들이 워낙 자아가 강해서 때로 엄마인 내가 아이들에 의해 홈스쿨링 당하기도 한다. 아이들은 내가 무슨 학습적인 일을 강요하면 오히려 멀리 튕겨 나가곤 했다. 그래서 나는 섣불리 아이들에게 어떤 활동을 강권하지 못한다. 어릴 때부터 그런 성향이 두드러졌던 것은 딸인 큰아이였다. 이 아이는 도대체, 뭐 하나 엄마 말을 수월하게 먹어주질 않았다. 그러다 보니 나는 새로운 것을 제안할 때마다 딸의 눈치를 살피며 수위를 조절하고 오랫동안 설득하고 가끔은 추하게 칭얼댄다.


아니, 꼭 해야 된다는 건 아니야. 그냥 엄마의 오랜 로망이라는 거지.” 함께 책 읽기를 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할 때도 오래 눈치를 보다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가볍게 툭 던져보았었다. 딸이 열서너 살 무렵, 셋이서 같이 어딘가를 가던 차 안에서였다. 아이들도 창밖을 보며 건성으로 그래?” 하고 아무 말이 없었다. 나의 로망이란, 아이들과 신변잡기적인 소소한 대화뿐만 아니라 다소 무거운 주제의 토론도 함께 할 수 있는 공통의 지적 경험을 갖는 것이었다. 그런 교류를 할 만한 사람들을 찾아다닐 주변머리가 없어서 말이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소설들을 아이들과 같이 읽고 한나 아렌트를 선물할 나이가 되기를 오래전부터 손꼽아 기다렸었다.


간절함에 비해 너무 가볍게 던진 건 아닌지, 이대로 나의 소원은 묻히고 마는가 싶어서 힐끔힐끔 룸미러로 애들을 훔쳐보던 그때, “책은 뭐, 좋은 거 같아. 근데 지금은 아니야.” 딸의 두 마디 말 사이에 나는 구름 위로 붕 떠 올랐다가 곧바로 고꾸라졌다. 하지만 이 정도 반응이면 거의 성은이 망극이다. ‘엄마나 많이 읽어.’ 아닌 게 어딘가. 나는 아무 내색하지 않고 무심하게 마무리했다. “그래, 혹시라도 마음 내키면 얘기해. 엄마는 아무 때나 시작할 수 있어.”


불쌍한 아들은 그때 몰랐을 것이다. 아무 때가 생각보다 빨리 오게 되리라는 걸. 딸은 중2 시절 넘치는 패기를 책 읽기에 쏟기로 했던 모양이다. "엄마, 우리 여름에 독서 수업해주면 안 돼?" 나는 신이 났고, 아들은 너무 일찍 누나와 세트로 묶여서 팔자에 없는 인문학 조기교육을 누리게 되었다. 다행히 나의 입방정에 귀가 솔깃해진 홈스쿨 엄마들 두세 명이 기꺼이 형들을 보내준 덕에 외롭지는 않았으리라.


그해 여름부터 대여섯 명의 아이들과 함께 일주일에 한 권씩 고전소설과 역사, 철학책을 읽었다. 내가 읽었던 책들 중에 내용을 검증하고 난이도와 분량을 조절해가며 책을 골랐다. 중간에 잠깐씩 방학을 가지면서 3년간 70여 작품을 함께 읽었는데, 첫 시작은 노인과 바다(어니스트 헤밍웨이)였고, 마지막 책은 레미제라블(빅토르 위고)이었다. 그 사이 나의 로망은 실현되었다. 남들에게는 아무 뜻이 없지만, 우리끼리 낄낄대는 유머나 유행어가 생겼다. 함축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장면과 대사가 있고, 좋아하는 작가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는 행복을 누리게 되었다.


한 번은 늦게 퇴근해서 식탁에 앉아 맥주를 한 잔 마시고 있었는데 딸이 와서 앞에 앉더니 엄마 무슨 일 있어?” 했다. “오늘 어떤 사람 사망신고서 정리하는데 며칠 전에 그 서류 접수한 사람들 생각이 나더라. 중년 남자가 딸 데리고 왔었는데. 꼭 잠자네 식구들 같았거든.”, “? 카프카 말이야?”, “. 근데 오늘 보니까 사망자가 그 아저씨 부인이었더라고.”, “... 엄마 속상했겠네.”, “그런 사망신고는 진짜 좀... 맘이 그래.”, “그러게


변신(프란츠 카프카) 이야기다. 일부러 암호처럼 얘기하는 건 아니다. 온 세상 사람들이 겨울왕국의 콘텐츠를 공유하듯, 아이들과 나는 함께 읽은 책들로 묶여있다. 이걸로 충분한 이해와 공감이 된다. 만약 책을 함께 읽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인간이 실존이 아닌 효용가치로 환산되는 시대의 가벼움, 가족에게 한낱 짐 덩어리가 돼버린 병자, 그 죽음이 기쁨과 해방의 대상이 되는 서글픈 현실을 어린 딸에게 굳이 이야기했을까. 굳이 공감을 바랐을까. 그날 나는 내 삶에 일어난 일들을 책으로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동지를 얻었다는 감사함으로 그 사망신고로 인한 서글픔을 달랠 수 있었다.


하지만 딸은 조금 달랐다. “엄마, 친구가 죄와 벌을 봤다고 해서 너무 신났거든. 그런데 막 얘기하다 보니까 그 친구가 봤다는 게 신과 함께였더라고.”, “, 소설이 아니고 영화였어? 맞다. 부제가 죄와 벌이었지 참.”, “괜히 얘기했나 봐. 내가 이상한 건가?”, “?”, “그냥... 얘기하다가 갑자기, 뭔가 걔랑 틈이 생긴 거 같아서.”


딸은 리타 길들이기(윌리 러셀)의 리타가 되어가고 있었다. 독서 수업을 시작하면서 생긴 기존 세계와의 균열을 처음으로 느낀 것이다. 그 후로 몇 번인가 비슷한 이야기를 했고, 방황했고, 울었다. 그리고 따뜻하고 아늑했던 옛 세계는 마음속에 간직하고 이제 새로운 세계에 정착하기로 결심한 듯하다. “엄마, 어디에 가면 이런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어?” 하더니 대학에 가서 철학을 공부하겠다고 입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공부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지 4년 만이었다.


지금도 나는 딸이 공부하다 지치면 아이들과 저녁에 슬리퍼를 끌고 동네 아이스크림 가게에 가면서 우리끼리 신이 나서 수다를 떤다. 사피엔스(유발 하라리)공각기동대(오시이 마모루, 영화)와 인간에 대한 정의의 변천을 얘기하다가 인간이 데이터인 시대에 데이터로서 아무런 가치가 없는 나의 '연결되지 않은 삶'을 낄낄대며 냉소하다가 설레임을 사 들고 문법에 맞지 않는다고 투덜대며 집에 돌아오는 하루를 산다. 단편적인 개념들을 주워섬기는 수준이지만 우리끼리는 딱 재미있을 그 만큼이다.


며칠 전에 딸이 나에게 물었다. “수능 끝나면 나랑 같이 제일 먼저 읽고 싶은 책이 뭐야?”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질문이다. 내가 엄격하게 걸러서 나중에등급으로 보류한 책들이 수십 권인데. 가장 사랑하는 작가 알베르 카뮈의 책도 페스트만 읽었을 뿐이다. 이방인을 먼저 읽을까? 아니면 아렌트 3부작으로 정치철학 선행학습을 해볼까? 시간이 여유로우니 플라톤을 전부 다 읽고 둘이 함께 소크라테스의 매력에 빠져보는 것도 좋겠다. 스타인벡, 마르케스, , 마들렌을 먹으면서 프루스트를 읽는 건 어떨까? [글=박소은]


이정민 기자
작성 2021.06.27 10:29 수정 2021.06.27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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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