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프로젝트] 생존과 변태(變態)를 위한 독서

박소은

사진=코스미안뉴스 DB


사람이 스스로의 변화를 도모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요즘은 여행을 그 방법으로 삼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지만, 움직임이 굼뜬 나는 책을 읽었다. 처음에 독서는 아무런 도구가 아니었다. 극히 폐쇄적인 가정에서 외출도 여행도 드물고 타인을 만나는 일이라곤 학교뿐이었던 나에게 세상과 통하는 유일한 통로가 책이었을 뿐이다. 중학교 동창인 J는 매일 도시락을 싸 오듯 책을 두세 권씩 가방에 넣어 와서 쉬는 시간마다 혼자 책을 읽던 내가 너무나 재수 없었어.”라고, 마흔이 넘어서야 웃으며 고백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책만 읽었던 때도 있었다. 아주 어릴 때 사은품으로 준다는 워키토키가 탐나서 들인 문고판 동화책을 하루에 열댓 권씩 읽어댔고, 그 후 몇 년이 지나 엄마가 양장본 전집을 할부로 들였을 때도 겨울방학 내내 책만 읽었다. 빨간 담요를 두르고 엎드려서 아침에 골라놓은 책들을 다 읽으면 밤이 되는 하루하루가 너무 좋았다. 책은 이 낯설고 북적이는 땅에 혼자인 나를 아늑하게 보호해주었다.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되는 것도 신기했다. 현실에서는 비루한 나의 세계가 머릿속에서는 시간과 공간을 무한히 확장해갔다.


내가 책의 위력을 체감한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그때 나는 엄마의 오랜 분노와 우울에 지쳐있었으면서도 그 생각과 감정의 패턴을 똑같이 닮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 익숙한 생각의 길을 벗어나려는 또 다른 자아가 감지되었다. 자칫 정신분열 초기증상으로 해석될 수도 있을 이 문장을 다시 써보면, 나의 생각에 대해 생각하는 메타인지의 시작이라는 아주 그럴싸한 긍정적 재해석이 가능하다. 만약 그때 '엄마와 다른 방식'에 대한 대안이 없었다면 아마도 나의 정신적 독립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나의 대안은 책에 있었다.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의 주인공이 성장기 내내 보았던 영화들을 짜깁기해서 자기 작품 속 인물을 빚어냈듯이 나도 하나의 콜라주가 되어갔다. 책속 인물들의 감정과 말과 행동들이 새 살처럼 차오르고 옛 자아는 몸에 들러 붙어있던 허물처럼 나로부터 조금씩 분리되었다. 눈의 허물도 벗어지고 세상을 조금 다르게 보게 되었다. 변태의 경험이었다. 점점 엄마와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말하고 서로 멀어져갔지만, 나로서는 살기 위한 선택이었다.


수십 년이 흐른 후 나는 의도적인 책 읽기를 시작했다. 죽을 만큼 힘이 들었을 때였다. 아이들이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외국에 사는 고모네 집에 두어 달 가 있고, 그사이에 나는 사실상 쫓겨나는 것과 다름없는 퇴직을 한 참이었다. 남편과의 갈등에 겹친 큰아이의 사춘기가 극에 달했을 때라 나는 집에서도 밖에서도 완전히 실패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지키겠다고 품고 있던 아이의 가시 돋친 반항과 이직 시장에서의 거듭된 퇴짜에,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나는 용도가 폐기된 고물이 되었다. 죽으면 아이들 몇 년 먹고살 보험금이라도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들었다. 이 상황에도 대학원을 다니는 게 당연하다는 남편을 보며 왜 나만 희생해야 하고, 불운은 왜 나만 골라서 찾아오는 것인지 억울하고 분했다.


아이들이 없는 집에 남편과 있을 수는 없어서 나는 비어있는 시댁으로 가서 지냈다. 시댁 근처에 중학교 동창 J가 살고 있었다. J는 아침마다 나를 깨우러 왔다. 차에 태워서 근처 도서관에 데려다준 후 학교로 출근했다. 그곳에서 나는 죽지 않기 위해 책을 읽었다. 죽음에 고정된 눈을 다른 곳에 돌리기 위해서 말이다. 어릴 때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책에 파묻혔다. 빨간 담요 대신 햇빛을 둘렀다. 지금도 플라톤과 카프카를 생각하면 햇빛이 깊게 비추던 겨울 도서관 창가가 떠오른다. 내 안의 어둠을 쫓아내듯, 블라인드를 위로 올려치우고 그 햇빛에 비친 눈부신 종이에 인쇄된 검은 글자의 오목한 그림자까지 깊이 눈에 담았다. 읽다가 눈을 감으면 책의 잔상이 그대로 머릿속에 스며들 것만 같았다.


J는 늦은 퇴근길에 나를 데리고 가서 자기 식구들과 같이 집밥을 해 먹였다. 그리고 J부부와 나는 함께 맥주를 마시곤 했다. 둘은 나의 끝도 없는 토설을 들어주고 내 눈물을 한숨으로 받아주었다. 때로 J는 나에게 오늘은 무슨 책 읽었어?”라고 묻고 내가 책 제목을 이야기해주면 도대체 그런 책이 왜 좋냐? 나는 제목도 들어본 적이 없다.” 하며 웃었다. 소송(프란츠 카프카), 악령, 지하 생활자의 수기(도스토옙스키), 신곡 지옥, 연옥, 천국(단테), 공포와 전율(키르케고르), 전락(알베르 카뮈), 백 년 동안의 고독(마르케스)... 제목만으로는 정말 중증 우울증을 유발할 듯 무겁고 재미없는 책들이다.


글쎄, 왜 그런 책들을 읽었을까. 사실 죽지 않으려는 목적이 가장 컸다. 무엇을 배워야지, 누구를 닮아야지, 어떤 사람이 되어야지 하는 생각이었다면 요즘 나오는 온갖 처세술과 자서전을 읽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아무런 희망이 없었고, 제목부터 명령질을 하는 책들의 가벼움을 감당할 수 있는 상태도 아니었다. 유행처럼 함부로 괜찮아를 날리는 솜사탕 같은 위로도 읽고 싶지 않았다. 그냥 양식이 필요했다. 내 허물을 밀어 올릴 새 속살이 되어줄 무거운 밥이 필요했다.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도서관 서가의 100번과 800번만 죽어라고 오가며 백 년, 천년 묵은밥을 꾸역꾸역 먹었다.


그렇게 두 달을 지내고 고모네 집에 갔던 아이들이 돌아올 시간이 되어 나도 집으로 다시 들어왔다. 서로 떨어져 있던 시간은 딸과 나 사이의 극한 갈등을 다소 잠재워주었다. 나는 우는 딸을 안아주었다. 실직한 가장으로서의 미안함과 불안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아이들에게 털어놓았다. 엄마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켜줄 거라고, 조금만 버텨달라고 했다. 아이들은 나를 지켜주었다. 낯설고 불안한 일상이 시작되었다. 이직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였고, 나는 낮에 식당, 밤에 학원, 주말에 편의점에서 일했다. 아이들이 자랑하던 엄마의 학벌과 경력은 '아줌마'라는 이름에 묻혔다. 어쩌면 나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불운, 또 하나의 추락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묵은밥은 힘이 셌다. 그 밥을 먹고 나는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답을 찾았다. 키르케고르는 나를 모리아산에 오른 아브라함이라고 했고, 카뮈는 굴러떨어지는 바위를 보고 있는 시시포스라고 했다. 소크라테스는, 신념에 따라오는 불운은 죽음일지라도 내 몫인 거라고 했다. 묵은밥들에 차오른 속살은 40년이 넘도록 나에게 들러 붙어있던 오래 묵은 껍질 하나를 밀어 올렸다. 그것은 '자기연민'이었다. 내 안에 있을 때는 있는 줄도 몰랐으나 나로부터 떨어져 나간 그 껍질은 소름이 끼치도록 더럽고 흉측했다.


또 한 번의 변태기를 지나고 지금 나는 스스로를 연민하지 않는 야생의 삶을 산다. 알바조차 힘들어지고 다시 막다른 길에 내몰렸을 때 나는 공무원 시험을 보기로 했다. 내 앞에 놓인 길들 중에 가장 좁고 위태롭고 아이들을 고생시키는 길이었지만 나는 선택했다. 아이들이 집안일을 도맡았고 나는 죽기 직전까지 공부했고 결국 합격했다. 바위를 산 위에 올려놓는 데에 성공했다 싶은 순간이었다. 그러나 나는 점점 더 가난해지고 아이들은 계속 커가고 있다. 굴러떨어지는 바위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생은 그저 주어진 것일 뿐이다.’


나를 둘러싼 삶은 불운과 부조리로 여전히 북적이고 있다. 그러나 억울하지 않다. 언젠가 딸은 나에게 물었다. "엄마 아직도 거기에 있어? 아브라함과 시시포스 사이?" 절대자의 부조리한 요구 앞에 고독하게 존재하든, 무의미하게 무한 반복되는 삶을 나의 선택으로 살아내든, 온전히 내 몫의 인생일 뿐이다. 죽지 않고 살아있다.


그리하여 나는 지금 산 밑의 바위를 향해 걸어 내려가는 중이다. [글=박소은]


이정민 기자
작성 2021.07.01 11:50 수정 2021.07.01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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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