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상 칼럼] 우주 마네킹 우형宇形과 소통하리

이태상

 

오늘 2021630일자 뉴욕판 중앙일보 오피니언 <잠망경> 필자 서량 시인-정신과 의사는 그의 칼럼 '마네킹'에 이렇게 적고 있다.

 

“‘Mannequin마네킹15세기 네덜란드어와 불어에서 작은 사람 little man’이라는 뜻이었다가 1930년대에 들어서서 쇼핑센터 진열장에 멋지게 서 있는 마네킹으로 변했다. 이때 ‘man’‘mankind, 인류에서처럼 남자가 아닌 사람을 뜻한다.

 

딸은 어릴 적에 조그만 사람 모습의 인형에게 말을 하는 버릇이 있었다. 인형이 무생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응답을 기다리지 않고 인형의 마음을 얼른얼른 알아차리면서 재미나게 놀곤 했다. 그것은 초현실적 감흥의 연속이었다. 딸은 인형을 통하여 저 자신과 놀았던 것으로 보인다. 당신이 수시로 신에게 올리는 기도 또한 초현실적 소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나는 가끔 한다.”

 

이렇게 우리는 모두 각자의 인형 마네킹에게 말을 하는 버릇이 있지 않나. 일종의 독백 혼잣말을. 사람은 누구나 혼자 왔다가 혼자 가는 인생이지만 그 누군가와 소통이 필요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우리 모두 각자대로 소우주로서 우리 모두의 영원한 고향 대우주와의 소통이 가장 바람직하리라.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래동요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달아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저기저기 저 달 속에 계수나무 박혔으니

옥도끼로 찍어내어 금도끼로 다듬어서

초가삼간 집을 짓고 양친 부모 모셔다가

천년만년 살고지고 천년만년 살고지고

 

전래동요는 구전동요(口傳童謠)라고도 한다. 작사자가 누구인지 작곡자가 누구인지 알 길이 없다. 다만 이 달아달아 밝은 달아는 중국 당()나라의 시인 이태백(李太白 701762)을 노래한 것이다. 그리고 윤선도 <오우가(五友歌)>도 있지 않나.

 

내 버디 몃치나 하니 수석(水石)과 송죽(松竹)이라.

동산(東山)의 달 오르니 긔 더옥 반갑고야.

두어라 이 다섯 밧긔  더하여 머엇하.

 

내 벗이 몇인가 하니 물, , 소나무, 대나무로다.

동산에 달이 뜨니 그 더욱 반갑구나.

두어라, 이 다섯밖에 또 더하면 무엇하리.

 

구룸 비치 조타하나 검기를 자로 한.

바람 소리 다 하나 그칠 적이 하노매라.

조코도 그츨 뉘 업기는 믈뿐인가 하노라.

 

구름 빛깔이 깨끗하다고 하나 검기를 자주 한다.

바람 소리가 맑다고 하나 그칠 때가 많도다.

깨끗하고도 그칠 때가 없기는 물뿐인가 하노라.

고즌 므스 일로 퓌며셔 쉬이 디고,

플은 어이하야 프르난듯 누르나,

아마도 변티 아닐 것은 바회뿐인가 하노라.

 

꽃은 무슨 일로 피자마자 쉽게 지고,

풀은 어찌하여 푸르러지자 곧 누른빛을 띠는가?

아마도 변하지 않는 것은 바위뿐인가 하노라.


더우면 곳 퓌고 치우면 닙 디거늘,

솔아 너는 얻디 눈서리를 모르난.

구천(九泉)에 불휘 고든 줄을 글로 하야 아노라.

 

따뜻해지면 꽃이 피고 추우면 잎이 지거늘,

소나무여, 너는 어찌 눈과 서리를 모르느냐?

깊은 땅속까지 뿌리가 곧은 줄을 그것으로 알겠구나.

 

쟈근 거시 노피 떠서 만믈(萬物)을 다 비취니,

밤듕의 광명(光明)이 너만 니 또 잇느.

보고도 말 아니 니 내 벋인가 하노라.

 

작은 것이 높이 떠서 온 세상을 다 비추니

밤중에 밝은 빛이 너만한 이 또 있겠느냐?

보고도 말을 하지 않으니 내 벗인가 하노라.

 

나모도 아닌 거시 플도 아닌 거시,

곳기는  뉘 시기며 속은 어이 뷔연난.

뎌러코 사시(四時)예 프르니 그를 됴하하노라.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누가 시켰으며 속은 어찌 비어 있느냐?

저러고도 사시사철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

고산유고

블로거 마이콜의 작품 감상의 길라잡이는 이렇다.

 

이 작품은 고산 윤선도가 56세 때 유배 생활에서 돌아와 해남 금쇄동에 은거할 무렵에 지은 6수로 된 연시조로, <산중신곡>에 들어 있다. 첫째 수는 뒤에 나올 다섯 수에 대한 소개를 하는 서사이고, 둘째 수는 물, 셋째 수는 바위, 넷째 수는 소나무, 다섯째 수는 대나무, 여섯째 수는 달을 각각 친근한 벗으로 표현함으로써 사물에 대한 작가의 짙은 애정을 드러내고 있다.


이 작품은 우리말의 어휘와 어미, 문장 등을 잘 다듬는 시인의 언어적 감각에 의해 우리말의 아름다움이 잘 드러나 있으며, 자연에 대한 우리 선조들의 사상과 정신이 잘 응축되어 있다. 특히, 자연과 인간이 하나로 어우러진 물아일체의 경지를 잘 그려 내고 있다. 작가에게 영원불변의 자연물은 심미적 대상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덕성을 유추해 냄으로써 유교적 이념을 표방하는 매개물로 예찬되고 있다.

 

이 두 편의 동요와 시조가 동양적이라면 서양적인 독백도 좀 들어볼거나.

 

이 보기 좋은 땅 지구라는 틀, 내게는 척박한 곶(바다 쪽으로, 부리 모양으로 뾰족하게 뻗은 육지)으로 보이는, 이 아주 훌륭한 까대기(벽이나 담 따위에 임시로 덧붙여 만든 허술한 건조물)와 공기를 보라. 어찌하여 내게는 천공天空으로부터 늘어져 있는 황금빛 불덩이를 지붕으로 삼고 운집해 있는 고약한 전염병 병균들첨 보이는가. 인간이란 작품, 이 얼마나 이성적으로 고매하고, 무한히 영명英明/靈明하며, 형태로나 동작으로나 천사처럼 유연하고 민첩하며, 신처럼 불안하고 초조하며,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미의 화신이고 만물지영장萬物之靈長인데, 나에게는 이 티끌의 전형典型 인간이 무엇인가?

This goodly frame, the earth, seems to me a sterile promontory, this most excellent canopy, the air, look you, this brave o'erhanging firmament, this majestical roof fretted with golden fire, why, it appears no other thing to me than a foul and pestilent congregation of vapours. What a piece of work is a man! how noble in reason! how infinite in faculty! in form and moving how express and admirable! in action how like an angel! in apprehension how like a god! the beauty of the world! the paragon of animals! And yet, to me, what is this quintessence of dust?”

-William Shakespeare, Hamlet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

1230ts@gmail.com

 

전명희 기자
작성 2021.07.01 11:17 수정 2021.07.01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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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