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산정천리] 여름특집 2편

두타산 베틀바위와 마천루에서 우화등선(羽化登仙)을 꿈꾸다

여계봉 선임기자


작년 8월 두타산 베틀바위 산성길에 이어 지난달 중순에 협곡 마천루까지 개방되어 두타산의 숨어있던 비경이 모두 열렸다. 그동안 출입이 통제되었던 수도골과 박달령 입구를 지나 용추폭포로 연결되는 이른바 '두타산 협곡 마천루'로 불리는 총연장 5.34의 순환 등산로 코스가 완성되어 일반인들에게 개방된 것이다.

 

두타(頭陀)는 버리다, 씻다, 닦다 등의 뜻을 지닌 산스크리트어로서 두타행(頭陀行)이라 하면 세상의 모든 번뇌를 버리고 불도를 닦는 수행을 뜻한다. 따라서 극락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 바로 두타산이요 두타행이다. 이 산길은 세속을 벗어나 정진의 길을 떠나는 두타행이다. 어찌 허투루 걸을 수 있는 만만한 길이겠는가?

 

지난달 6월 10일 개방된 마천루길. 천상으로 오르는 길이다.


오늘 산행은 공원사무소를 출발하여 베틀바위 산성길과 새로 개방된 마천루길을 따라 수도골과 마천루 전망대를 지나 쌍폭포와 용추폭포까지 가서 하늘문을 올라 관음암에 들린 후 하산하여 삼화사와 무릉반석을 거쳐 공원사무소로 원점회귀 하는 U자형 코스(12km, 6시간)로 진행하기로 한다.


금강소나무 숲길로 들어가는 베틀바위 산성길 입구


공원사무소를 지나 신선교를 건너면 들머리인 베틀바위 산성길 입구가 나온다. 돌계단을 올라서면 만만치 않은 경사길이 이어진다. 몇 년간 산을 같이 타온 네 사람은 산행 초입부터 거친 호흡으로 말소리가 잦아드니 대신 새소리, 바람소리가 들려온다. 우리는 하지 않아도 될 말들을 얼마나 하며 살아왔던 것일까.

 

금강소나무 군락지를 지그재그로 돌아서 한참을 오르니 예부터 삼화사 승려들이 좌선했던 바위 삼공암에 도착한다. 바위 위에 서니 아스라이 찰랑거리는 동해의 북평 바다가 두타의 발끝을 간질이고 있다.


승려들의 참선 바위 삼공암. 뒤로 청옥산의 중대폭포가 보인다.


삼공암에서 잠시 숨을 돌린 후 급경사의 오르막 계단을 오르면 베틀바위 전망대에 이른다. 전망대에 서서 동쪽으로 몸을 돌리자 기기묘묘한 형상의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온다. 뾰족뾰족한 암봉이 사선으로 이어진 모습은 가히 장관이다.

 

베틀바위에 관한 이야기는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천상의 질서를 위반한 선녀가 벌을 받아 두타산 골짜기에서 삼베를 짜며 죄를 뉘우친 뒤 승천했다는 전설이다. 또 하나는 두타산과 청옥산 사이의 박달재를 지나면 옛날에 삼을 많이 재배했던 정선 임계면과 삼척 하장면이 나오는데, 농한기 때 이 지역의 아낙들이 옷감을 이고 동해 북평장으로 오면서 이 바위를 보고 베틀을 떠올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베틀바위. 중국 장가계가 연상되는 비경이다.


인파로 북적이는 전망대를 뒤로하고 두타산성 방향으로 걸음을 계속한다. 비교적 완만한 평지의 내리막 숲길이다. 길섶에는 산수국이 피어 있었고, 백두대간에서 보기 힘들다는 회양목 군락도 보인다. 길가에는 복원한 숯 가마터도 보이고 주변에 자기 조각들이 흩어져 있다. 이 험한 산에서 억척스럽게 살다간 선대 화전민들의 고단했던 삶을 떠올리니 가슴이 저며온다.

 

숯가마터. 오갈 데 없었던 민초들의 애환이 깃든 곳이다.


박달령을 사이에 두고 청옥산과 쌍둥이처럼 마주 서 있는 두타산은 마치 부처가 누워 있는 형상이다. 그동안 출입이 금지되었던 베틀바위와 박달령 입구까지의 구간을 잇는 산길 따라 두타산과 청옥산의 굵직한 산줄기와 기암절벽이 쉼 없이 이어진다. 이윽고 산성 12폭포에 도착한다. 열두 번 꺾이는 폭포와 큼직한 잿빛 바위, 바위 틈틈이 자란 소나무가 어우러진 모습은 거대한 한 폭의 수묵화다. 여기를 지나는 모든 이들은 서로 약속이나 하듯 폭포수가 흐르는 너럭바위에 앉아 주위 경관을 감상하며 간식을 즐긴다.


12폭포에서 바라보는 건너편 협곡의 풍광이 기막히다.


수도골에 들어서니 골짜기 전체에 냉기가 흐른다. 석간수에 들러 차가운 약수로 몸의 열기를 삭히고 걸음을 계속하니 드디어 협곡 마천루에 들어선다. 무릉계곡 신선봉 맞은편 박달령 일원에 자리 잡은 마천루는 신선이 머무를 것만 같은 암릉과 기암절벽이 사방으로 둘러싸여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두타산과 청옥산의 정기를 고스란히 담은 천하 비경이지만 절벽과 거친 암릉이 많아 일반인들의 접근이 어려웠던 곳이다. 최근에 500길이의 데크와 계단, 전망대 등이 설치되어 협곡을 오르내리며 주위의 비경을 모두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마천루 전망대. 가파른 절벽 끝에 새집처럼 달려있다.


마천루 맞은편으로 두타산과 청옥산의 정기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신선봉과 거대한 자연 암벽인 병풍바위, 용맹스러운 장군의 얼굴을 닮은 장군바위가 보이고, 운 좋은 날에는 용추폭포와 쌍폭포의 시원한 물줄기도 감상할 수 있다. 이곳을 마천루라고 부르는 이유는 협곡에서 바라본 웅장한 바위 형상이 대도시에 운집한 고층빌딩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라고 한다.


산정은 그동안 답답한 시야를 보상하듯 시원한 조망을 보여준다. 청옥의 넉넉한 품은 달려가 안기고 싶고, 그 오른쪽으로 휘어지며 출렁이는 백두대간 능선은 참으로 통쾌하다.

 

마천루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병풍바위와 용추폭포


전망대에서 절벽에 붙은 아찔한 계단을 타고 내려와 박달계곡으로 내려선다. 선녀탕을 지나니 깊은 계곡에 반향된 청량한 물소리가 귓가를 간지른다. 무릉계곡 최상류에 있는 쌍폭포는 매끄러운 암반 사이로 힘찬 물줄기를 흘려보내며 청량감을 더한다. 쌍폭포 위에 있는 용추폭포는 마치 용이 승천하는 듯한 모양을 지닌 폭포로 상탕, 중탕은 옹기항아리 같은 형태로, 하탕은 진옥색의 큰 용소로 이뤄져 있다. 폭포 입구에는 어느 묵객이 새겨놓은 별유천지(別有天地)’라는 대형석각이, 폭포 앞 암반에는 부사 유한준이 쓴 용추(龍湫)’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쌍폭포. 왼쪽은 박달령에서 오른쪽은 청옥산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다.


폭포에서 내려와 청옥산으로 가는 하늘문을 오른다. 하늘문 앞은 피마름골이다. 임진왜란 때 죽은 사람들의 핏자국이 남아 있는 곳이라는 의미다. 왜군 5,000명이 백두대간을 넘어 강릉을 거쳐 이 지방으로 쳐들어왔을 때 바닷가에 살던 사람들이 두타산성으로 피난하고 의병을 조직하여 항전했다. 피아간 1만 명 가까운 인원이 사망할 정도로 격전이 벌어져 산성 아래 무릉계곡은 온통 피로 물들었다고 한다. ‘피내골은 그렇게 해서 생긴 이름이다.


하늘문. 수직에 가까운 300계단을 올라야 하늘문에 이를 수 있다.


하늘문에 올라서면 시야가 트이고 계곡 맞은편으로 우람한 발바닥바위와 마천루의 바위 능선이 손에 닿을 듯 가깝다. 이윽고 국내 방송에서도 많이 소개된 신선바위에 도착한다. 엉덩이 모양으로 홈이 파인 바위 아래는 백척간두의 절벽이다. 절벽 아래에는 두타산과 청옥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동해로 흐르는 무릉계(武陵溪)가 있다. 맑은 계류를 따라 펼쳐진 널따란 반석과 조물주의 작품인 양 기이한 모양으로 우뚝 선 바위들과 폭포들이 자리하고 있다.

 

신선바위. 음(陰)의 기운이 강한 바위다.


신선바위를 지나 내리막길 끝에 작은 암자가 나온다. 고려 태조때 창건된 관음암이다. 오층석탑 옆 약수터에서 약수 한 모금에 갈증을 삭히고 맞은편 두타산을 바라본다. 두타는 울툴불퉁하나 날렵한 골산(骨山)이고, 청옥은 완만하여 듬직한 육산(肉山)이다. 하기야 수행자가 가는 고행의 길이 완만할 리 없고, 극락세상을 상징하는 산이 울퉁불퉁할 리 없다. 두타는 두타답고 청옥은 청옥다운 모양을 하고 있다. 두타의 길은 청옥이 있음으로 완성되고 청옥의 문은 두타의 길로 인해 열리는 것이 아닌가.

 

무릉계곡 위 청옥산 중간에 자리 잡은 관음암


관음암부터는 산길이 유순해진다. 절집을 나서는데 바람이 귓가에 스치듯 나지막한 소리가 들린다. '욕심, 탐욕, 이기심을 버려라'

한참을 내려오면 전망 좋은 바위가 나온다. 바위 위에 서니 정면으로 지나온 베틀바위가 보인다.


관음암 능선에서 바라본 베틀바위


관음암을 내려서면 두타와 청옥이 만든 그 계곡에 자리잡은 천년사찰 삼화사(三和寺)가 있다. 무릉계의 정신을 지탱해 온 절집으로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창건하였는데 고려 때 삼화사로 개칭했다. ‘삼국을 하나로 화합시킨 영험한 절이라는 뜻이다. 현재는 삼화사와 관음암, 천은사만 남아 있지만 불교가 융성했던 시기에는 중대사, 상원사, 대성암 등 십여 개가 넘는 크고 작은 절집이 산속 곳곳에 터를 잡고 있었다 한다.


삼화사. 선종의 종풍을 가진 유서 깊은 사찰이다.

 

바위 세상을 빠져나오니 이제 물의 세상이다. 무릉계곡의 무릉은 중국 도연명의 <도화원기>에서 유래했다. 세상과 따로 떨어져 복숭아꽃이 만발한 별천지 같은 곳이라는 의미다. 실제 무릉계곡은 입구 호암소에서부터 시작해서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 용추폭포까지 약 4정도 된다.

 

너른 바위에 물이 완만하게 흐르는 무릉반석은 천여 명이 앉을 수 있는 큰 암반이다. 반석 위를 흐르는 물줄기는 언제나 맑고, 조선의 4대 명필로 꼽히는 양사언과 매월당 김시습 등 수많은 시인 묵객들의 글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특히 양사언이 선경에 반해 무릉반석 위에 쓴 무릉선원 중대천석 두타동천(武陵仙源 中臺泉石 頭陀洞天)’ 라는 글귀는 세월이 흐르면서 마모가 심해지자 따로 새겨서 금란정 옆에 두었다.


무릉계곡 무릉반석은 동해 3경이다.
오늘 하루 선계에서 잠시 우화등선을 꿈꾼 동무들


함께 산행했던 친구들과 함께 잠시 양사언이 되어 '신선이 놀던 무릉도원, 너른 암반과 샘이 솟는 바위, 번뇌조차 먼지처럼 사라져 버린 골짜기에서 신발 끈을 풀고 첨벙 발을 담근 채 슬며시 눈을 감는다.

 

두타행 끝에서 얻는 즐거움이 이러할까

이것이 바로 우화등선(羽化登仙) 아니던가



 

여계봉 선임기자

yeogb@naver.com




여계봉 기자
작성 2021.07.04 12:16 수정 2021.07.04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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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